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사에서 고구려는 '딱 한줄' 기록됐다[이기환의 Hi-story](52)

2022. 10. 3. 0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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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베이징(北京)에서 열리고 있는 한·중·일 청동기 전시회(7월 26일~10월 9일)가 물의를 일으키고 있습니다.

명색이 한중 수교 30주년을 기념하는 친선 특별전인데요. 국립중앙박물관이 제공한 한국사 연표에서 ‘고구려와 발해사’를 삭제한 연표를 전시장에 내걸었답니다.

2019년 편찬돼 그해 가을학기부터 6개 지역에서 시범 운영한 뒤 올해(2022년) 가을학기부터 전국의 고교 1학년 학생들이 배우게 될 중국의 역사국정교과서. 중국사(<중외역사강요·상>)와 세계사(<중외역사강요·하>) 등 두 권이다. 그런데 고구려사는 세계사에서는 빠져 있고 중국사에서도 “수나라가 3차례나 고려(고구려)를 정벌했다”는 내용으로 딱 한줄 언급된다. / 권은주 동북아역사재단 연구위원 제공


국립중앙박물관이 특별전 개막 후 50여일이나 지난 9월 중순, 그것도 언론보도에서 알게 됐다니 얼마나 기막힌 일입니까. 물론 이번 사태의 일차적 책임은 ‘연표만 보내놓고 확인하지 않은’ 국립중앙박물관’이 져야 하겠죠.

그러나 박물관만 책임지면 끝나는 걸까요. 천만의 말씀입니다. 한국 측이 연표 문제를 제기하자 중국 측은 어떻게 대응했습니까. 수정할 생각은커녕 문제가 된 역사 연표를 치워버렸습니다. 중국의 입장에서 보면 ‘고구려와 발해=중국사’가 명백한데 뭔가 외교문제로 비화할 것 같고…. 그렇다고 한국사로 인정할 수도 없으니 아예 빼버린 겁니다.

중국의 역사 이기주의 ‘동북공정’(2002~ 2007)이라는 낯익은 용어가 떠오르는군요. 2013년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의 집권 이후 바로 이 동북공정 등에서 축적된 결과물을 토대로 이른바 ‘중국몽(中國夢)’ 실현을 위한 자국 중심의 역사를 창조해냅니다.

우선 중국은 가장 광활했던 청나라 시대와 현재의 영토를 중첩해 중국사를 범주화합니다. 즉 연해주와 타이완, 남해도서까지 아우른다는 겁니다. 참으로 지독한 이기주의 아닙니까.

‘지금의 중국 땅’은 예전에 누가 차지했든지 모두 ‘중국 땅’이다, 예전에 ‘한때 중국 땅’이었던 곳은 지금 누가 차지하고 있건 간에 ‘중국 땅’이다, 뭐 이런 겁니다. 이런 해괴한 논리가 어디 있습니까. 그러니 한때 만주 땅을 호령한 고구려와 발해는 중국의 지방정권으로 처리할 수밖에 없는 겁니다.

국정교과서를 편찬한 이유 이번 특별전 사태는 빙산의 일각입니다. ‘동북공정’의 연구성과가 교과서에 실리고 있고요.

고구려·발해 유적지의 표지판이나 박물관 안내문, 대학 교재 및 교양서 등에까지 수록되고 있습니다. 이른바 ‘동북공정’은 전문학자들의 영역을 벗어나 중국 학생 및 일반인의 상식을 바꾸어가는 단계에 이르고 있습니다.

교과서는 어떨까요. 2017년 시진핑 국가주석의 집권 제2기를 맞아 국정교과서 편찬이 본격 추진됩니다.

역사교과서를 편찬하는 기준은 ‘현재 중국의 영토(분쟁지 포함) 안정, 민족통합, 체제유지’라고 못 박았습니다.

‘세계로 눈을 돌려 인류 운명 공동체 건설을 추진한다’는 기준도 주목되는데요. 중국 중심의 역사 서술로 ‘G2’를 넘어 ‘G1 국가로서 신(新)세계 질서 구축에 나서겠다’는 겁니다.

이렇게 해서 2019년 편찬한 고등학교 국정교과서 중 중국사(〈중외역사강요·상〉)는 그해 신(가을) 학기에 베이징·상하이(上海) 등 6개 지역의 1학년 학생들에게 배포했고요. 세계사(〈중외역사강요·하〉)는 2020년 봄학기부터 가르쳤습니다. 올 가을학기부터는 중국 전역의 고교 1학년생들이 새로 편찬된 국정 역사교과서를 배우게 됩니다.

엿가락처럼 늘인 만리장성 교과서에 실린 한국 관련 내용을 한번 볼까요.

중국사(〈중외역사강요·상〉)에 수록된 ‘전국시대’와 ‘진나라 시대’의 형세도부터 심상치 않습니다. 연·진의 장성이 압록강을 넘어 대령강과 청천강 부근까지 연결돼 있습니다. 한반도 서북부 일부를 중국 영토로 표시하고 있고요. 맞는 얘기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사기〉는 “진나라가 쌓은 장성의 동쪽 끝이 요동(遼東·랴오둥)”이라 했습니다. 〈사기〉의 주석서인 〈사기정의〉는 “진시황제가 장성을 쌓아 요하(遼東·랴오허)에 이르렀다”고 풀이했습니다. 진나라가 쌓은 장성이 랴오허(요하)를 넘지 못했다는 뜻입니다. 실제로 랴오허인 푸신(阜新·부신)에서 보이는 장성의 흔적이 랴오둥(요동)부터는 찾을 수 없습니다.

또 중국 지도는 압록강을 건너 대령강·청천강까지 장성을 그려놓았는데요. 북한의 대령강에서 확인된 성의 흔적(120㎞)은 중국의 침략을 막기 위해 쌓은 고려시대 방어성입니다. 북쪽을 기준으로 강 남쪽에 조성했거든요.

고구려는 세계사에서는 단 한자도 없었고, 중국사에서는 딱 한번 언급됐다.


사라져버린 고조선·고구려·백제 역사 또 고구려·백제·신라·발해사는 외국 역사니까 당연히 세계사(〈중외역사강요·하〉)에 실려 있어야겠죠.

하지만 고구려와 발해, 백제는 당연히 들어가 있어야 할 세계사에 포함돼 있지 않습니다. 왜냐면 중국의 세계사에서 한국의 역사를 ‘7세기 말 통일신라’부터 서술했기 때문이죠. 짐작은 갑니다.

삼국시대와 그 이전부터 기술할 경우 논란을 일으킬 고구려사를 어떻게 해야 할지 부담스러웠겠죠.

그래서 아예 삼국시대와 그 이전의 역사를 통째로 빼버렸습니다. 그와 함께 고조선과 백제의 역사도 사라진 거고요.

중국은 중국의 변방 정권으로 치부하던 고구려와 발해를 처음부터 세계사에 넣을 생각이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중국사(〈중외역사강요·상〉)에 고구려·발해가 들어갔겠네요. 고구려의 경우 “수나라가 고구려를 정벌했다”는 딱 한줄만 기술했습니다. 중국은 고구려 역사를 중국사(상권)와 세계사(하권)에서 사실상 생략해버린 셈이죠.

역시 논란을 피하기 위함이었겠죠. 교묘한 장치를 설치해놓았습니다. ‘삼국 정립 형세도’에 중국 역사 영토 범위 안에 고구려의 영역을 포함시켰습니다. 물론 국명은 표시하지 않았습니다.

또 고구려의 입장에서 수나라의 침공은 명백한 침략전쟁이었는데요. 중국사 교과서는 굳이 ‘정벌’이라는 용어를 썼습니다. 중국 교과서를 분석한 권은주 동북아역사재단 연구위원은 “이는 지방정권인 고구려가 중앙정부(수나라)에 반기를 들어 징벌했다는 차원에서 정벌의 용어를 쓴 것”이라고 보았습니다.

고구려·발해사가 중국사가 아닌 증거들 중국사의 서술은 말도 안 됩니다. 3~5세기 역사서인 〈삼국지〉와 〈후한서〉 등을 보십시오.

부여·고구려·마한·진한·변한 등의 역사가 ‘동이전’에 포함돼 있습니다. 당나라 때 지은 〈주서〉, 〈수서〉, 〈남사〉, 〈북사〉 등도 마찬가지로 ‘이역열전’이나 ‘동이전’에 넣었습니다. 고구려·백제·신라 등이 중국 역사라면 왜 당나라 사가들이 이민족의 역사로 표현했을까요. 또 〈광개토대왕비문〉의 ‘천제지자(天帝之子)’ 등은 황제만이 사용할 수 있는 표현입니다.

고구려의 입장에서 수나라의 침공은 명백한 침략전쟁이었다. 그러나 중국사 교과서는 굳이 ‘정벌’이라는 용어를 썼다. 지방정권인 고구려가 중앙정부(수나라)에 반기를 들거나 잘못을 저질러 정벌했다는 의미다. / 동북아역사재단 제공


고구려는 ‘신라’를 ‘동이’(東夷·충주 고구려비문)로, 백제를 ‘노객(신하)’(광개토대왕비문)으로 삼는 등 천자의 역할을 자처했습니다. 광개토대왕(재위 391~412)과 장수왕(재위 413~491)은 ‘영락(永樂)’과 ‘연가(延嘉)’라는 독자연호를 사용했고요.

그럼 발해사는 어떻게 처리했을까요. 고구려와 달리 발해는 확실하게 중국의 소수지방정권으로 서술했습니다.

중국사(〈중외역사강요·상)는 “당나라가 동북의 말갈족 속말부의 수령 대조영을 발해군왕으로 책봉했다”고 기술했습니다.

대조영(?~719)의 출신을 속말부 수령으로 본 것은 “속말말갈로 고구려에 붙은 자”(〈신당서〉) 등의 기록에 근거합니다.

〈구당서〉는 ‘고구려의 별종(別種)’이라 했습니다. 〈삼국유사〉 등 한국 사서는 “고구려의 옛 장수”라고 했습니다.

여러 학설이 있지만 중요한 것은 대조영의 출신이 아닙니다. 고구려 유민과 고구려계 말갈세력이 당의 지배에 저항한 고구려 부흥운동의 결과로 건국한 독립국이 바로 발해라는 사실이 핵심입니다.

당대의 인물인 신라 최치원(857~?)이 당나라 예부상서에게 보낸 상소문을 볼까요.

“고구려 잔여세력이 나타나… 옛날의 고구려가 지금의 발해로 바뀌었습니다.”(〈고운집〉)

9세기 인물인 최치원이 다른 나라도 아닌 당나라 예부상서에게 ‘발해=고구려를 계승한 나라’라고 명백하게 밝히고 있네요.

고려가 고구려의 계승자인 까닭 ‘한국사의 시작을 7세기 말 통일신라’로 왜곡한 세계사(〈중외역사강요·하〉)를 더 볼까요. 10세기 초 ‘신라인’인 왕건이 고려왕조를 세웠다는 부분이 특히 눈에 띕니다. 이것도 어불성설입니다.

993년(성종 12) 거란의 소손녕(생몰년 미상)이 고려를 침공하면서 명분으로 내세운 게 있죠.

중국사(<중외역사강요·상>)에서 중국 전국시대와 진나라 시대 형세도가 표시된 만리장성. 요동을 넘어 한반도 서북쪽에 이르고 있다. / 동북아역사재단 제공


“너희(고려)가 이미 고구려의 옛 땅을 차지한 거란을 침탈하기 때문에 정벌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에 고려의 외교관인 서희(942~998)가 뭐라 했습니까. “고려는 고구려를 계승한 나라다. 나라 이름을 봐라. 고구려를 계승했다 해서 고려라 하지 않았더냐”고 반문했죠. 서희는 “평양에 도읍(서경)을 둔 것도 그 때문”이라고 매조지했습니다. 거란 소손녕은 ‘고려=고구려의 계승자’라는 논리에 막혀 꼼짝도 못 하고 이른바 강동 6주까지 내주고 말죠.(〈고려사절요〉)

한나라와의 투쟁 끝에 건국한 고구려 이번에 문제가 된 박물관 전시도 교과서의 인식과 다르지 않습니다. 중국은 2010년대 중반부터 이른바 ‘중화문명 선전공정’을 시작했는데요. 그동안 진행해온 ‘역사 공정’의 결과물을 다양한 방식으로 중국 국민과 외국인들에게 전파했습니다.

저는 2014년 광개토대왕비와 붙어 있는 ‘고구려 28대왕 전시관’ 옆에 세워놓은 안내판을 보고 기절할 뻔했는데요. 안내판에는 “고구려는 조기 중국 북방의 소수민족정권이고, 668년 당나라에서 일어난 ‘국내전쟁’으로 고구려 정권은 철저히 소멸됐다”고 했습니다.

마침 김현숙 동북아역사재단 연구위원이 중국 동북 지역박물관의 고구려 전시내용(2017~2019)을 분석한 논문(‘박물관 전시를 통해 본 중국의 고구려사 인식’, ‘동북아역사포커스’ 2022년 가을호)을 발표했더군요.

조사대상은 지안(集安)·톄링(鐵嶺)·랴오닝성(遼寧省)박물관 등이었는데요.

눈에 띄는 부분만 추려볼까요. 고구려가 현도군(한사군) 경역 안에서 건국했고, 그 관할을 받았다는 것을 강조했다는군요.

이는 사실과 부합하지 않습니다. 〈삼국지〉 등은 “고구려가 중국 현도군 경계에 성을 쌓고 있었다”고 했습니다. 고구려와 중국(현도군)이 별개의 영역이었다는 얘기입니다. 또 〈삼국사기〉 등을 보면 고구려가 현도군과의 가열찬 투쟁을 거쳐 건국하고 성장한 나라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중국 측 입장에서 논란을 야기할 고구려사를 빼려다 보니 삼국시대와 삼국시대 이전의 역사가 통째로 생략됐다. / 동북아역사재단 제공


또 “고구려 멸망 이후 그 유민이 중국 각지로 옮겨가 그 지역 주민들과 융합했다”는 설명(지안박물관)이 있는데요.

고구려가 재기하지 못하도록 3만8000호를 강제 이주시킨 기록(〈삼국사기〉 등)을 마치 자발적으로 옮겨간 것처럼 견강부회했네요. 고구려 유민들이 보덕국을 세우고 또 발해와 고려를 건국하는 등 고구려의 계승을 실현한 사실을 외면한 거죠.

유물 전시도 눈에 거슬렸는데요. 고구려의 대표유물인 ‘네 귀 달린 항아리’(사이옹·四耳瓮) 대신 중국 토기인 ‘세 발 달린 토기’(삼족기)를 전시하거나, 고구려 벽화인 ‘무용총’의 사냥 그림과 함께 한나라 ‘수렵도’를 게시하는 행태를 보입니다.

고구려 전문이라는 지안박물관을 비롯한 박물관들은 고구려의 역사적 비중과 영역을 축소하는 방향으로 전시를 기획했습니다. 심지어 톄링박물관은 고구려와 조선족이 서로 전혀 관계가 없다는 내용을 생뚱맞게 별도 패널로 만들어 게시해 놓았답니다. 고구려-한국-조선족의 연관성을 차단하려는 의도가 분명하죠.

어떻습니까. 짧게는 2002년 동북공정이 시작된 이후 20년 동안 진행돼온 각종 ‘공정’을 보면 가슴이 답답해지죠.

최근 일어난 연표 누락 문제가 ‘박물관장의 사과’ 따위로 마무리될 사안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죠.

중국이 자국 중심의 세계질서를 만들려고 역사를 이른바 ‘중국몽’ 실현의 도구로 삼고 있으니까요.

누가 어떤 대책을 세우고, 어떤 조치를 취한다 해도 귀에 담지 않을 겁니다. 그냥 듣는 시늉만 하겠죠. 그럼 또 제풀에 지쳐 넘어갈 거고요. 그사이 ‘중국 인민’은 교과서와 박물관에서 배운 대로 통일적 다민족국가론, 애국주의, 중화민족론 등에 젖어들겠죠. 그사이 고조선·고구려·부여·발해는 중국사의 일부가 되겠고요. 그렇게 되도록 가만두어야 할까요.

이기환 역사 스토리텔러 lkh04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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