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민준의 골프세상] 나는 어떤 '골프 메이트'일까?

방민준 2022. 10. 3. 0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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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칼럼 내용과 관련 없습니다. 사진제공=ⓒAFPBBNews = News1

 



 



[골프한국] 모처럼 주말 부킹을 했는데 부득이한 사정으로 한 자리가 비게 되었다면 누구를 부를 것인가.



예정된 라운드의 빈자리에 누구를 선택해 채우는 일은 간단하고 사소해 보이지만 매우 까다롭고 복잡한 선택기준이 작용한다. 그 과정에서 개인의 취향, 인간성, 사회성 등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우선 가까운 주변에서 후보를 구해보자. 직장 동료들끼리의 라운드라면 직장의 선후배 중에서 고르는 게 편할 것이다. 함께 골프를 할 수 있는 선후배가 여럿이라면 누구를 선택할 것인가. 비슷한 실력의 허물없는 선후배라면 안성맞춤이지만 실력 차가 날 경우 잘 치는 사람보다는 못 치는 사람을 선택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골프 매너가 갖춰지지 않았다면 잘 치든 못 치든 우선순위에서 뒤로 밀린다. 



 



핸디캡과 상관없이 동반자를 잘 배려하면서 게임을 재미있게 이끌어가는 사람이라면 선후배 가림 없이 우선순위에 오를 수 있다. 선후배 중에서는 후배를 택할 가능성이 높다. 윗사람에게 잘 보여야 할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데리고 놀기 좋은 후배가 편하기 때문이다.



 



성격적인 면에서는 깐깐하고 강파른 사람보다는 원만하고 유머 있는 사람이 후한 점수를 받는다. 서로 실력이 팽팽한 라이벌끼리는 아주 가까울 수도 있고 아주 멀 수도 있다. 소위 코드가 비슷하면 라이벌도 즐거운 상대가 될 수 있지만 코드가 맞지 않으면 거북한 상대가 되기 때문이다. 남몰래 부정행위를 저지른 이력이 있는 사람은 아예 후보에서 제외된다.



  
선택 대상이 직장 동료를 벗어날 경우 다소 복잡해진다. 직장 선후배 중에서 후보를 고르는 과정에 적용되었던 조건 외에 새로운 조건들이 붙는다. 다른 동반자들이 거부감을 느끼지 말아야 하고 골프 매너는 기본이다. 실력은 헤매지 않는 수준은 돼야 한다. 시일이 촉박해서 라운드 요청을 해도 거부감 없이 받아들일 만큼 골프에 대한 열정을 갖춰야 한다. 자연히 날씨나 거리, 골프장의 수준 등을 가리는 사람은 뒷전으로 밀릴 수밖에 없다. 나이 차이를 잊고 친구처럼 어울릴 줄 아는 사람이라면 금상첨화다.



 



두 경우에 적용되었던 여러 가지 선택기준과 조건들을 종합해보면 사람마다 약간의 차이는 있겠지만 우선순위를 다음과 같은 다섯 단계로 요약할 수 있을 것 같다.



 



첫째는 골프매너다. 아무리 골프를 잘 쳐도 동반자를 배려하지 않는 골퍼는 어디에서도 환영받지 못한다. 비신사적인 행위와 부정행위의 낙인이 더해졌다면 '불가촉 골퍼'로 전락하고 만다.



 



둘째는 골프 열정이다. 골프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골프매너는 갖췄을 터이니 사실 가장 중요한 선택기준이나 다름없다. 골프에 대한 열정으로 충만한 사람은 우선 격식을 따지지 않는다. 아무 때나 연락해도 군소리 없이 달려오고 날씨나 골프장, 동반자도 가리지 않는다. 이른 새벽 전화를 해 한 시간 후에 어디 골프장으로 나오라고 해도 달려 나올 사람이다. 



2~3일 전에 동반요청을 하면 "내가 무슨 땜빵용이냐?"며 불쾌해하는 사람은 우선순위에서 밀릴 수밖에 없다. 곰곰이 따져보면 이것저것 재지 않고 동반요청을 해온다면 요청받는 입장에선 상대방이 자신을 0순위 골프메이트로 인정한다는 셈이니 얼마나 기분 좋은 일인가.



 



사진=골프한국

 



 



셋째는 바른 셈이다. 라운드와 뒤풀이에 따르는 비용을 동반자들이 골고루 나누어 부담하는 것은 동반자 모두를 당당하게 만든다. 이는 동등한 조건에서 플레이를 펼치는 골프정신에도 부합된다. 누군가가 비용을 100% 부담키로 돼 있다고 해도 바른 셈은 필요하다. 



가령 내기를 해서 땄다면 캐디피를 내준다거나 뒤풀이 비용으로 보태는 것도 바른 셈의 한 방법이다. 그럴 기회도 없다면 공을 한 박스 사서 동반자들에게 나눠주는 것도 방법이다. 매번 내기로 돈을 챙겨가는 사람은 밉상이다. 지갑을 잘 열면 어디서든 환영받는다.



 



넷째는 골프를 즐기는 자세다. 동반자들과 싱그러운 잔디 위를 걸으며 담소하는 것 자체를 즐거움으로 여기고 게임이 잘 풀리든 안 풀리든 한 샷 한 샷에 정성을 쏟는 사람은 누구에게나 좋은 동반자가 될 수 있다. 미스샷을 내고도 불쾌감을 드러내지 않고 나쁜 스코어에도 그럴 수도 있다며 태연히 받아들이는 골퍼라야 초청자명단 상단에 오를 수 있다.



 



실력은 맨 마지막이다. 골퍼에게 가장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기량이 실은 동반요청을 할 때는 중요한 기준이 되지 않는다는 게 이상하지만 사실이다. 물론 앞의 다른 조건들을 다 충족한다면 실력 있는 골퍼가 환영받겠지만 하나라도 결격사유가 있을 경우 기량은 아무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초청자명단의 맨 끝자리는 골프만 잘 치는 사람의 몫이다.



나는 과연 어떤 골프메이트로 자리잡고 있을까.



 



*칼럼니스트 방민준: 서울대에서 국문학을 전공했고, 한국일보에 입사해 30여 년간 언론인으로 활동했다. 30대 후반 골프와 조우, 밀림 같은 골프의 무궁무진한 세계를 탐험하며 다양한 골프 책을 집필했다. 그에게 골프와 얽힌 세월은 구도의 길이자 인생을 관통하는 철학을 찾는 항해로 인식된다. 



*본 칼럼은 칼럼니스트 개인의 의견으로 골프한국의 의견과 다를 수 있음을 밝힙니다. *골프한국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길 원하시는 분은 이메일(news@golfhankook.com)로 문의 바랍니다. / 골프한국 www.golf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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