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이라노]부산 해녀들의 '손녀딸' 김여나 작가

조윤화 기자 2022. 10. 3. 2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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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레터 뭐라노의 마스코트 ‘라노’입니다. 아무런 ‘대가 없이’ 이타적인 행동을 하는 분들 덕분에 팍팍한 세상도 살 만한 것 같습니다. 동화 ‘나는 해녀입니다’를 쓴 김여나 작가도 마음을 따뜻하게 데워주는 분인데요. 지금까지 기장 해녀에 관한 책 4권을 발간했다고 해요. 좀처럼 곁을 내주지 않던 해녀들에게 ‘손녀’ 같은 존재로 자리 잡기까지 김 작가의 노력은 눈물 겨웠는데요. 왜 그는 해녀 이야기에 그토록 진심일까요? 라노가 알아봤습니다.

김여나 작가가 태왁을 붙잡고 휴식을 취하고 있다.


김 작가는 유년기 시절 유독 고달팠던 스스로를 위로하기 위해 동화를 쓴다고 해요. “제 곁에는 도와주는 어른이 없다시피 했어요. 제가 쓴 동화에서는 주인공 옆에 조력자가 많아요. 역경을 씩씩하게 이겨나갈 수 있도록 용기를 불어넣어 주는 존재 때문에 저도 치유되는 것 같아요.”

2018년 부산아동문학 신인상을 받으며 등단한 김 작가. 지난달 20일에는 자신의 첫 동화책 ‘나는 해녀입니다’를 출간했습니다. 김 작가가 앞서 쓴 세 권의 책과 내용이 밀접하게 연관돼 있는데요. 지금이야 기장 해녀를 논할 때 김 작가를 빼놓을 수 없지만 처음부터 해녀 이야기를 쓸 계획은 아니었다고 해요.

김여나 작가가 지금껏 출간한 책들.


안미란 작가에게 동화를 배우고 있을 무렵인 2019년 7월. 김 작가는 부산문화재단으로부터 다대포 해녀마을을 취재해 글을 써달란 연락을 받게 됩니다. “여러 필진이 ‘부산의 해녀’라는 책을 낼 계획인데 그중 한 꼭지를 맡아달라”는 청탁. 김 작가는 사는 곳에서 다대포까지 거리가 멀기도 하거니와 동화작가의 일은 아닌 것 같아 거절했습니다. 며칠이 지나자 부산문화재단으로부터 “다대포가 멀다면 기장의 문동마을 해녀를 취재해 달라”는 연락이 왔습니다. 문동마을은 차로 15분이면 갈 수 있는 거리. “작가라면 어떤 글이든 쓸 줄 알아야 해!”라는 스승 안미란 작가의 따끔한 한마디에 김 작가는 문동마을로 향합니다.

해녀의 마음의 빗장을 풀기 위해 김 작가는 마늘까기, 파 다듬기, 해산물 손질 등을 기꺼이 함께 했다.


취재는 처음부터 난관의 연속. 인터뷰 섭외가 좀처럼 되지 않았기 때문인데요. “시어머니도 해녀인데다 나도 기장에서 30년을 살았으니 취재는 수월하게 되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큰 오산이었어요. 기자나 방송국은 ‘자기들 필요한 것만 해녀들한테 쏙 빼먹고 가버린다’는 식의 불신의 벽이 너무 컸어요”.

김 작가는 포기하지 않고 아침저녁으로 마을을 방문해 안부를 묻고 곁에서 일을 거들었습니다. 원고 마감을 하루 앞두고도 글을 완성하지 못하고 있을 때,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어떤 할머니가 방파제 옆에서 마늘을 까고 계시기에 옆에서 거들면서 제 사정을 얘기했어요. 그랬더니 그 할머니가 저를 마을 해녀 회장님한테 데리고 가서 ‘작가가 너무 불쌍하니 인터뷰해 줘라’라고 말씀해 주시는 거예요. 처음엔 집에도 못 들어오게 하셔서 집 문 앞에서 해녀 회장님하고 파를 다듬으면서 인터뷰를 했죠.”

우여곡절 끝에 책이 나온 날, 김 작가는 곧바로 해녀 회장님 집으로 달려갔습니다. 눈이 침침한 해녀회장님을 위해 김 작가는 원고지 30매 되는 분량의 글을 큰 소리로 읽어드렸다고. “글을 다 읽고 나니까 회장님이 제 손을 잡으시더니 ‘내 말을 그대로 실어줘서 고맙다’ 하시면서 연필 한 움큼 챙겨주셨어요.”

기장 해녀와 김 작가의 인연은 실타래처럼 이어졌습니다. 김 작가의 글을 인상 깊게 본 황현일 기장군보 편집장이 기장군 18개 어촌계 해녀에 관한 시리즈를 함께 하자고 제의한 것인데요. 황 편집장은 “오래전부터 기장 해녀 얘기를 군보에 싣고 싶었는데 깊이 있는 취재가 어려워 망설였다. 김 작가의 글을 보고 확신이 들었다”고 합니다.

김여나 작가가 뜨개질 솜씨를 발휘해 해녀들 고무신에 단 방울 장식.


김 작가는 2020년부터 ‘기장군 18개 갯마을과 해녀 이야기’를 연재합니다. 역시 쉽지는 않았습니다. 해녀 어르신들의 마음을 열기 위해 고무신에 꽃 장식을 달아주기도 하고 ‘같이 물질 하지 않으면 사진을 안 찍겠다’는 짓궂은 장난에 생전 처음 물질을 시도했다 온몸이 멍투성이가 되기도 했다고.

18개 마을마다 고유한 특징을 최대한 잘 담아내기 위해 시리즈를 연재하는 1년 6개월간 김 작가의 머릿속엔 온통 취재 생각뿐이었는데요. 이 과정에서 “기장군이 김여나를 키워준다” “공무원 월급만큼 보수를 받는다더라” 같은 오해도 많이 받았다고. 김 작가는 “군보에 연재하면서 한 달에 20만 원 받았어요. 오히려 연재하는 동안 모아둔 돈 3000만 원 까먹었어요. 제가 하겠다고 선택한 일이었고, 하루 이틀 취재원 만나서 써버리는 그런 글을 쓰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사정을 잘 모르고 하는 주변인들의 오해는 별로 개의치 않았어요.”

김복례 할머니가 덮은 이불 위 ‘나는 해녀입니다’의 초고가 올려져 있다.


김 작가가 가진 것을 내놓으면서까지 기장 해녀이야기를 전하는데 열심이었던 이유는 자신보단 가족을 위해 희생하는 삶을 살아왔던 1세대 해녀들에게 ‘지금껏 잘 살아왔다’는 자부심을 안겨 드리기 위해서였다고. 신암마을에서 만난 96세 김복례 할머니가 “글만 쓸 줄 알면 내 이야기를 써서 자식들에게 보여주고 싶다”는 부탁에 흔쾌히 “내가 만들어 드릴게요”라고 나선 이유도 그 때문이었습니다. 실제로 김복례 할머니의 일생을 담아낸 ‘김복례 자서전’은 자비 독립출판의 형태로 2020년 5월 출간됩니다. 글은 김 작가가 쓰고 사진은 황 편집장이 찍었죠.

‘김복례 자서전’의 동화책 버전이 바로 지난달 출간된 ‘나는 해녀입니다’인데요. 지난 3년간 기장 해녀를 취재하면서 김 작가는 병원 신세도 많이 졌습니다. 출항해녀 6명의 이야기를 담은 세 번째 책 ‘나는 해녀다’의 탈고를 끝내고선 심하게 앓아눕기도.

기장 1세대 해녀와 함께 찍은 사진. 뒷줄 맨 왼쪽이 김여나 작가, 맨 오른쪽이 황현일 편집장. 황현일 사진작가 제공


김 작가는 주변인들의 도움 덕분에 지금까지 잘 해올 수 있었다고 말합니다. 새벽 3, 4시에 취재를 가야 한다는 요청에도 군말 없이 따라와 준 황현일 편집장, 글을 쓸 때면 곧잘 밥을 거르는 김 작가를 위해 끼니를 챙기고, 책을 위한 홍보행사가 열릴 때면 흔쾌히 무대에 오르는 김옥분 동화구연가,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를 쓴 임정진 작가는 김 작가와 일면식도 없었으나 SNS를 통해 김 작가의 행보를 알고 개인적으로 후원을 이어오고 있다고.

김 작가는 앞으로 동화로 독자들을 찾아갈 계획입니다. 올해 안에 꼬마 해녀와 아기 돌미역을 주인공으로 한 동화가 나올 예정입니다. 내년엔 반려동물, 바다에 관한 책 1권씩 총 3권의 책이 출간을 앞두고 있습니다.

라노는 김 작가와 두 시간 가까이 대화를 나누며 ‘이제껏 모든 취재에 최선을 다해왔는가’, ‘옳다고 믿는 일이라면 대가가 없더라고 최선을 다할 수 있는가’ 되묻지 않을 수 없었어요. 김 작가는 인터뷰 말미에 라노를 보며 마치 어릴 적 자신의 모습을 보는 것 같다며 웃었는데요. 기대에 어긋나지 않도록 라노는 다음 주에도 열심히 취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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