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미의 어떤 시] [89] 마음속의 가을(Autumn Within)
최영미 시인·이미출판 대표 2022. 10. 3. 00:05
가을이다. 바깥이 아니라
내 마음속이 쌀쌀하다
누리에 젊음과 봄이 한창인데,
나만 홀로 늙어버렸다.
새들이 허공을 날아다니고,
쉴 새 없이 노래하며 집을 짓는다.
곳곳에서 생명이 꿈틀대고 있다.
나의 외로운 가슴속을 빼고는
거기만 고요하다. 죽은 잎들
떨어져 바스락거리다 잠잠해진다.
보리타작하는 소리도 그치고,
방앗간의 웅얼대는 소리도 멎었다.
-롱펠로(H.W. Longfellow 1807~1882) (김천봉 옮김)
내 속의 가을을 절절하게 묘사한 시. 밖은 젊음의 활기로 가득한 봄인데, 내 마음속은 죽은 잎처럼 고요하다. 내 안과 바깥 풍경의 대비를 통해 내 안의 쌀쌀함이 더 두드러진다. 8행에 나오는 ‘외로운’이라는 형용사를 빼면 시가 어떻게 될까? 더 절제되어 여운을 남기는 작품이 되지 않았을까. ‘외로운’이 없어도 앞에 몇 줄만 읽으면 시적 화자의 외로움은 충분히 감지된다.
미국의 국민시인 헨리 워즈워스 롱펠로는 외로움이나 절망 같은 감정을 시에 직접 표출하는 것을 꺼리지 않았다. 어떤 평론가들은 롱펠로의 시가 너무 ‘센티멘털 sentimental’하고 스타일이 새롭지 않다며 그를 비판했지만, 미국 독자들은 인생의 중요한 문제들을 거침없이 다루는 롱펠로의 감상적인 시에 열광했다. 차라리 밖이 시끄러운 게 낫지, 방앗간 소리가 멈추고 사방이 고요해질 때, 그의 가을은 더욱 깊어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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