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지원이라는, 이 문제적 인물이 다시 보이기 시작했다('작은 아씨들')

정덕현 칼럼니스트 2022. 10. 3. 1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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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아씨들', 최강 빌런 엄지원은 가해자인가 피해자인가
아버지 나무와 푸른 난초는 과연 무엇을 상징하는 걸까('작은아씨들')

[엔터미디어=정덕현] "아버지가 괴물이면 아이도 괴물이 될까?" tvN 토일드라마 <작은아씨들>에서 효린(전채은)은 친구 인혜(박지후)에게 그렇게 묻는다. 효린의 부모들은 괴물이다. 박재상(엄기준)은 변호사로서 자신의 이름을 내건 장학재단까지 만들며 사회사업을 하고 시장 출마에 나서는 등 사회적으로 존경받는 인물이지만, 실상은 아내 원상아(엄지원)의 아버지 원기선 장군 밑에서 그가 시키는 대로 살인도 주저하지 않았던 괴물이다.

원상아는 아버지 원기선 장군에 의해 학대받았고, 아버지가 그의 범죄를 모두 폭로하려한 엄마를 '닫힌 방'에 2922일 동안 가둬 결국 자살하게 만드는 걸 보면서 괴물이 됐다. 그의 삶은 연극이 되었고, 그는 자신이 꾸민 연극 속에 사람들을 끌어들였다. 미니어처 작품으로 그가 만든 '닫힌 방'처럼, 그는 화영(추자현)을 그 방 장롱 옷걸이에 목매달아 죽게 만들었고, 효린과 함께 그 집으로부터 도망치려 하는 인혜를 붙잡아 자신의 저택의 비밀공간인 '닫힌 방'에 가두었다.

원상아가 그 중심에 있는 것인지, 아니면 원상아 또한 비밀조직인 정난회에 의해 조종되고 있는 것인지는 아직 알 수 없다. 하지만 이 모든 사건들 속에서 박재상이나 원상아 같은 괴물의 탄생에는 정난회가 관련되어 있다. 그런데 그 정난회는 원기선 장군이 베트남 참전 후 직접 들여왔다는 아버지 나무와 푸른 난초로 상징된다.

정난회와 관련되어 있다가 죽은 자들에게서 모두 푸른 난초가 발견되었다는 건, 그 난초가 일으키는 정신착란이라는 직접적인 효과를 말하는 것이면서 동시에 푸른 난초의 유혹적인 특징이 더해져 있다. 누구나 든든한 아버지가 있어야 성공할 수 있다는 일종의 신화를 원상아도 박재상도 강조한 바 있다. 특히 박재상은 자신 이름의 재단을 만들며 자신이 바로 어려운 청춘들의 든든한 아버지가 되어 주겠다 말하기도 했다.

푸른 난초는 아버지 나무를 떠나서는 살 수가 없다. 그래서 그 나무에 기생해 거기서 나오는 미생물, 박테리아를 먹고 자란다. 그 위에 얹어져야 살 수 있는 푸른 난초. 그런데 그렇게 생존하면서 뿜어내는 향은 사람들의 정신을 혼미하게 만들고 때론 죽음에 이르게 만든다. 박재상의 실체를 폭로하기 위해 스스로 그에게 살해당하는 걸 선택한 원상우(이민우)는 그 영상을 인경(남지현)에게 넘기고 그래서 세상에 박재상이 괴물이라는 사실이 폭로되지만 그 역시 건물 꼭대기에서 떨어져 죽음을 맞이한다. 박재상의 손에도 푸른 난초가 쥐어져 있다.

박재상이 이 드라마의 최강 빌런이라 생각했지만 그 정체가 드러나는 순간 죽음을 맞이하며 이런 예상이 빗나갔다는 걸 드라마는 보여준다. 그렇다면 진짜 최강 빌런은 원상아일까. 그는 실제로 박재상을 때론 유혹하고 때론 몰아세우며 조종하는 푸른 난초 같은 인물이다. 박재상이 죽자 그는 인주(김고은)에게 전쟁을 선포한다. "왜 사람 말을 무시해. 내가 가만 안 있는다고 했잖아. 기대해.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

원상아가 괴물이자 최강 빌런처럼 보이지만, 그는 잔혹한 아버지 때문에 엄마를 잃은 기억 속에서 좀체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피해자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가 전면에 보이긴 하지만 그의 뒤에 어른거리는 정난회의 그림자가 느껴진다. 다시금 모습을 드러낸 원령학교의 교장 장사평(장광)은 그런 의미에서 의심이 가는 인물이다.

원상아 이면에 진짜 무시무시한 괴물 조직이 존재하고 있다는 의심을 갖게 하는 또 다른 이유 중 하나는 이 드라마가 가진 구조적인 특징 때문이기도 하다. <작은아씨들>의 원전도 그렇지만 이 작품 역시 여성 서사를 전면에 내세운 작품이다. 자본화된 세상이 가진 괴물 같은 폭력들을 그리고 있지만, 그것이 '아버지 나무'와 '푸른 난초'로 상징되고 있는 것도 그래서 흥미로운 대목이다. 아버지 나무로 대변되는 폭력적이고 비뚤어진 과거 현대사에 깃든 남성성의 세계와 세 자매로 대변되는 여성성의 세계가 대결하는 구조로 이야기가 그려져 있기 때문이다.

인주와 인경 그리고 인혜는 서로를 너무나 아끼고 사랑하면서도 구속하려 하지 않는다. 인주가 인경에게 모든 걸 놓고 같이 떠나자고 하면 어떻게 할 거냐고 묻자, 인경은 이렇게 말한다. "언니. 언제든지 나 두고 가도 돼. 나 이제 언니 선택 응원할 수 있어. 우리 인혜 행복하길 바라는 것처럼. 그러니까 나한테도 그렇게 해주지 않을래? 저축은행 피해자들, 비명에 죽은 제보자들, 나와 함께 이 길에 나서준 사람들, 그리고 고모할머니. 오래 전부터 난 이 사람들과 함께 있어. 난 지금 어디에도 갔다 올 수가 없어." 이렇게 말하자 인주는 금세 인경의 말을 받아들인다. "미안. 내가 괜한 소리했네."

인혜가 효린과 함께 외국으로 도망치는 선택을 했을 때도 인주는 이를 선선히 받아들였다. '자리 잡히면 연락한다'는 짧은 메모 한 장만으로. 이들은 가족이고 자매이지만 그럼에도 각자의 선택을 존중하고 그걸 지지하며 결국 그 길로 각자 나아간다. 인주가 어떻게든 돈을 벌어 동생들을 부양하려 하는 것처럼, 인경은 지금껏 추적해온 사건들을 계속 취재해 나가고, 인혜는 자신을 오히려 부담스럽게 했던 언니들의 희생으로부터 벗어나 훨훨 자유롭게 세상 속으로 날아간다. '아버지 나무'와 푸른 난초로 묶여져 있는 저 괴물들의 삶과는 대비되는 모습이다.

이처럼 가족 혹은 핏줄, 커넥션으로 엮어진 자본화된 시스템 속에서 서로 다른 대비된 삶의 양태를 보여주는 두 부류의 관점으로 들여다보면 원상아라는 문제적 인물이 다시 보인다. 그는 가해자일까 피해자일까. 가해자처럼 보이지만 그 뒤편에 놓인 숨은 '아버지 나무'의 그림자들에 의한 피해자처럼 보이기도 한다. 원상아 역시 그저 엄마처럼 저들 세계의 '닫힌 방'에 구속 되어 있는 푸른 난초에 불과하다면 진짜 아버지 나무라는 최강 빌런은 누구이고 그건 무얼 말해주는 걸까. 남은 2회가 못내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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