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신칼럼]반도체 주권 수호를 위해 사람이 필요하다

박종진 2022. 10. 3. 12:59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전상근 고려대 교수(한국전자파학회 상임이사)

'21세기 산업의 쌀' '첨단 전자공학의 종합물' '국내 1위 수출품목'.

이쯤 하면 공학을 전공하는 독자가 아니더라도 무엇을 의미하는지 대부분 알 것이다. 바로 반도체다. 그런데 요즘 이 반도체가 더욱더 크게 주목 받고 있다. 반도체 수급 차질로 신차를 구입하고도 1년 이상 기다려야 인수하는 불편함이 빈발하고 있고, 국제적으로는 열강들의 패권 경쟁 속에 강력한 무기로 반도체가 이용되고 있는 형국이다.

미국과 중국은 상호 견제 및 안보 확보 수단으로 반도체 투자경쟁을 통해 국산화를 강력히 추진하고 있으며, 동맹국과 '칩4' 같은 기술동맹을 강화하려 하고 있다. 이쯤 되면 가위 '반도체 전쟁' '반도체 대란'이라는 말을 그냥 흘려보내기 어렵고, “반도체 산업 육성은 국가 간의 단순한 기술 경쟁이 아니라 '주권'에 관한 문제다”라는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의 말도 과장이 아님을 알 만하다.

우리 정부도 '반도체 주권' 사수를 위한 여러 방안을 계획 및 추진하고 있다. 사람이 곧 기술이기 때문에 반도체 인력 양성을 위한 대학 정원 증대, 산업체와 연계된 반도체학과 설립 등이 이뤄지고 있다. 반도체 산업 지원을 위한 K-칩스 법 제정도 계획하고 있다. 여기서 반도체와 관련해 독자가 이미 잘 알고 있거나 다소 오해하고 있는 몇 가지 사항을 짚어 보기로 하자.

첫째 반도체라 하면 대개 트랜지스터라고 불리는 전자 소자를 미세하게 가공하고 제작하는 공정 기술을 떠올릴 것이다. 반도체 산업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중요한 기술임에는 틀림 없다. 굴지의 반도체 회사들이 막대한 연구개발(R&D)과 설비 투자를 통해 서로 끊임없는 경쟁을 하고 있는 기술이기도 하다.

그러나 반도체에는 그러한 공정 기술뿐만 아니라 수십에서 수천 억개 이상의 트랜지스터를 이용하여 연산, 기억, 통신, 센싱 등 특정한 기능을 수행하는 집적회로(IC)를 설계하는 별개의 기술도 아울러 필요하다. 이 역시 동일하게 중요하다. 철근과 콘크리트라는 동일한 재료, 동일한 시공 장비를 사용하더라도 1층짜리 간단한 공장을 짓는 것과 123층짜리 롯데월드타워를 세우는 능력은 그 설계 기술에서 판가름이 나는 것과 동일한 이치다.

이처럼 공정 없이 IC 설계만을 담당하는 반도체 회사를 팹리스(Fabless)라 한다. 애플, 퀄컴, 엔비디아, 브로드컴 등 세계 굴지 기업이 여기에 속한다. 따라서 반도체 인력과 산업을 육성하려 한다면 공정뿐만 아니라 IC 칩 설계에도 균형적인 지원이 이뤄져야 하는 것이 자연스러워 보인다.

둘째 이제 독자들도 잘 아는 사실이지만 현재 우리나라 반도체 산업은 메모리에 치중돼 있어서 시장 상황에 대단히 취약한 편이다. 이와는 반대로 꾸준한 수요와 단가가 높은 비메모리 반도체(시스템 반도체) 기술은 뒤떨어져 있다. 그런데 시스템 반도체라는 것은 무엇인가. 아마도 대부분은 인텔이나 AMD가 잘 만들고 있는 중앙처리장치(CPU), 엔비디아 그래픽처리장치(GPU), 애플이나 퀄컴의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를 떠올릴 것이다.

그러나 휴대폰만 예를 들더라도 그 안에 들어가는 시스템 반도체는 AP뿐만 아니라 전파 통신을 위한 RFIC, 전력 관리를 위한 PMIC, 디스플레이 구동을 위한 DDI 등 다양하다. 이러한 칩들 가운데 하나라도 빠지면 휴대폰은 제대로 동작하지 않는다. 주목할 것은 이러한 칩들 대부분이 아날로그 회로라는 사실이다. 흔히 아날로그는 디지털로 대체되어 이제는 거의 사용되지 않는 구식 유물로 인식되고 있지만 적어도 시스템 반도체에서만은 예외다.

그 이유는 자명하다. 전파·빛·소리 등 자연계에 존재하는 신호는 모두 아날로그이고, 이러한 아날로그 신호를 처리하는 반도체 칩은 앞으로도 계속 필요하기 때문이다. 전파를 예로 들면 현재 밀리미터파 기반 5G를 넘어 앞으로 6G 통신에서는 더 높은 주파수인 테라헤르츠(㎔)의 사용을 고려하고 있을 정도여서 이를 송수신하기 위한 아날로그 RFIC는 더욱 중요해질 수밖에 없다.

최근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는 '반도체 전쟁'에서 우리 주권을 지키기 위해서는 공정 기술뿐만 아니라 IC 설계 기술에 대한 지원이 동반돼야 하고, 디지털 회로뿐만 아니라 아날로그 회로 설계 인력의 확보도 중요하다. 특히 종합적인 전공 지식과 다양한 실무 경험이 절대적으로 요구되는 아날로그 회로 설계인력 확보를 위해서는 장기적인 마스터플랜 아래 산·학·연·관의 긴밀한 협력이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기다. '반도체 전쟁' 수행도 '반도체 주권' 수호도 결국은 사람이 하는 것이다.

전상근 고려대 교수 sgjeon@korea.ac.kr

Copyright © 전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