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 압박에 보수당 반란표까지..트러스, 결국 '굴욕적 유턴'

김태영 기자 2022. 10. 3.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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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英 감세안 열흘만에 없던일로
IMF "인플레 부추긴다" 성명에
반대표 고려 의원 70명 달하는 등
보수당 내부 부자감세 반발 거세
당내기반 약한 트러스 결국 철회
파운드화 가치 반등..시장도 환영
[서울경제]

전 세계 금융시장을 혼란에 빠뜨린 감세 정책을 고수하겠다는 의지를 거듭 드러냈던 영국 정부가 열흘 만에 ‘부자 감세’를 전격 철회한 것은 국제통화기금(IMF)과 미국 등 외부의 압력에 더해 집권 보수당 내부에서도 반발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진 데 따른 영향으로 풀이된다. 감세안을 하원 표결에 부치더라도 부결될 것이라는 예측에 힘이 실리면서 당내 기반이 약한 리즈 트러스 총리가 더 이상 권력 기반이 흔들리는 것을 막기 위해 급격히 ‘유턴’을 결정했다는 분석이다. 다만 인플레이션이 거센 상황에서 감세를 추진하겠다는 트러스 정부의 기본 의지는 여전해 시장의 불안을 잠재우기는 역부족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취임 한 달 만에 새 정부가 ‘레임덕’에 빠진 영국의 정치 불안도 계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3일(현지 시간) 로이터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쿼지 콰텡 영국 재무장관은 이날 성명을 내고 소득세 최고세율을 45%에서 40%로 인하하는 정책을 철회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다만 콰텡 장관은 “이번 조치(고소득층 감세 폐지)는 성장 정책의 다른 부분에 집중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며 가계와 기업의 에너지 비용 지원, 소득세 기본세율 및 인지세 인하, 인프라 프로젝트 가속화 등 앞서 발표했던 여타 정책은 계속 추진할 방침임을 시사했다.

트러스 정부의 경제정책에 대한 비판은 지난달 말 재무부가 450억 파운드(약 70조 원) 규모의 감세안이 포함된 ‘미니 예산안’을 발표한 직후부터 제기돼왔다. 특히 연 15만 파운드 이상을 버는 고소득층의 소득세 최고세율을 45%에서 40%로 인하하는 부자 감세는 안팎의 집중적인 비난을 받았다. 해당 안은 약 20억 파운드 규모로 전체 감세 금액의 4%에 불과했지만 거센 인플레이션으로 서민층이 생활고에 시달리는 와중에 감세 혜택이 부유층에 집중된다는 지적이 잇따랐다. 정부가 감세로 인한 세수 부족분을 정부 차입을 늘려 채우기로 한 데 대해서도 국가부채가 늘어나 재정이 악화할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컸다.

이후 불어닥친 금융시장 혼란과 이를 잠재우기 위한 영국 중앙은행(BOE)의 ‘긴급 개입’은 여론이 감세안에 등을 돌리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IMF가 이례적으로 성명을 내고 “목표 없는 재정 정책이 인플레이션을 부추긴다”고 경고하는 등 영국 경제에 대한 우려가 커지면서 파운드화 가치는 한때 사상 최저치로 떨어졌고 10년물 국채 금리는 2008년 이후 최고치인 4.5%까지 올랐다. 급기야 연기금 지급 불능 우려까지 대두됐다. 결국 BOE가 지난달 28일 양적긴축 일정을 순연하고 국채를 매입하는 등 수습에 나서면서 ‘급한 불’을 껐다. 하지만 BOE가 물가를 잡기 위한 금리 인상 기조를 여러 차례 드러내고 양적긴축까지 앞둔 상황에서 정부가 확장적 재정 정책을 예고한 데 대해 시장은 ‘영국이 모순되는 정책을 동시에 추진한다’는 불신을 드러냈다.

그럼에도 바로 전날까지 언론 인터뷰에서 감세안 강행 의지를 거듭 밝혔던 트러스 총리가 이날 입장을 돌연 바꾼 것은 감세안, 특히 부자 감세안이 보수당 내부에서도 외면을 받았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텔레그래프는 2일 소식통을 인용해 하원의원 중 최소 13명이 공개적으로 감세안에 반대 의사를 표명했으며 반대표를 던질 것을 고려 중인 의원도 약 70명에 달한다고 전했다. BBC는 “점점 더 많은 국회의원들이 하원에서 감세안이 부결될 것으로 예측하고 있었다”며 “트러스 총리는 당장 (부자 감세 철회) 결정을 내리면 피해가 여기서 그칠 것이라고 기대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다만 외신들은 이번 부자 감세 철회만으로는 감세안을 둘러싼 논란이 끝나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BBC는 “이미 사람들은 시장의 향방을 주시하고 있다”며 “노동당은 감세안 철회가 부자 감세를 제외한 다른 부분에서도 진행돼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노동당의 레이철 리브스 의원은 “정부가 정책을 철회했지만 이전보다 높아진 모기지 금리와 물가에 직면한 영국 가정경제에는 너무 늦은 결정”이라고 비판했다. 감세안에서 한발 물러섰음에도 시장이 우호적인 반응을 보이지 않고 정치권의 비판도 수그러들지 않으면서 안 그래도 당내 기반이 약하다는 평가를 받는 트러스 총리의 입지가 더 좁아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로이터통신은 “한 보수당 의원은 (내각) 의사 결정이 더 체계적으로 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며 “트러스 총리가 굴욕적인 ‘유턴’에 내몰렸다”고 평가했다.

김태영 기자 youngki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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