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도산 제자' 日레슬링 대부 이노키 사망

이영빈 기자 2022. 10. 3.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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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역 은퇴후 국회의원 당선도
2016년 사망한 무하마드 알리에 대한 회고 기자회견을 하는 안토니오 이노키. /AFP 연합뉴스

일본 프로 레슬링 대부 안토니오 이노키(본명 이노키 간지·79)가 1일 오전 심부전으로 별세했다고 교도통신이 보도했다.

이노키는 1943년 일본 가나가와현에서 태어나 중학교 때 브라질로 이주했다. 1960년 원정을 위해 브라질을 방문한 역도산(본명 김신락)에게 발탁돼 17세였던 그해 일본 프로레슬링에 데뷔했다. 이노키는 김일(2006년 사망), 자이언트 바바(1999년 사망)와 함께 역도산의 3대 제자였다.

이노키의 프로 레슬링 데뷔전 상대는 ‘박치기왕’ 김일이었다. 데뷔전에서는 패했으나 이후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김일과의 여러 차례 대결을 펼치며 국민을 TV 앞으로 끌어모았다. 당시 이노키를 모르는 국민이 없을 정도였다. 1972년 신일본 프로 레슬링을 설립한 그는 ‘코브라 트위스트’라는 기술로 링 위에서 괴력을 보였다. 1976년엔 당시 프로 복싱 세계 헤비급 챔피언인 무하마드 알리와 지금의 이종격투기 대결을 벌여 세계적인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이노키는 1988년 현역에서 은퇴한 뒤 이듬해 스포츠평화당을 만들어 참의원(상원) 선거에 당선됐다. 1995년 선거에서 낙선하고 1998년 정치에서도 은퇴를 선언했지만, 이후 2013년 정계에 복귀해 참의원에서 재선됐다. 2019년에 고령을 이유로 재은퇴했다.

이노키는 함경남도 홍원군 출신인 스승 역도산의 유지에 따라 북한과 일본 관계 개선에 앞장섰다. 1995년 4월 북한에서 처음으로 프로 레슬링 행사를 열어 38만명을 동원하기도 했다. 2013년 참의원 의원으로 스포츠 교류 행사 참석차 북한을 방문해 당시 김영일 노동당 비서와 회담하는 등 2018년까지 33차례 방북했다. 2000년 12월엔 투병 중이던 김일 문병차 한국을 방문했으며, 성남 나눔의 집을 찾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을 위로하기도 했다.

이노키는 2020년 7월 심장 기능이 떨어지는 난치병인 ‘심장 아밀로이드증’ 투병 사실을 공개하며 재활 의지를 밝혔지만 끝내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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