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세상] 어설픈 굿판의 정치

이준웅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2022. 10. 3. 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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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무당 굿판 같다. 애초에 이게 이럴 일이었나 싶으니 더욱 그렇다. 칠금령 소리 요란하고 장구재비 엇모리장단이 경쾌한데, 정작 공수를 주는 무당들의 사설이 혼란스럽다. 나라님 비속어 발언이 문제인지, 남의 나라 권력을 망령되이 불러서 문제인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굿을 의뢰한 당사자야 무당의 입을 보며 애가 닳겠지만, 구경꾼들은 호기심 반 염려 반으로 이 판이 어떻게 될지 지켜보고 있다.

이준웅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후세는 이 정국을 두고 무엇이라 할지 모르겠다. 우리는 일단 ‘날리면 사태’라 부르자. 사태의 기원은 언론보도를 통해 모두가 들었던 문제의 대통령 발언을 특정할 수 없다는 주장에서 시작했다. 발언 내용이 모호하면 발언자에게 물어보면 된다. 대통령은 정작 언론보도가 사실과 다르다고 불평했을 뿐, 내용을 따로 말해주지는 않았다. 다만 대통령실 홍보수석이 “다시 한 번 들어봐 주십시오”라며 “날리면이라고 되어 있습니다”라고 해명했는데, 대통령이 이 해명을 지지하는 마음은 누구나 이해할 수 있다.

여기까지만 보면 한국 정치판에서 늘 벌어지는 해프닝에 가깝다고 해야겠다. 그러나 사태가 제법 심각한 이유는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해묵은 정치적 수법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일찍이 대통령은 ‘진상이 확실히 밝혀져야 한다’며 언론보도를 문제 삼았고, 여당은 문화방송(MBC) 보도책임자를 상대로 대통령 명예훼손을 이유로 형사고발했다. 정치적 발언의 내용을 확인하기 위해 명예훼손 소송을 벌여 경찰과 검사의 수사능력을 활용하는 구태의연한 수법이 다시 나온 것이다.

이건으로 형사재판이 열린다 하더라도 결론은 자못 자명하다. 지난 29일 동아일보 김순덕 칼럼을 보면 알 수 있다. 우리 사법부는 공인에 대한 명예훼손을 이유로 언론을 고발한 쪽의 손을 들어 준 적이 거의 없다. 이 고발은 사법적 판단을 받기 위한 것이라기보다 정치적 논란을 증폭하기 위한 것이다. 수사당국의 힘을 빌려서 언론을 들쑤시고, 수사 중에 별건을 잡아내고, 수사는 물론 재판으로 정치적 논란을 이어가겠다는 순정한 정치적 의도를 드러내고 있다.

반사실적으로 생각해 보자. 애초에 이런 정치적으로 동기화된 굿판이 벌어질 게 아니라면 어찌 될 일이었을까. 대통령 발언에 대한 해명을 돕기 위해 명예훼손 형사소송이 필요한 일인가. 언론의 대통령 순방 보도의 경위를 파헤치자고 수사당국이 개입할 일인가. 아니, 이 나라 시민이 귀가 없고 이 나라에 음성 전문가가 없어서 ‘바이든’인지 ‘날리면’인지 특정하지 못하는가. 대통령 순방의 외교적 성과를 검토하고 임박한 경제외교 위기에 대한 정책적 대응을 고민해도 충분치 않은 시간에 어처구니없는 굿판이 벌어지고 있다.

한나 아렌트는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을 출판한 이후 각종 비판에 시달렸는데, 특히 진실을 주장하는 정치적 공세에 질린 나머지 1967년 ‘진실과 정치’라는 글을 ‘뉴요커’에 기고했다.

이 위대한 에세이의 요점을 새기는 자라면 누구나 정치에서 진실을 주장하는 일은 그 자체로 위태하고 또한 위험하다는 것을 안다. 아렌트의 경계가 무색하게도 우리 정치에는 온통 진실 추구요, 진상 규명이요, ‘팩트’ 확인뿐이다. 정치적 진실을 확립한다면서 수사기관을 동원하고, 언론매체를 동원해서 몰아치기 보도를 유도한다. 입빠른 자들은 저마다 진실을 말한다며 열변을 토하는데, 좌파든 우파든 진실을 눈앞에 보고 있다는 그 광신적 표정에 별 차이가 없다.

나는 우리 정치가 한 발이라도 앞으로 나가려면 정치적 행동을 둘러싼 진상규명을 이유로 형사고발을 서슴지 않는 바로 그 관행을 바꾸어야 한다고 믿는다. 진실이면 충분하다는 이유로 상대방을 설득할 필요도 없다는 듯이 몰아세우려는 그 자세를 반성해야 한다. 누구도 확인하지 못할 진실을 듣기 위해서 칼춤과 작두타기가 난무하는 굿판이라도 벌이겠다는 그 모진 마음을 돌봐야 한다.

이준웅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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