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야문명의 쇠퇴..이 빨간 돌 때문?
호주·미국·영국 공동 연구진
“당시 대도시들, 수은 오염 흔적”
중금속 함유된 ‘진사’ 원인 지목
마야인들 선호한 빨간색의 원료
집·물건 칠했다 오염됐을 가능성
촬영된 지 오래된 흑백 동영상 속의 한 사람, 손을 뻗어 정면에 놓인 물체를 힘겹게 가리킨다. 하지만 손은 바람 앞의 촛불처럼 이 방향 저 방향으로 쉴 새 없이 흔들린다. 한 노인은 떨리는 손 탓에 담배를 입에 물기까지 애를 먹는다. 병원 침대에 누운 한 환자는 강추위에 노출된 것처럼 다리를 사시나무 떨 듯이 떤다. 모두 ‘미나마타병’ 환자의 모습이다.
미나마타병은 1956년 일본 구마모토현 미나마타시에서 메틸수은이 포함된 조개와 어류를 먹은 주민들에게서 집단 발병했다. 2001년까지 공식 확인된 환자만 2265명이다. 이 병에 걸리면 사지가 떨리고 발음 장애가 온다. 똑바로 걷기도 어렵다. 신경계가 망가지기 때문이다.
수은의 다량 사용은 현대 문명의 결과물이다. 미나마타병도 화학물질을 취급하던 공장에서 방류한 수은 때문에 일어났다. 그런데 미나마타시보다 1000년 앞서 마야문명 지역에서 고농도의 수은 오염이 일어났을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 나왔다. 지목된 수은의 근원지는 마야인들이 건물이나 도자기 등을 빨갛게 칠하는 데 썼던 특수한 페인트의 원료다.
■ 마야 옛 도시서 수은 ‘철철’
호주와 미국, 영국 과학자들로 구성된 공동 연구진은 최근 국제학술지 ‘프론티어스 인 인바이런멘털 사이언스’를 통해 마야문명 시기에 대규모 도시였던 다수 지역에서 수은 오염의 증거를 발견했다고 밝혔다. 마야문명은 기원전 2000년쯤 시작해 1697년 스페인군에 의해 최후의 보루였던 노즈페텐이 함락되면서 막을 내렸다. 하지만 스페인의 군사 공격 이전에 이미 수은이 마야문명을 갉아먹고 있었을 가능성을 연구진은 제기한 것이다.
연구진은 1970년부터 2022년까지 토양 등 퇴적물에서 수은을 검출한 주요 연구들을 샅샅이 뒤졌다. 이 가운데 마야문명 지역과 일치하는 현대의 과테말라, 멕시코, 엘살바도르, 온두라스 일대를 분석한 논문을 추려냈다.
연구진은 논문들을 재차 분석해 이 나라들에서 마야문명 시기에 도시였던 특정 지역 10곳을 뽑아냈다. 그랬더니 이 가운데 7곳에서 수은이 현대의 환경 기준치를 넘어선 수준으로 검출된 것이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수은에 대한 농업 환경 기준치를 0.05PPM으로 잡고 있다. ‘티칼’이란 옛 마야 도시에서는 무려 17.16PPM이 확인됐다. 마야문명 시기 환경오염과 관련해 미국 신시내티대가 2020년 발표한 연구에서도 티칼은 수은 오염이 특히 심각한 곳으로 꼽혔었다.
오늘날 과테말라 북부에 있는 티칼은 600~850년 사이 마야문명의 최고 중심지였다. 인구가 6만명을 넘었다. 당시로서는 대도시다. 연구를 이끈 덩컨 쿡 호주 가톨릭대 교수는 연구 결과를 통해 “마야 도시의 토양 등 퇴적물에 묻힌 수은은 수세기 동안 마야인들이 수은을 사용한 결과로 봐야 한다”고 밝혔다.
■ 선명한 빨간색 페인트가 ‘사달’
마야인들은 왜 환경이 오염될 정도로 많은 수은을 썼을까. 연구진은 한 특수한 페인트의 성분을 지목했다. 마야인들은 건물이나 도자기 등 생활용품을 강렬한 빨간색으로 칠하기 위해 ‘진사’(辰砂, cinnabar)라고 부르는 광물을 페인트 원료로 다량 사용했다.
그런데 진사의 주성분은 황화수은이다. 치명적인 중금속이다. 결국 진사가 빗물 등에 씻겨 마야 도시들의 토양을 오염시켰을 공산이 크다는 얘기다.
학계에선 마야인들이 일상에서 빨간색을 특히 선호한 건 우연이 아니라고 보는 시각이 많다. 인간 등 생명체를 제물로 바치는 일이 잦았던 마야인들의 삶에서 피와 유사한 진사의 붉은빛은 영적인 의미를 띠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연구진은 마야인들이 광범위한 수은 중독에 걸렸을 것이라고 단정 짓지는 않았다. 하지만 가능성은 충분하다고 봤다. 무덤에 묻힌 마야인의 치아나 뼈에서 수은이 검출된 사례가 있고, 이들 대부분이 살아 있을 때 몸에 흡수된 경우라는 것이다. 연구진은 “수은에 대한 노출이 마야문명의 사회적·문화적 조건에 어떤 변화를 일으켰는지에 대한 추가 연구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정호 기자 ru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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