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앳된 얼굴의 이정재가 열연한 청춘, 2030들 '내 이야기' 같을걸요"
8090 영화계 이끈 한국의 스필버그
연기경력 1년도 안 됐던 이정재 캐스팅
꿈에 목말라 조급해하고 때론 좌절하는
여느 20대의 모습 스크린 속에 담아내
"영화 속 인물들 현 청춘과 본질 같을것.. 작품이 삶 돌이켜보는 계기 될 수 있길"
■"청춘영화의 원형, MZ세대와 소통하고파"
배창호 감독은 선배였던 이장호, 후배였던 이명세 감독과 함께 1980~1990년대 한국영화계를 견인한 주역이다. '꼬방동네 사람들'(1982)로 데뷔한 그는 '고래사냥'(1984), '깊고 푸른 밤'(1985), '황진이'(1986), '기쁜 우리 젊은 날'(1987) '꿈'(1990) 등 대중성과 작품성을 겸비한 영화를 선보여 '한국의 스필버그'(영국의 '이코노미스트)로 평가받았다. 영화산업 시스템이 격변하던 시기인 1994년 제작사 '배창호 프로덕션'을 설립해 X세대의 감성을 담은 영화 '젊은 남자'를 내놓았다. 이 영화로 이정재는 X세대 아이콘으로 등극했고, 대종상·청룡상 등 각종 신인상을 석권했다.
배 감독은 당시 투자사의 반대를 무릅쓰고 연기 경력 1년도 채 안 됐던 이정재를 기용했다. 그는 당시 이정재에 대해 "마스크가 너무 개성 있지도 그렇다고 무개성하지도 않고 적절했다"며 "뛰어난 신체 조건에 열정도 있고 역할에 대한 이해도 빨랐다"고 기억했다. 또 "개봉 후 이정재가 입대한 기억이 난다. 이듬해 봄에 드라마 '모래시계'가 방영되면서 이정재는 전국적 스타로 부상했었다"고 돌이켰다. 글로벌 스타가 된 지금의 성공에 대해선 "많이 축하한다"면서 "너무 도취하지 말고 잘 즐기길 바란다. 성공이 주는 기쁨이 있다. 좋은 작품 계속 해나가길 바란다"고 부연했다.
'젊은 남자'는 소위 옛날 영화인데도 배 감독의 뛰어난 연출력 덕에 그야말로 명불허전이다. 앳된 얼굴로 한껏 멋을 낸 이정재의 모습은 지금 봐도 멋지다. 이제는 고인이 된 전미선의 반항적인 모습과 은막의 스타가 된 고혹적인 분위기의 이응경 그리고 '현역' 신은경의 젊은 시절 모습은 여러 가지 감흥을 불러일으킨다. 신인 권오중, 강성진, 정찬의 모습도 반갑다. 영화적으로는 성공할 기회를 눈앞에 두고 안타깝게 사그라지는 청춘의 모습이 쓸쓸하다.
배 감독은 "1990년대 당시 표현욕구와 성취욕구가 큰 X세대가 출현했다. 그들이 궁금해 대화를 나누고 록카페 등 좋아하는 장소를 찾아다녔다. 꿈에 대한 갈망이 크면서도 성급하고 또 좌절한다는 점에서 내 20대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느꼈다"고 설명했다. 무엇보다 취향은 달라도 본질은 같다는 점에서 오늘날의 MZ세대와도 소통할 여지가 있다고 판단했다. 스타를 꿈꾸는 행렬 역시 현재진행형이다. 배 감독은 말했다. "그들에게 일종의 경고음을 들려주고 싶었다. 삶의 엄중함이라고 할까. 꿈을 좇는 것도 좋지만,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성급하게 가거나 스스로 깨어있지 않으면 사소한 부주의로 준엄한 결과를 맞이할 수 있다."
■"현실을 직시하라, 영화보다 삶"
꿈은 청춘의 특권과도 같다. 배 감독 역시 어릴 적부터 영화감독을 꿈꿨으나 현실적 이유로 경영학을 전공했고 대기업에 입사했다. 아프리카 파견 근무 중 이장호 감독이 영화를 만든다는 소식을 듣고 더 이상 망설일 수 없다는 생각에 곧장 귀국해 사표를 냈다. 그는 "막상 영화판에 들어가 보니 현실이 만만치 않았다"며 "열정과 능력뿐 아니라 인내심도 필요했다. 그래서 데뷔작으로 능력을 인정받지 못하면 영화판을 떠날 생각이었다"고 돌이켰다. 결과적으로 그는 총 18편의 영화를 연출했고, 이후 건국대 영화학과 교수로 재직하기도 했다. 마지막 강의 때 그는 학생들에게 "영화보다 인생을 더 소중히 하라"고 조언했다. "학생 모두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이루지 못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러면 인생의 다른 의미를 찾으면 된다." 사람은 늘 가지 못하는 길에 미련을 두나, 인생이란 얻는 게 있으면 놓치는 것도 있다. 배 감독 역시 예외가 아니라는 듯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했기 때문에 아내가 감수해야할 부분이 있었다"며 고충도 내비쳤다.
"예술의 길은 힘들고 외롭다. 유혹도 있기에 늘 내 길을 점검하고 점검해야 한다. 나 역시 그랬다. 나만의 가치를 찾았고, 내 마음의 지도를 따랐다." 자신만의 가치는 무엇이었을까? "그건 바로 영화란 마음의 양식이 되어야 한다는 것. 삶을 바라보는 거울의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런 내 무의식에 있던 생각을 구체화한 작품이 바로 영화 '황진이'였다. 그렇다고 영화를 마냥 훈계조로 만들면 안 된다. '젊은 남자'도 흥미롭게 찍고자 했다. 그저 내가 공유하고 싶은 메시지를 관객이 찾아가면 좋겠다고 바랐다."
칠십을 앞둔 어른께 삶의 조언도 구해봤다. 그는 잠시 생각하더니 "현실을 직시하라"고 말했다. "흔히 직시하면 괴로우니까 숨거나 도피한다. 그러면 안 된다. 젊은이들에게 희망을 잃지 말라고 하는데 무작정 낙관하는 것도 답은 아니다. 현실을 직시하되 해결책이 있다는 긍정적인 사고방식이 중요하다. 감성과 이성의 균형도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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