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기는 세계의 두근거리는 박동에 참가하는 것

한겨레 입력 2022. 10. 3. 21:25 수정 2022. 10. 3.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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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심정] 월간 풍경소리]

순례 중인 순천 사랑어린학교 아이들과 학부모들. 사랑어린학교 제공

#1

전남 순천만 와온 바다는 장엄한 주홍빛 낙조가 일품이다. 바닷가 와온마을의 아침은 파란 소리로 가득해진다. 인근 배움터 학생들이 아침마다 마을 길을 걷기 때문이다. ‘사랑어린학교’라는 예쁜 배움터에 다니는 학생들이다. 이곳 배움터의 첫 수업은 언제나 똑같다. 국어, 영어, 수학이 아니다. 바닷가까지 걸어가는 ‘아침 걷기’라는 과목이다.

사계절 빠짐없이 학생들과 선생님들이 함께 걷는다. 어린 7살부터 목청이 갈라지는 변성기 청소년까지 다양하다. 딱히 정해진 대열 없이 삼삼오오 모여서 간다. 선생과 학생들이 뒤섞여 서로 종알대며 도란도란 걷는다. 마을 분들과 마주치면 “안녕하세요”라며 팽팽한 ‘솔♪’ 음으로 인사한다. 구부정하니 서 있던 노인들도 이 명랑한 소리에 흐뭇해한다. 바닷가 늙은 와온마을이 어린 걸음들로 회춘한다.

‘마음보다 몸을 먼저 설득하라’고 니체가 말했던가? 우리 교실의 풍경은 우울하다. 배움의 맥박이 뛰지 않는다. 박동 소리도 없다. 몸을 설득하지 못한 탓이다. 한 시간 남짓 바닷가를 다녀온 학생들의 표정이 환하다. 맑은 공기와 살랑대는 바람과 바다의 갯내음이 배움터 학생들의 몸을 흔들어 깨운 것이다. 니체가 빙그레 웃겠다.

#2

우리 이웃들은 부지런히 걷는다. 파워워킹부터 산책과 순례, 고난의 삼보일배까지 걸음도 다양하다. 팔을 크게 흔드는 파워워킹은 물리적 시간에 저항하는 중년의 절박한 걷기다. 해찰하듯 느긋하게 내딛는 걸음에는 사색이 묻어있다.

칸트의 시계가 떠오른다. 몸이 약했던 칸트는 고향 ‘쾨니히스베르그’에서만 머물렀다. 그는 평생토록 이른 아침 5시부터 세 시간에 걸쳐 산책했다고 한다. 시계가 귀했던 시절에 칸트는 고향 마을의 알람 시계였다. 어쩌면 칸트 철학의 뿌리는 그의 지성보다는 두 다리가 아니었을까. 아무튼 칸트는 여든이 넘도록 살았다고 한다. 그의 걷기는 여러모로 성공적이었다.

#3

오쇼 라즈니쉬는 걷기를 두고 ‘몸으로 하는 명상’이라 했다. ‘위파사나’라는 남방불교의 수행이 있다. 언젠가 추운 겨울날, 이 수행법을 배우겠다며 천안 호두마을로 갔다. 일주일 코스였는데, 첫날부터 “아차~” 후회했다. 수행은 새벽 3시에 좌선부터 시작했다. 문제는 혼침과 드라마처럼 연속되는 망상의 향연이었다. 게다가 공양은 아침 죽과 점심뿐, 오후 불식이었다.

내가 주로 알아차린 것은 허기와 두통이었다. 특히 두통은 ‘상기병’이라 불리는 고약한 것이었다. 다음날 지도하시는 스님에게 증세를 고했다. 전직 무용수 출신이라는 스님은 집중해서 듣더니 천천히 집중하며 말했다. “오늘은 경행을 하십시오”라고. ‘경행’이란 걷는 수행이다. 스님은 “걸을 때는 발바닥의 느낌에 집중해서 천천히 걸어야 합니다”라며 시범을 보여주는데, 달팽이가 운동장을 지나가는 듯 초고속카메라의 느린 화면이었다.

나는 욱신거리는 뇌를 안고 걸었다. 손을 모으고 발가락과 발바닥 그리고 뒤꿈치에서 느껴지는 감각에 집중했다. 그러자 서서히 내 안에 달팽이 한 마리가 들어왔다. 그렇게 오전 내내 달팽이 걸음이었는데, 신통하게 효과가 나타났다. 마치 내 머리가 박하사탕을 깨문 듯했다. 시원한 박하향이 뇌 안에 꽉 찼다. 상기되었던 기운이 아래로 내려갔다.

순천만 바닷길을 따라 아침마다 등교하는 순천 사랑어린학교장 김민해 목사와 아이들. 조현 종교전문기자

#4

‘삼보일배’는 변혁을 위한 걷기다. 간디의 비폭력은 소금 행진이라는 걸음에서 시작했다. 간디의 비폭력 걷기를 한국식으로 변형한 것이다. 일종의 투쟁 방편인데 무서운 걷기이다. 언젠가 수경 스님이 ‘삼보일배’ 도중에 무릎을 크게 상했다는 말을 들었다. 이 무렵, 나도 ‘생명평화순례’에 가끔 동행했는데, 만약에 ‘삼보일배’였다면 36계 줄행랑을 쳤을 것이다.

애통한 걸음을 만났었다. 세월호와 함께 바다에 잠든 아들의 아빠가 십자가를 메고 걸었다. 경기 안산에서 전남 진도 팽목항까지 무려 37일 동안. 그를 어떤 모임에서 보았다. 길의 열기로 그을린 검은 얼굴과 갈라진 입술, 그리고 노란 리본이 달린 나무 십자가는 처연했다. 세상에서 가장 슬픈 걸음이었다. 팽목항에 도착한 그 아빠는 프란치스코 교황에게 십자가를 바쳤다. 교황은 지금도 노란 리본이 달린 그 십자가를 바티칸에 귀하게 모시고 있다.

#5

축지법은 무협지에만 있는 줄 알았다. ‘인디언 워킹’이라는 걷기가 있다. 이 걷기를 어느 스님께서 소개한다고 했다. 나는 ‘이건 또 뭐지?’라며 도심의 푸른 길로 향했다. 기분 좋은 초가을 저녁이었다. 인디언 워킹의 핵심은 무릎을 살짝 구부리고 걷는 것이다. 다소 자세가 요상하지만, 속도는 대단해서 걸을 때 얼굴에 바람이 느껴진다. 그 후로 가끔 인디언 워킹을 했다. 물론 어두운 저녁, 한적한 곳에서 말이다.

몇 해가 지나가면 ‘희망’ 또는 ‘정년’ 퇴직을 해야 한다. 가끔 퇴직 후를 생각해본다. 두 번째 인생의 설계를 머리로 그렸다가 지웠다가를 반복한다. 어차피 미래는 알 수 없는 법. 그래서 한 가지 계획만은 분명하게 세웠다. 일단은 ‘걷는 것’이다. 퇴임 다음 날부터 한 달쯤 걸을 것이다. 섬진강 물길 또는 남녘을 관통하는 남파랑길, 아니면 제주올레길, 어디든 좋다. 유목민이 되어보는 것이다.

#6

길은 인간의 걷기와 함께 탄생했으며, 육신과 영혼을 이어주는 ‘톨게이트’이다. 길을 따라 걷다 보면 세파에 찌든 내 머리가 다시금 박하사탕을 깨물고 삼킬 것이다. 프랑스 작가 다비드 르 브로통은 산문집 <걷기 예찬>에 이렇게 썼다. “보행자는 전신의 모든 살로써 세계의 두근거리는 박동에 참가한다”라고. 그도 박하사탕을 머리로 먹었던 모양이다. 틀림없다.

글 화개(순천 사랑어린학교 공동체원)

*이 시리즈는 전남 순천 사랑어린학교장인 김민해 목사가 발간하는 <월간 풍경소리>와 함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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