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벌이에 볼모 잡힌 숲.. 생태계 회복 '시계제로' [밀착취재]
하상윤 2022. 10. 3. 11:01
평창올림픽 후 방치된 가리왕산.. 상습 산사태 신음
2018 평창 동계올림픽 개최를 앞두고 강원 정선군 가리왕산에서는 대규모 벌목이 있었다. 사흘짜리 활강경기 진행을 위해 수백 년 된 원시림을 밀어버린 일대 사건이었다. 당시 현장에선 그루터기 수를 세는 게 무의미하게 느껴질 만큼 많은 나무가 잘렸다. 그중엔 나이테를 세는 게 무색할 만큼의 초고령 수목들도 대거 포함돼 있었다. 공사는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깊숙이 파헤쳐진 산줄기를 따라 알파인 스키 슬로프가 깔렸다. 대회가 끝나자 사람들은 떠났고, 환호성이 사라진 자리엔 말뚝처럼 박힌 곤돌라(리프트) 기둥들이 덩그러니 남았다. 올림픽과 함께 가리왕산에서 일어났던 일들을 일일이 기억하는 이들은 드물다. 숲이 파헤쳐질 때 ‘대회 후 생태복원’이라는 약속이 전제됐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이들은 더더욱 드물다. 올림픽 이후 4년7개월이 흘렀다. 망가진 자연을 다시 되돌려 놓겠다던 그 약속은 지켜지고 있을까?
우리나라에서 아홉 번째로 높은 가리왕산(해발고도 1561m)은 조선시대부터 왕실 보호구역으로 지정, 관리돼온 국가 보호림이다. 냉장고만 한 바위들이 얽히고설켜 공기를 가두는 풍혈 지대가 고루 분포해 독특한 토양생태계를 이룬다. 북방계 식물이 다수 관찰되고 내륙에서는 매우 드물게 주목이 어린 개체부터 노거수까지 세대별로 자란다. 가리왕산의 우수한 생태적 가치는 이러한 생물다양성에 기반한다. 산림청은 1996년 가리왕산 내 주목 군락지 65㏊를 산림유전자원보호구역으로 지정했고, 재조사를 거쳐 2008년에는 그 범위를 2475㏊로 확대해 보호해 왔다.
1년 만에 다시 찾은 가리왕산 곳곳엔 산사태 흔적이 역력했다. 지난 8월 내린 집중호우로 산허리부터 하단까지 약 2㎞에 걸쳐 토사가 흘러내리고 토석류 등이 발생한 것이다. 슬로프가 있던 자리는 깊숙이 파여매설돼 있던 배수로를 비롯한 시설물이 흉물스럽게 드러나 있었다. 원칙대로라면 가리왕산은 2018년 대회 직후 복원작업이 진행됐어야 했다. 하지만 경기장 철거와 국유림 복원을 이행하라는 산림청의 통보에도, 관할 지방자치단체인 강원도는 지역경제 활성화, 사후활용 등 단기적인 이용 가치를 거론하며 입장을 번복했다. 양측의 공방이 오가는 사이 대책 없이 4년 넘게 방치돼온 가리왕산은 복원 적기를 놓쳤고, 안전 문제에 노출되는 상황에까지 이르렀다. 박은정 녹색연합 자연생태팀장은 “대책 없이 방치된 가리왕산에서는 산사태가 일상화하고 있다”면서 “재해가 진행 중인데도 여전히 자연을 돈벌이에 이용할 궁리만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광범위하게 쓸려 내려간 슬로프를 따라 한 시간쯤 올랐을 때 굉음에 가까운 곤돌라 기계음이 들려왔다. 지난해 6월 정부가 정선군의 곤돌라 운영을 허용하면서 시험가동에 들어간 것. 올림픽이 끝나고 복원이 시작되어야 할 시점부터 정선군의 주민단체는 경기장 시설 존치와 관광자원화를 요구하며 점거 농성 등의 활동을 이어왔고, 정부가 이에 대한 협상책으로 2024년 12월 말까지 정선군의 관광용 곤돌라 운영을 한시적으로 허가했다. 곤돌라의 철거 여부는 다음에 다시 검토한다는 방침이다.
토석류가 발생한 슬로프의 끝부분을 따라가자 올림픽 당시 산 하단부에 지어진 호텔이 눈에 들어왔다. 재난·재해 대책 없이 방치된 현재의 가리왕산이 심각한 안전사고 위험에 노출돼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는 주된 배경이다. 실제로 2018년 5월, 시간당 30㎜ 쏟아진 비에 스키장 경사면이 무너져, 산 아래쪽 상가와 주택에 물과 토사가 넘치고 인근 주민 6명이 대피한 바 있다. 엄태원 숲복원생태연구소 소장은 “올여름 이 정도로 산이 버텨준 걸 다행으로 생각해야 한다”면서 “앞으로 더 큰 비가 내린다면 현재 세굴된 지역을 따라 땅밀림과 산사태가 가속화할 것이고, 그렇다면 산 아래 호텔과 콘도에 큰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엄 소장은 “관할 지자체가 더 이상 책임을 유기하지 않고, 산림과 계곡을 복원하는 작업에 앞장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선=글·사진 하상윤 기자 jonyyu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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