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 '완전 끔찍' 대한민국 오명 벗는 방법은

한대광 기자 2022. 10. 3.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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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N ‘윤식당2’ 캡처

스페인의 테네리페섬에는 가라치코라는 곳이 있다. 인구 5400여명의 작은 마을이다. 4년 전 이곳에서 tvN의 <윤식당> 시즌2가 촬영됐다. 마지막화에선 이 마을에 사는 한 가족 손님이 찾아왔다. 이 가족들의 대화는 지금도 기억에 남는다.

한대광 전국사회부장

이들은 한국인들이 임시로 운영하는 식당이라는 사실을 인지한 뒤 한국의 노동시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한국이 가장 일 많이 하는 나라인가?” “그리고 다음이….” “멕시코가 두 번째였어.” “말도 안 돼.” “한국이 1등이야.” 그리고 이어진 말은 “완전 끔찍해”였다.

이후 딸은 부모에게 “인도에 있었던 내 (한국인) 동료는 여행하면서 안식년을 보내고 있었어. 그리고 돌아가서 세계적인 대기업에 들어가는 거지. 거기서 죽어라 일을 하고…”라며 자신의 경험담을 얘기했다. 그는 이어 “대기업에 들어가서 하루에 12시간 이상씩 일하는 거지, 그것도 평생 동안”이라고 했다. 한국의 노동시간을 한마디로 ‘끔찍하다’고 표현한 딸은 “왜냐하면 난 조금 일하고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할 수 있는 시간이 많기를 원하거든. 하루에 내가 가진 시간 중에 10~15시간을 대기업을 위해서 일하는 건 싫어”라고 덧붙였다.

이 장면이 방송되던 2018년에는 ‘주 52시간 근무제’로 요약되는 근로기준법 개정으로 노동시간을 어떻게 단축할 것인지가 뜨거운 쟁점이었다. 당시 전국언론노동조합 경향신문지부장을 맡고 있던 필자도 기자직군 조합원들의 노동시간 실태조사부터 했다. 주 100시간을 넘는 노동이 허다했다. 경향신문 노사는 수개월간의 교섭 끝에 주 52시간제 시행 방안을 만들어 냈다. 이 제도는 4년째 지속되고 있다.

2019년에는 언론노조 차원에서 꾸린 조사단에 참가해 유럽의 노동시간 제도가 실제 어떻게 운영되고 있는지 직접 확인할 기회가 있었다. 프랑스 기자노조(SNJ)와의 면담을 시작으로 독일의 통합서비스노조(Ver. di) 산하 언론인노조, 영국 언론인노동조합(NUJ) BBC지부, 벨기에에 위치한 국제사무직노조연합(NUI)과 벨기에 공영방송 노조위원장 등을 만났다. 각국의 언론정책 담당 공무원들과도 면담했다.

법과 제도부터가 다소 충격적이었다. 대부분 주당 노동시간을 35~40시간으로 정해 놓고 있었다.

벨기에는 주 35시간 노동제였다. 프랑스에선 대부분의 직장은 주 35시간제이지만 기자들은 주 4시간의 연장근무를 허용하는 단체협약이 체결돼 있었다. 영국은 35~40시간이었고, 독일은 최대 48시간이었다.

그러나 기자직 업무의 특성상 비상상황이 발생할 경우 정해진 시간을 초과하는 노동이 실제 벌어지고 있었다. 대신 이에 대한 보상 체계는 상당히 두터웠다.

프랑스의 경우 초과 노동시간만큼을 휴가로 보장하는 동시에 초과근무 수당까지 동시에 보장하고 있다. 일반 국민들도 “기자들은 일을 많이 하기 때문에 대신 바캉스철에 일반 직장인보다 더 많은 휴가를 사용한다”고 인식하고 있다. 독일에서는 초과노동에 대한 ‘노동시간 저축계좌제’를 통해 정년까지 사용할 수 있다.

마지막 출장지에서 만난 벨기에 공영방송 노조위원장은 양성평등 관점에서 노동시간 문제를 언급했다. 그는 확신에 찬 목소리로 “주 35시간제가 시행 중이지만 최근 주 28시간으로 노동시간을 단축하자는 요구가 계속되고 있다”면서 “노동시간 단축은 일자리 나누기라는 의미 외에도 양성평등의 문제다. 노동시간이 단축되어야 (노동자 부모 모두) 과도한 근무로 인한 육아에 대한 부담이 줄어들 수 있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한국의 노동시간은 2021년 기준으로 연평균 1915시간이나 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 회원국 중에서 뒤에서 4번째 순위다. 여전히 창피한 수준이다. 그런데도 윤석열 정부는 노동시간이 짧아서 경제가 어렵다는 자본의 논리만 앞세우고 있다. 고용노동부 장관까지 나서서 52시간제를 후퇴시키겠다고 공공연히 떠들고 있다.

자본주의는 노동자를 탄생시켰다. 자본주의의 역사는 노동자들이 노동시간을 단축시켜 온 지난한 싸움의 과정으로 점철되어 왔다. 노동시간 단축의 의미는 간단하다. 윤식당을 찾았던 스페인 한 가정의 딸이 소박하게 잘 표현해 주고 있다. “왜냐하면 난 조금 일하고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할 수 있는 시간이 많기를 원하거든.”

한대광 전국사회부장 chooh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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