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분마다 비행 소음..우린 왜 보상 못 받죠?"

주영재 기자 2022. 10. 3. 10:35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같은 단지서도 '피해 보상' 엇갈리는 김포공항 인근 주민들
기준 완화 땐 사업비 2~3배.. 공공시설 국고 지원 등 대안

가끔 보면 신기하고 재밌지만, 매일 반복해서 마주치면 달갑지 않다. 상당히 고통스럽기까지 하다. 이착륙을 위해 지상을 스치듯 지나가는 비행기를 보는 일이 그렇다. 고막을 울리는 소음에 정상적인 대화가 불가능한데, 이런 일이 2~3분마다 반복된다. 김포공항 인근의 양천구 신월·신정동 등을 비롯해 서울에서만 약 42만5000여명의 주민들이 공항소음 피해를 겪고 있다.

지난 9월 26일 서울 양천구 신월3동의 한 아파트 옥상에서 직접 비행기 소음을 체감할 수 있었다. 이곳은 소음영향도(웨클·WECPNL)가 85~90웨클 사이인 지역으로 소음 대책지역 중 ‘3종 가’ 지구에 포함된다. 소음 대책지역은 ‘공항소음 방지 및 소음대책지역 지원에 관한 법률(공항소음대책법)’에 따라 대책사업을 실시해야 하는 지역을 말한다. 소음영향도 75웨클 이상인 3종부터 시작해 1종(95 이상)까지 모두 다섯 구간으로 나뉜다.

지난 9월 26일 한 비행기가 김포공항에 착륙하기 위해 바퀴를 펴면서 날아가고 있다. 주영재 기자

무 자르듯 소음 피해를 자를 수 있나요

이날 옥상에 서자 경기 광명시 도덕산 인근에서 서울 구로구를 거쳐 공항 쪽으로 날아오는 비행기가 눈에 들어왔다. 날개 양끝에서 반짝이는 2개의 항법등이 뚜렷이 보였다. 그 비행기 밑으로 반짝이는 점 하나가 보이고, 또 그 밑으로 희미하게 반짝이는 불빛 하나가 뒤따른다. 3대의 비행기가 줄지어 착륙을 위해 접근하고 있었다. 비행기가 머리 위를 지나자 순간 소음이 93데시벨(dB)까지 올라갔다. 환경부 환경통계포털에 따르면 90dB 이상은 지속해서 들을 경우 직업성 난청이 시작되는 수준이다.

42년째 이 동네에서 사는 이금자씨는 “그래도 저 비행기는 작은 비행기”라면서 “저녁이면 불빛에 비쳐 안에 타고 있는 사람까지 다 보인다. 일본 비행기인지 러시아 비행기인지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월요일이라 적게 다니는 편인데 주말에는 2분마다 한대씩 다녀 애들이 공부할 수도 없고, 문을 닫아도 시끄러워 사람이 살 수 없을 정도”라고 덧붙였다. 85웨클 이상의 소음대책지역에 속하는 주민들은 한국공항공사에 매수를 청구할 수 있다. 하지만 공항소음으로 집값이 낮은 상황에서 공시가 기준으로 매수하니 집을 팔아도 서울 안에서는 갈 곳이 없다.

김포공항은 항공 교통량 전 세계 1위 노선인 김포·제주 구간을 품고 있다. 코로나19로 일 평균 교통량이 2019년 424편에서 2020년 349편으로 줄었지만 2021년 이후 421편으로 원래 수준을 회복했다. 공항이 문을 여닫는 오전 6시부터 오후 11시까지 2.4분에 한 번꼴로 굉음을 듣는다. 이른 아침과 잠들 무렵 소음이 특히 고역이다. 2011년 세계보건기구 보고서에 따르면, 60db 이상이면 수면장애를 겪고, 80db이면 청력 장애가 발생한다. 항공기소음을 지속해서 들으면 두통, 이명 같은 신체적 피해뿐만 아니라 정서불안, 주의력 저하 같은 정신적 피해가 발생한다는 사실이 여러 실태조사로 확인된 바 있다. 지난해 서울시가 실시한 주민 실태조사에서도 응답자의 18%가 정신적 피해, 10%가 신체적 피해를 겪었다고 밝혔다.

재산상의 피해도 뒤따른다. 1988년 지은 신월7동의 신월시영아파트는 재건축을 논의 중이지만 성사가 불투명하다. 항공법상 고도제한으로 15층까지만 지을 수 있어 사업성이 낮기 때문이다. 팔고 떠나기도 수월하지 않다. 집을 보러 온 사람들은 비행기 소음을 듣곤 발길을 돌린다. 주민 최선예씨(74)는 “아이들 키우기가 어려워 젊은이들이 떠나면서 어르신들만 남고 동네가 활력을 잃고 있다”고 말했다.

신월시영아파트는 아파트 중간의 차도를 기준으로 소음대책지역에 포함되는 지역과 그렇지 않은 지역으로 나뉜다. 소음 때문에 창문을 열지 못하기 때문에 여름철 4개월간 총 20만원의 전기료를 지원하고, 냉방기와 방음창 설치를 지원해주는데 그 기준이 75웨클이다. 비슷하게 소음 피해를 입지만 75웨클 밑이라는 이유로 보상 대상에서 제외된 주민들은 불만이 많다. 이곳에서 만난 주민 이길용씨(78)는 “소리는 똑같이 나는데 길 하나를 두고 보상을 받는 동과 그렇지 않은 동이 갈리는 건 말이 안 된다”면서 “주민 사이를 이간질하려는 하는 것도 아니고, 한 단지인데 분할해서 될 일인가”라고 반문했다.

대책지역 기준 낮추고, 기반시설 지원해야

지난 8월 24일 서울과 제주의 공항소음 피해 주민 7000여명과 공항소음대책 주민지원센터, 사단법인 항공기소음 등은 국회에 공항소음 대책사업을 추진하는 소음영향도 기준을 70웨클로 낮출 것을 요구하는 청원서를 제출했다. 박용문 항공기소음 이사장은 “75웨클 소음등고선을 기준으로 수혜자와 비수혜자로 나뉘면서 상대적 박탈감으로 인한 불만이 공동체 내 갈등을 야기하고 있다”면서 “단 1~2웨클이라도 기준을 내려 대책지역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실제 인구 밀집지역과 접한 유럽 주요 공항의 소음대책 사업 기준(우리 기준으로 단위 환산)을 보면 프랑스 샤를 드골공항 67.1웨클, 독일 암마인공항 73.1웨클, 네덜란드 스키폴공항 70.1웨클, 스위스 취리히공항 71.1웨클로 우리보다 낮다.

공항소음대책 주민지원센터에 따르면 2022년 7월 현재 ‘사각지대’인 70~75웨클 미만에 속한 서울 주민은 약 27만명이다. 정부는 70웨클 이상으로 대책지역을 확대할 때의 재정 부담을 우려하고 있다. 국토부 공항안전환경과 관계자는 “소음 피해 대책을 내실 있게 마련하려고 다양한 방안을 검토 중”이라면서도 “예산이 과다하게 들어가는 상황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영석 공항소음대책지역 주민지원센터장은 “70웨클로 보상지역을 넓힐 경우 대책사업비가 현재(약 700억원)의 2~3배 정도로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그래서 동일지원이 아닌 소음도에 따른 차등지원이 바람직하다. 착륙료에서 대책사업비 재원으로 쓰는 비율을 75%에서 일부 외국 공항처럼 100%로 늘리고 국고보조금을 지원하면 재원 마련에 큰 무리는 없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국토부 측은 한국공항공사에서 착륙료를 활주로 유지보수 비용으로도 쓰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더불어민주당 이용선 의원(서울양천을)은 관련해 2건의 공항소음대책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2020년 11월 발의한 첫 법안은 공공개방을 전제로 주차장, 공원 등 사회기반시설에 예산지원을 할 수 있도록 했다. 2021년 1월 개정안은 발전소주변지역법이나 방폐물유치지역법처럼 공항시설관리자나 공항개발사업자가 공항소음피해 지역 주민을 우선 고용할 수 있는 근거를 담았다. 이 의원은 “특별한 희생에는 특별한 보상이 있어야 한다. 공항은 국가기반시설이지만, 주변 주민들은 고도제한, 항공기소음 등으로 인한 건강권·생활권·재산권 등의 피해를 보고 있고, 특히 고도제한은 주변 지역 재개발·재건축 시행 시 사업이 불가능한 수준이어서 주민들의 재산권을 제약한다”고 법안 발의 취지를 밝혔다.

개정안이 통과되려면 국회와 여론의 지지를 확보해야 한다. 이 의원은 “공항소음문제는 양천구와 김포공항 주변만이 아니라 김해·제주 등 전국에 산재한 민간공항 주변 주민들이 똑같이 안고 있는 문제”라면서 “공항소음피해를 입는 해당 지역구 의원들이 함께 뜻을 모아 정부와 국회를 설득하려 한다”고 말했다. 피해 지역 주민을 대상으로 한 주기적인 건강검사도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 의원은 “역학조사를 통해 항공기소음과 건강 피해 간의 인과성을 파악한 후, 국가 차원의 의료지원사업을 계획해야 한다”고 말했다.

주영재 기자 jyj@kyunghyang.com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