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 처리했더니 '중고 부품' 써 수리..정비소보다 보험사 횡포 탓

유선희 2022. 10. 3. 1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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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험사 소속 손해사정사 '수리비 후려치기'
그마저 연체..9월 4대 보험사 미수금 13억
보험사 '과실 비율 소송' 땐 기약조차 없어
정비소 잦은 미수금 탓에 값싼 부품 사용
조오섭 의원 '자동차손배법 개정안' 준비
사고 발생 시, 소비자는 정비소에 차량 수리를 맡기면 보험사가 알아서 견적대로 비용을 지불할 것으로 예상하지만, 실제로는 보험사에 소속된 손해사정사가 수리비 ‘후려치기’를 하고, 그마저도 제때 지급하지 않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결국 정비소는 값싼 부품으로 수리를 하는 등 서비스의 질을 낮춰 소비자가 피해를 보게 된다. 게티이미지 뱅크

“지난달까지 보험사로부터 받지 못한 미수금만 2억원이 넘어요. 고객들은 정비소에 차량수리를 맡기면 보험사에서 알아서 수리비를 지급할 거라고 생각하잖아요? 현실은 안 그래요. 과실 비율을 놓고 보험사끼리 소송이라도 벌이면, 소송 끝날 때까지 정비소는 그 수리비 못 받습니다.”

서울 강서구에서 19년째 자동차 정비사업소를 운영 중인 공아무개씨(52)는 ‘보험사 미수금’ 이야기가 나오자 목소리가 높아졌다. 공씨는 소비자의 사고 차량이 제대로 된 수리를 받지 못하는 것은 ‘보험사의 배째라식 횡포’ 탓이 크다고 했다. “수리 견적이 200만원이 나왔다면, 보험사 쪽 손해사정사가 ‘160만원에 수리하라’는 식으로 후려치기를 합니다. 그마저 장기간 안줘요. 도색만 멀쩡하면 뭐합니까? 보험사가 원하는 가격에 맞추고 미수금 고려해 수리하려다 보니 부품도 싼 걸 쓰고, 수리 단계도 제대로 안 밟는 거죠. 결국 고객이 그 피해를 고스란히 보는 겁니다.”

소비자가 사고 시 차량 수리비를 보험 처리할 때 차량을 정비사업소에 맡겨 수리한 뒤 정비사업소가 보험사에 ‘비용’을 청구하도록 하지만, 보험사들이 정비사업소에 수리비를 제때 지급하지 않는 경우가 비일비재한 것으로 나타났다. 흔히 소비자는 정비사업소가 ‘폭리’를 취하기 위해 값싼 부품이나 중고 부품을 이용하는 등 제대로 된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는다고 의심하지만, 실제로는 뒤에 우월한 지위를 이용한 보험사 ‘횡포’가 자리하고 있는 셈이다.

3일 <한겨레>가 조오섭 더불어민주당 의원한테서 받은 자료를 보면, 9월 한달 동안 ‘보험수리비 장기미지급금 등록 시스템’에 접수된 상위 4개 보험사(삼성·현대·케이비(KB)·디비(DB))의 장기미수금(1개월 이상 미지급)은 총 12억9632만원(1160건)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평균 지연 기간 역시 27개월(817일)이 넘었다. 소비자가 맡긴 차량을 수리했지만, 평균 27개월이 넘는 기간 동안 4개 보험사가 13억원가량을 지급하지 않고 ‘연체’하고 있다는 뜻이다.

통계를 자세히 보면, 삼성이 3억8900여만원(385건·지연기간 970일)으로 가장 많았고, 디비 3억2100여만원(303건·746일), 케이비 3억1500여만원(231건·666일), 현대 2억6900여만원(241건·889일) 순이었다. 기간을 넓혀 2021년 1월1일~2022년9월30일까지 통계를 보면, 4개 보험사 미수금은 26억2천여만원에 달했다.

자료: 조오섭 더불어민주당 의원.

특히 차량 사고를 둘러싸고 보험사 간 ‘과실 비율 분쟁’이 발생할 경우, 소송이 끝날 때까지 미수금을 받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이 업계의 설명이다. 삼성화재가 제출한 자료를 보면, 2021년 미수금 청구 445건 가운데 97건(21.8%)이 ‘과실비율을 둘러싼 분쟁으로 결과가 나오지 않은 탓’이었다. 이런 이유로 보험사와 정비업체 간 소송도 빈번하다. 올해 9월 기준, 보험사와 정비업체 간 소송 건수는 104건(금액 약 34억원)에 달한다.

이런 상황이 빈발하는 이유는 보험계약 당사자는 소비자이지 정비사업자가 아니기 때문에 수리비 지급을 독촉할 권한이 정비업체엔 없기 때문이다. 정비업체가 사고 차를 우선 수리한 후에 보험사가 손해사정을 하는 ‘후 손해사정 관행’ 탓도 있다.

고안수 한국자동차검사정비사업조합연합회 본부장은 “사고 차량 수리 시 소비자는 자신의 이해를 대변할 손해사정사를 선임할 수 있지만, 대부분 이런 사실을 몰라 보험사에 위임한다”며 “보험사 자회사에 소속된 손해사정사는 수리비 후려치기를 하고 정비소 쪽에 손해사정 내역서조차 제공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 “이런 관행이 반복되니 정비업자는 보험사가 지급할 금액과 미수금을 예상해 그에 맞춰 값싼 부품을 쓰거나 수리 단계를 축소하는 등 서비스의 질을 낮춰 소비자가 피해를 보게 된다”고 덧붙였다.

앞서 2019년 10월 4개 손해보험사와 자동차검사정비사업조합, 국토교통부, 중소벤처기업부, 소비자연대 등이 참여해 미수금을 신속히 지급하는 ‘상생협약’을 맺고 2020년 5월~2021년 5월 ‘선 손해사정제도’를 시범 운영했으나 이후 상황은 되돌이표를 그렸다.

조오섭 의원은 “보험사가 정비사업소 쪽에 자세한 손해사정 내역서를 반드시 제공하고, 정비사업소 쪽은 국토부 장관이 고시한 기준에 따라 수리비를 보험사 쪽에 청구할 수 있는 내용을 담은 ‘자동차 손해배상 보장법 일부 개정안’을 발의할 예정”이라며 “이를 통해 제대로 된 수리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소비자의 권리를 보호하고, 보험사의 횡포를 막을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유선희 기자 duc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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