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가부 기능 강화·폐지 동시 추진?

2022. 10. 3. 0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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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숙 장관, 신당역 스토킹 살인사건에도 '마음은 콩밭에'
“장관님의 앞으로 역할은 여성가족부 폐지에 있습니까, 여가부에서 하는 역할의 기능 강화에 있습니까?”(한준호 더불어민주당 의원)

“그 두개는 배치되는 게 아니라고 저는 생각합니다.”(김현숙 여가부 장관)

“저는 이해할 수 없는 논리이기는 한데…(하략).”(한 의원)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5월 26일 정부세종청사에서 김현숙 여성가족부 장관에게 국무위원 임명장을 수여했다. /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지난 9월 16일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전체회의의 한 장면이다. 회의에선 ‘신당역 스토킹 살인사건’과 관련한 여가부의 대처를 두고 질의가 쏟아졌다. 이와 맞물려 여가부 폐지 문제도 거론됐다.

김 장관은 이날 여가부 업무의 기능을 강화하기 위해 다양한 일을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지금의 (조직) 형태가 가장 바람직하고 가장 합리적이고 가장 효율적이라고 말할 순 없다”고 했다. 여가부 폐지 방침을 재확인한 것이다.

여성계에서는 김 장관의 이런 언행은 모순이라고 지적한다. 김 장관이 윤석열 대통령의 공약인 여가부 폐지를 흔들 수 없는 ‘절대가치’로 여기면서 그 틀 속에 갇혔다고 진단한다. ‘구조적 성차별은 없다’는 윤 대통령의 인식에 보조를 맞추는 점도 김 장관의 한계로 지적된다.

“피해자 지원, 주요한 일”

여가부는 여성폭력과 관련한 업무를 관장하는 부처다. 이번 신당역 스토킹 살인사건을 계기로 여가부 역할의 중요성이 부각되는 이유다. 김현숙 장관도 지난 9월 23일 연합뉴스TV에 출연한 자리에서 “스토킹 피해자 지원을 담당하는 여가부 장관으로서 매우 안타깝게 생각하고 유가족과 국민께 송구한 마음”이라고 밝혔다. 여가부의 역할도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피해자 지원에 대한 부분이 여가부의 주요한 일”이라며 “스토킹 범죄가 얼마나 심각한지 알리는 역할, 폭력 예방 교육, 2차 가해를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도 여가부가 주요하게 하는 일이다. 이 부분에 애를 쓸 생각”이라고 했다.

동시에 김 장관은 여가부 폐지도 추진 중이다. 지난 6월에는 ‘전략추진단’이라는 별도 조직까지 꾸려 각계 의견 수렴 작업을 벌였다. 여가부 폐지와 관련한 기한이 정해진 건 없다. 여가부는 법무부 및 고용노동부 등 유관부처, 행정안전부와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 논의 결과를 바탕으로 정부는 이번 국회 회기 내에 여가부 폐지를 담은 정부조직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할 계획이다.

김 장관은 여가부를 폐지하더라도 관련 기능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는 입장이다. 소관 업무가 다른 부처로 이관되는 것이므로 ‘폐지’와 ‘기능 강화’가 양립 가능하다는 논리로 풀이된다. 그러나 여가부의 업무 가운데는 여러 종류가 유기적으로 얽힌 게 많아 이를 분산하면 정책 집행의 효율성과 만족도가 떨어진다는 비판이 나온다. 무엇보다 여가부의 주요 업무인 성평등 관련 정책이 위축되리라는 우려가 크다. 여가부 폐지와 기능 강화는 모순일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대선 후보 시절 “구조적 성차별은 없다”고 밝혔다. 김현숙 여가부 장관은 지난 5월 인사청문회에서 해당 발언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묻는 질의를 수차례 받았으나 끝내 직접적인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

구조적 성차별이 중요한 이유는 바로 각종 여성폭력의 근본적인 원인으로 지목되기 때문이다. 김 장관이 ‘구조적 성차별은 없고 여가부는 폐지해야 한다’는 명제에서 벗어날 수 없다 보니 이번 신당역 스토킹 살인사건에서도 본질적인 해결책은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여성폭력 피해자를 지원하는 전국의 535개 단체 활동가들이 지난 4월 7일 서울 종로구 통의동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인근에서 여성가족부 폐지를 반대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 /우철훈 선임기자


명숙 인권운동네트워크 바람 활동가의 말이다. “구조적 성차별의 결과가 여성폭력이다. 여성을 동등한 인간으로 보지 않는다. 집, 일터, 거리 등 곳곳에서 차별한다. 존중하지 않으니 때려도 되고, 살해해도 되고, 불법촬영을 해도 된다고 여긴다. 근본적인 원인인 구조적 성차별을 제거해야 문제가 해결된다. 사후에 피해자를 보호하고 지원하는 게 다가 아니다. 여가부는 성평등을 지향하며 관련 정책을 다루는 부처다.”

성차별적 인식을 고치지 않고서는 어떤 대책도 실효성을 거두기 어렵다고 말한다. “윤 대통령은 성폭력 범죄를 엄중 처벌하겠다고 했다. 득표전략의 일환으로 성차별은 없다고 말했을지 모르지만, 성폭력의 젠더적 성격과 시민의 분노는 외면할 수 없으니 이렇게 말한 것 같다. 하지만 검사나 판사의 성인지가 낮아 성범죄자에게 가벼운 구형을 하거나 형을 선고한다. 성차별적 인식을 바꾸지 않고서 성폭력을 엄중하게 처벌하고 피해자를 지원하겠다는 건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구조적인 문제이고 사회 전체가 변해야 풀 수 있는 문제다. 이런 이해 없이 구조적 성차별은 없다고 하니, 김 장관이 중요한 원인은 제쳐두고 현상만 얘기한다는 비판을 받는 것이다. 윤 대통령의 기조를 그대로 따르고 있다.”

컨트롤타워는 누가?

여가부는 여성폭력과 관련한 정부 내 ‘컨트롤타워’이다. 2018년 12월 제정된 여성폭력방지기본법만 봐도 관련 업무를 진두지휘하는 여가부의 역할을 확인할 수 있다.

기본법은 여성폭력 방지 정책의 종합적·체계적 추진을 규정한다. 폭력 방지와 피해자 보호·지원에 관한 국가의 책임을 명확히 하고 정책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함이다. 여성폭력의 정의가 담겼고, 최초로 ‘2차 피해’의 개념도 규정했다.

기본법은 여가부가 여성폭력 방지 및 피해자 보호·지원 정책을 5년마다 수립하도록 한다. 이 기본계획을 바탕으로 연도별로 세부적인 시행계획도 만들어야 한다. 여가부뿐 아니라 관련 정부부처와 시·도 등 지방자치단체도 계획을 세워야 하고, 추진 실적을 여가부에 제출해야 한다. 여가부는 실적을 분석·평가하고 결과를 통지하는 역할까지 한다.

이처럼 여가부를 중심으로 수립한 정부 계획은 여성폭력방지위원회에서 최종 심의·의결한다. 위원장은 여가부 장관이다. 여성폭력과 관련된 15개 부처의 차관급 인사들과 민간 위원 12명으로 구성된다. 부처 간 협력을 통해 대응체계의 사각지대를 최소화한다는 취지다. 위원회는 여성폭력 방지와 관련한 정부 내 최고 의사결정 기구로 평가할 수 있다.

여가부를 폐지하면 어느 부처가 이런 컨트롤타워 역할을 대체할지가 난제로 부상할 수 있다. 양이현경 한국여성단체연합 공동대표는 “여성폭력방지위원회는 운영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조직으로 앞으로 기능이 더 강화돼야 한다”라며 “여가부를 없애면 컨트롤타워 역할을 맡을 마땅한 부처가 있을지 의문”이라고 했다. 그는 “여가부가 예산과 인력 면에서 상대적으로 열악해 어려움이 많기 때문에 더 보완해야 한다”고도 했다.

한편 위원회가 지난 3월 심의·의결한 2022년도 시행계획에는 스토킹 범죄와 관련한 내용도 담겼다. 법률 개정을 통해 가해자가 ‘긴급응급조치’를 불이행했을 때 형사처벌하는 방안도 있다. 이는 최근 신당역 스토킹 살인사건 발생 직후 경찰청이 내놓은 대책과 같다. 긴급응급조치는 피해자나 그 주거지로부터 100m 이내 접근 금지, 휴대전화 등을 통한 연락 금지 등이다.

정희완 기자 rose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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