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균 어머니와 반복되는 대형참사..'일하다 죽지 않는 사회'는 꿈인가

한겨레 2022. 10. 3.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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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방당국이 지난달 26일 오후 대전 쇼핑몰 화재 현장에서 실종자를 구조해 병원으로 옮기고 있다. 최예린 기자

[왜냐면] 문윤수 | 대전을지대병원 권역외상센터 교수

지난달 26일, 그날도 평소 월요일처럼 주말 동안 권역외상센터로 온 환자들 리뷰하는 회의로 하루를 시작했다. 안타까운 사고로 피 흘리고 여기저기 부러진 환자들이 지난 주말에도 많았다. 회의를 마치고 나와서, 인근 대형 쇼핑몰에서 화재가 발생했다는 속보를 보았다. 단순 화재가 아닐까 하는 바람도 잠시, 곧 소방화재 대응 상향과 함께 검은 연기 사진들이 여기저기 올라왔다. 저 연기 속 어딘가에 있는 안타까운 사람들이 이곳으로 올지도 모르겠구나 생각했고, 실제 환자들이 이송되기 시작했다.

얼굴과 상반신에 그을음이 가득한 한 중년 남성은 심장과 호흡이 멈춘 상태로 119대원들이 가슴 압박을 하며 내원했다. 의식도 없고 숨도 쉬지 않아 의료진은 기도에 관과 굵은 정맥관을 꽂아 넣고 산소, 각종 약물 주입을 시작했다. 가슴을 누르며 어떻게든 심장을 다시 뛰게 하기 위해 온갖 처치를 했다. 소생실 안 시계를 보니 내가 화재 속보를 처음 본 뒤로 한시간 넘게 흘렀다. 그 한시간 남짓 이 환자가 어떤 고통에 몸부림치고 있었는지, 기도로 연결된 관에서 쏟아지는 검고 붉은 가래가 말해주고 있었다.

온종일 인터넷엔 7명의 목숨을 앗아간 화재 관련 속보들이 넘쳤다. 그런데 다른 대형 인재사고가 났을 때와 어쩜 그렇게 똑같은 방식으로 흘러가는지. 대형 참사 뒤 이를 어떻게 다룰지 담은 매뉴얼만은 아주 확실하게 잘 갖춰져 있고, 그 매뉴얼대로 일사천리로 진행되는 듯했다.

사고를 막기 위해 마련된 매뉴얼은 수시로 확인해야 하지만, 이를 알면서도 제대로 하지 않은 것이 분명하다. 공무원들은 현장은 뒤로하고 서류만 가지고 말뿐인 대책회의를 하기에 분주하고, 대책이라는 말만 강조하는 정치권 목소리들도 들린다. 중대재해처벌법에 따른 처벌 문제 때문인지, 아니면 민심이 무서운지 회사 대표는 고개를 숙인다. 다음은 분향소 설치, 다음날 대통령까지 현장에 방문했다.

어디서 본 듯한 매뉴얼대로 반복되는 사후약방문 같은 일들이 순차적으로 진행된다. 이제 다음 과정은 경찰과 소방당국의 화재현장 조사, 화재 원인에 대한 추측성 기사들이 난무할 것이다. 지금이야 안타까운 희생자들에 대한 애도를 담은 기사들이 보이지만 이 또한 서서히 잊힐 것이다. 한두달, 한두해 세월이 흐르면서 사고는 사람들 머릿속에서 지워지고 희생자 가족들의 슬픔만이 남는다.

내가 일하는 권역외상센터에서는 교통사고, 추락 등으로 발생한 다발성 골절, 출혈로 심각한 환자들을 받아 병원 도착 즉시 소생과 초기 처치, 응급수술 등을 진행한다. 이곳에서 오래 일하다 보니 자연스레 하인리히 법칙을 눈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었다. 큰 사고들은 발생 전에 수많은 징후를 보인다는 그 법칙. 1건의 사망사고 이전에 최소 29건의 작은 사고, 300여건의 잠재적 징후가 있다고 한다. 헬멧 등 안전장비만 제대로 갖췄다면 두개골이 부서지지 않고 심각한 뇌출혈이 발생하지 않았을 환자, 안전수칙만 제대로 지켰으면 1톤 쇳덩이에 골반이 산산조각 나지는 않았을 환자…. 기본만 지켰다면 사고는 일어나지 않고, 이곳 권역외상센터를 찾을 일도 없었을 환자들이 너무나 많다. 반대로 높은 곳에서 일하다가 실수로 큰 사고를 당할 뻔했지만 안전장비 덕분에 작은 상처만 입은 노동자들도 볼 수 있다.

누구나 일하다 죽지 않기를 원한다. 더운 여름 시원한 에어컨이 나오는 사무실에서 모니터를 바라보며 일하는 이도, 남들 자는 시간에 무더운 어둠 속에서 일하는 사람도 같은 마음일 것이다. 하지만 둔탁한 신발을 신고 남들보다 더 높은 곳에서 일하고, 안전장치라고는 헬멧 하나밖에 없는 오토바이를 타고 일하는 노동자들, 국가는 이들의 안전과 생명을 더더욱 지켜줘야 한다.

지난여름 어느 날, 밤샘 당직근무를 마치고 퇴근하는 길에 법원 앞을 지날 때였다. 무더위에 손수건으로 땀을 닦으며 애절한 눈빛으로 피켓을 들고 호소하는 고 김용균 노동자의 어머니가 있었다. 김용균 노동자 사망사건 항소심 공판이 열리는 날이었다. 한없이 무겁기만 한 어머니 표정과 피켓 내용이, 남들 자는 새벽 3시 석탄운송용 컨베이어벨트에 끼여 삶을 마감한 24살 아들과 관련한 재판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조금은 알 수 있게 해줬다. 어느덧 시원한 바람이 부는 가을이 됐지만, 간절한 눈빛으로 법원 앞에 서 있던 그 어머니 모습이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안타까운 화재로 희생된 노동자들의 명복을 빈다. 그들 가족이 김용균 노동자 어머니처럼 몇년 뒤 무더운 여름날 법원 앞에 서는 일은 없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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