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 우영우' 이승민 "난 남들보다 느리지만 포기하지 않는 골퍼..마스터스 완주가 꿈"

조수영 2022. 10. 3. 1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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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 제네시스 챔피언십 도전하는 '골프 우영우' 이승민 인터뷰


“지금도 석달 전 장애인 US오픈에서 마지막 퍼트가 들어갈 때의 느낌, 우승이 결정됐을 때 다른 선수들이 뿌려주던 물의 시원함이 기억나요. 그러면 자신감이 막 생겨요. 이번 제네시스 챔피언십에서도 그 느낌을 유지하며 커트통과에 도전해볼게요.”

이승민(25)에게 올해 7월은 잊을 수 없는 시간이다. 사상 처음으로 열린 장애인 US오픈 골프대회에서 연장전까지 치르는 접전 끝에 초대 챔피언 타이틀을 따냈기 때문이다. 오는 6일 한국프로골프(KPGA) 코리안투어 최대 대회인 제네시스 챔피언십 도전을 앞둔 이승민을 3일 만났다. 그는 “이제 저는 우승을 해본 선수”라며 “제네시스 챔피언십에서는 매일 1언더파씩 기록해 커트통과와 4라운드 완주를 해내고 싶다”고 환하게 웃었다.

이승민은 자폐성 발달장애를 가진 골퍼다. 최근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가진 변호사가 주인공으로 등장한 드라마의 이름을 따 ‘필드의 우영우’라 불린다. 이날 이승민은 인터뷰 내내 기자와 눈을 맞추며 최선을 다해 또박또박 자신의 생각을 전달했다.

태어난 지 2년 정도 됐을 때 자폐 판정을 받은 이승민이 처음 골프채를 잡은 것은 다섯살 즈음, 외교관인 아버지를 따라간 나이지리아에서였다. 아버지의 골프채를 휘둘렀는데 공이 정타를 맞고 예쁜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갔다. 그때의 감각이 어린 그에게도 짜릿했던 모양이다. 외부에 관심이 없고 거의 말을 하지 않던 이승민이 가끔 어머니에게 한 말이 “골프하러 가자”였다고 한다. 집에서도 어린이채널에는 무관심했지만 타이거 우즈가 나오는 골프채널에는 완전히 몰입해서 몇시간이고 보곤 했다.

초등학교까지 미국에서 아이스하키팀으로 활동했다. 다소 느리고 행동이 남달랐지만 친구들은 편견없이 같은 팀에서 어울려주었다. 매 시즌 ‘끈기있는 선수상’은 그의 차지였다.

중학교 입학을 앞두고 이승민은 골프로 진로를 바꿨다. 과격한 몸싸움이 필수인 아이스하키에서 요령없는 이승민은 유독 부상이 잦았다. 그맘 때 이승민이 다시 한번 말했다. “엄마, 나 골프할래.” 공이 하늘을 날아가는 모습을 보는게 세상에서 가장 좋았다. 이승민은 “공이 클럽을 잘 맞고 하늘 높이 날아가면 가슴이 뻥 뚫리는 것 같고 머릿속이 쾌청해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아이스하키로 다진 단단한 하체, 여기에 집중력과 끈기가 뛰어난 이승민은 골프를 시작하며 물만난 고기처럼 빠르게 성장했다. 고등학교 2학년이던 2014년 세미프로 자격증을 땄고 2017년 KPGA 코리안투어 정회원이 됐다.

하지만 이때부터 본격적인 전쟁이 시작됐다. 이승민의 어머니 박지애씨는 “동산을 하나 넘었더니 에베레스트가 펼쳐진 것 같았다”고 회상했다. 프로 무대에서 잘 쳐야 한다는 부담감이 이승민을 누르면서 가장 자신있던 드라이버샷에 입스가 왔다. 티박스에 올라가는 걸 무서워했을 정도다. 박지애씨는 “그맘때 승민이가 ‘골프를 그만두고 아르바이트를 해야겠다’고 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골프를 그만두고 뭘해야할지 혼자 나름대로 고민했던 거죠. 식당, 패스트푸드 가게를 갈때마다 아르바이트생들을 그렇게 유심히 쳐다보더군요. ‘아르바이트도 전문적인 능력이 필요해. 승민이가 제일 잘 할 수 있는 골프를 계속 하는게 낫지 않을까?’하고 달랬죠.(웃음)”

슬럼프는 지독한 연습으로 극복했다. 아침 6시에 연습장에 나가 오후 5시까지 스윙을 다듬고, 저녁이면 체력훈련을 했다. 하루종일 드라이버만 1000번넘게 치기도 했다. 훈련이 너무 힘들어 탈주극을 벌이기도 했단다. 그래도 금세 코치에게 잡히고 훈련에 전념하길 여러 차례, 지난해 초부터 스윙이 안정되기 시작했다. 실력에 자신감이 붙으면서 지난 여름에는 미국프로골프(PGA) 콘페리투어 퀄리파잉(Q) 스쿨도 도전했다. 이승민은 “올 연말에 아시안투어 Q스쿨에 나가고 콘페리투어에는 내년에 다시 도전할 것”이라고 말했다. 자폐를 극복한 희망의 아이콘이 되면서 하나금융그룹, SK텔레콤의 후원도 받고 있다.

지난 7월 장애인 US오픈 대회에서 우승한 당시 이승민. USGA 제공


이승민의 장기는 정확한 드라이버샷이다. 비거리는 290야드로 투어 프로의 평균 수준이지만 페어웨이 안착률은 73.21%에 이른다. 현재 코리안투어에서 페어웨이 안착률 6위인 방두환(72.93%)보다 높다.

이승민에게 드라이버샷을 똑바로 보내는 비결을 물었다. “페이스 앵글이 방향성을 결정해요. 임팩트때 왼쪽 손등이 목표물을 향해야 합니다.” 이승민은 수차례 반복해서 기자에게 스윙 동작을 보여주며 이해시키려 애썼다. 인터뷰가 끝나고도 이승민은 기자를 주차장까지 배웅해주며 “임팩트 때 손동작을 기억하라”고 누차 강조했다. 자신이 드라이버 입스를 극복한 방법을 기자에게 꼭 알려주겠다는 마음이 느껴졌다.

이승민의 꿈은 메이저대회 마스터스 대회 출전이다. 커트통과에 성공해 최종일 18번홀 그린에서 사람들의 박수를 받으며 홀아웃하고 싶단다. 그리고 이번 장애인US오픈 우승으로 꿈이 하나 더 생겼다. “장애인 대회에서 우승했으니 일반대회에서도 꼭 한번 우승하고 싶어요. 저는 남들보다 느리긴 하지만 한번 시작 한것은 포기하지 않고 오래오래 버티거든요. 어제보다 오늘이, 오늘보다는 내일 제 골프가 더 발전할 거라고 믿고 있어요.”

느리지만 누구보다 꾸준하게 달리는 골퍼. 이승민은 지금도 한발씩 자신의 속도로 나아가고 있다.

조수영 기자 delinew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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