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상] 장관 스토킹

김광일 논설위원 2022. 10. 3. 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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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1997년 여름이었다. 자정을 조금 넘긴 시각, 파리 중심부의 리츠 호텔에서 벤츠 S클래스 승용차 한 대가 빠져나왔다. 찰스 3세 영국 국왕의 전 부인인 다이애나 빈, 그녀의 이집트계 애인인 도디, 그리고 앞 좌석엔 운전기사와 경호원이 타고 있었다. 기다렸다는 듯이 오토바이를 탄 파파라치들이 따라붙었다. 이들을 뿌리치려고 운전기사가 가속 페달을 밟았지만 파파라치도 이골이 난 프로들이었다.

▶결국 도심을 시속 100km 넘게 달리던 벤츠 승용차는 센강 변 지하차도에서 교각을 들이받고 나뒹굴었다. 셋은 현장 즉사, 다이애나는 오전 4시에 숨졌다고 공식 발표됐다. 그날 부리나케 현장에 가봤으나 폴리스 라인 저쪽에 부서진 파편들만 처참했다. 그때처럼 언론의 취재 윤리에 관한 논란이 뜨거웠던 적도 없다. 취재원의 의사에 반하는 접근은 얼마만큼 허용될 수 있는가.

▶사실 취재원을 만나서 녹음기 꺼내고 수첩에 받아 적는 전통적인 방법으론 특종이 힘들다. 그래서 선배에게 요령을 배운다. ‘뻗치기(하리꼬미)’ ‘귀대기’ ‘위장 취재’ ‘쓰레기통 뒤지기’ ‘잠입 취재’ 같은 것들이다. 가장 대표적인 방식인 뻗치기는 취재원의 집 앞에서 하염없이 기다리는 일인데 우직하지만 의외의 효과도 있다. 그러나 ‘미행(尾行) 취재’는 처음 듣는다. 해외로 내뺐던 범죄자가 귀국했을 때 취재 차가 공항에서 검찰 청사까지 따라붙기도 하지만 엄연히 언론사 로고가 찍혀있다.

▶최근 친민주당 쪽 유튜브 채널 관련자가 한동훈 법무장관의 관용차를 미행하다 발각됐다. 당연히 스토킹 처벌법에 저촉될 수 있다. 마치 흥신소 직원이라도 된 듯 취재원 모르게 집에서 직장으로, 그리고 반대 경로를 따라 다니는 것은 윤리적 일탈이 아니라 범법 행위다. 신당역 스토킹 살인 사건으로 충격을 받은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이런 일이 터졌다. 북미와 유럽 쪽 정치인·공직자는 30~93%가 괴롭힘과 스토킹을 당한다는 조사도 있지만 ‘얼굴 없는 미행자’는 아니다.

▶어떤 범죄학자는 스토킹을 7가지로 분류한다. 전 배우자, 연쇄 범죄자, 구애가 거절된 자, 연예인 사생팬, 정치적 목적, 청부 살인, 복수 등이다. 한동훈 장관에 대한 유튜버 미행은 ‘정치적 목적’도 의심될 뿐 아니라 ‘정당한 이유’도 희박하다. 그 행위를 언론 활동으로 볼 것이냐도 논란이다. 작년 11월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부인 김혜경씨 경우도 그랬다. “누군가 미행한다”는 신고가 접수되자 경찰은 법 위반으로 보고 기자에게 경고 조치를 내렸다.

/김광일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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