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想과 세상] 짧은 그림자
육교에서 코트가 놓아 버린 단추를 보았다 시멘트에 박혀 눈뜨고 있었다 단추는 몸을 열고 닫는 한곳을 고수하던 자랑이었다 옷을 완성시키는 손끝이었다 실이 낡아 갈 때 단추도 닳아 가고 어디로든 가겠냐고 실밥이 물으면 어디로든 가겠다고 호기를 부렸다 이제 태양 발바닥의 무게를 받아 내고 있었다
생의 이변처럼 음해의 그림자가 덮친 날이었다 대면과 대피 사이 손은 단추를 만지작거렸다 매달려 땅을 굽어보던 실밥의 위태함은 가젤이 치타에 쫓기는 거리였을까 망설이는 내가 미워져 단추는 그날 실밥을 놓아 버린 걸까 단추가 나의 위태함을 본 날이다 덜렁거리는 생을 꿰매지 않은 나를, 시절 모르고 피는 가을 철쭉처럼 무작정 생에 끼어든 자라고 읽은 날이다
이제 나의 단추여 안녕!
정영선(1949~ )
육교 위에 단추 하나 떨어져 있다. 단추를 바라보던 ‘나’는 잠시 상념에 젖는다. 옷을 여닫는 데 쓰이는 단추는 한때 “한곳을 고수하던 자랑”이었고, “옷을 완성시키는 손끝”이었지만 지금은 낡고 초라한 행색이다. 단추의 판단 실수는 매달고 있는 실이 언제 자신을 떨어뜨릴지 모르는데도 어디든 따라가겠다고 호기를 부린 것. 어딘지도 모른 채 따라다니다 보니 내 존재조차 찾을 수 없고, 종속적인 삶을 살다가 한순간에 버림받았다. 후회는 늦고, 한숨은 깊다.
육교는 도로를 안전하게 건널 수 있도록 도와주지만, 사람의 편의가 아닌 차량의 속도를 위한 시설이다. 사람과 옷을 위해 희생하는 단추처럼 경제와 속도를 위해 육교를 건너는 불편을 감수한다. “음해의 그림자가 덮친” 날, 황급히 육교로 피신한다. “대면과 대피 사이” 조바심으로 단추만 만지작거린다. 첫 단추가 잘못 끼워졌다는 걸 알았을 때 망설이지 말고 바로잡아야 했다. 꿰매지 않아 “덜렁거리는 생”은 위태롭다. 생은 되돌아올 수 없는 일방통행이다.
김정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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