[윤대현의 마음속 세상 풍경] [125] 자기미움보다 자기추앙이 필요한 시기다

윤대현 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2022. 10. 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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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탓인지 옛날 같지 않다’란 말을 자주 듣는다. 그런데 이 말을 쓰는 연령 폭이 꽤나 넓다. 아흔이신 인생 선배부터 가끔은 20대 후반인 젊은 후배도 컨디션이 몇 년 전 같지 않다고 한다. 동안 얼굴에 실제 연령은 50대 후반인 분이 대화 중 끊임없이 옛날 같지 않다고 한다. 그 말을 자주 쓰는 것을 인식하고 있는지 물으니 몰랐다고 한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무의식적으로 내뱉고 있었다는 것이다. ‘옛날 같지 않다’란 말을 지주 사용하면 ‘라떼는 말이야’처럼 내 매력도를 떨어트리는 소통일 수 있으니 줄이라고 권해드렸다.

문득 나는 어떤지 궁금해 후배들과 저녁 모임에서 셀프 모니터링을 해보니 ‘나이 들어 어떻다’란 말을 꽤나 반복하고 있었다. 막아보려고 해도 툭툭 튀어나오는 것을 보니 이 말을 하고픈 심리적 욕구가 꽤 크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이가 들어도 젊고 강해 보이고 싶은 것이 본질적 욕구일 텐데 스스로 나이 드니 한심해졌다고 셀프 디스를 하는 상황이다.

‘살 만큼 살았다’란 시어머니의 말에 ‘정말 멋있게 사셨어요’라 답한 며느리가 꾸중을 크게 들었다는 라디오 사연을 접한 적이 있다. 앞의 ‘살 만큼 살았다’란 표현은 ‘무슨 말씀을요, 이제 한창때시죠’ 란 답을 듣고 싶은 우회적 소통인 것이다. ‘옛날 같지 않다’란 말을 쓰는 마음엔 ‘아니다’란 답을 상대방에게 듣고픈 욕구가 작동하고 있다. 그런데 혼자 있을 때도 주문처럼 ‘몇 년 전과 다르다’란 말이 나오는 것은 왜일까? 그리고 그런 말을 쓰는 연령대도 넓어지고 횟수도 잦아진 것은 왜일까? 포스트 코로나 시기에 바이러스 그리고 경제적 우울 등과 전투를 치르며 실제로 에너지가 격하게 소진되었기 때문이다. 이제 힘을 내야 할 때인데 영 맥을 못 추는 자기가 한심하다는 호소를 자주 접한다. 몇 년 전 자신과 비교하면 옛날 같지 않다며 스스로를 탓하기도 한다.

그러나 지금은 ‘자기 미움이 아닌 자기 추앙’이 적극적으로 필요한 시기이다. 적절한 자기 비판은 자기 인식에 근간이 되고 성숙에 도움이 된다. 하지만 나를 주인공과 관객으로 분리해, 마치 나를 리얼리티 쇼의 출연자로 바라보며 핀잔을 주면서 잠시 현실에서 도피하게 만드는 자기 미움은 가뜩이나 지친 마음에 한 번 더 내상을 줄 수 있다.

인생의 가장 젊은 날은 ‘오늘’이다. 그리고 오늘이 수년 전보다 못하게 느껴지는 것은 어려운 상황에서도 최선을 다해 살았기에 지쳤기 때문이다. 그런 힘든 상황에서도 최선을 다하고 있는 내 마음에 옛날 같지 않다는 핀잔보단 남은 인생 중 가장 젊은 날인 바로 오늘, ‘내가 너를 추앙한다’는 강력한 포옹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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