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가 끝나자, 참사가 시작됐다
자바주의 칸주루한 경기장서 홈팀 패배에 성난 팬들 난입
경찰 최루탄 발포에 출구 쪽 몰리며 압사·질식 ‘아비규환’
과밀 수용·경찰 대응 도마에…조코위 “안전성 점검할 것”
인도네시아 자바섬 동부 자바주의 한 축구장에서 관중들의 난동과 경찰 진압으로 125명이 사망하는 참사가 발생했다고 현지 매체 콤파스가 2일(현지시간) 보도했다. 경찰의 과잉 대응이 대형 참사로 이어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번 사태는 지난 1일 저녁 동부 자바주 말랑 리젠시의 칸주루한 구장에서 인도네시아 프로축구 1부 리그(BRI리가1) 아르마FC와 페르세바야 수라바야 간 경기가 끝난 뒤 발생했다. 이날 아르마FC가 3-2로 패배하자 흥분한 아르마FC 팬들이 경기장 안으로 난입했다.
경찰이 이들을 저지하기 위해 최루탄을 쏘자, 최루탄을 피하려는 인파가 출구 쪽으로 달려가다 넘어지는 등 혼란이 빚어졌다. 이 과정에서 압사와 질식 등으로 최소 125명이 목숨을 잃고 수백명이 다쳤다고 인도네시아 경찰은 밝혔다. 사망자 중에는 경찰 2명과 5세 어린이도 포함됐다.
니코 아핀타 동자바 경찰청장은 “34명은 경기장 내에서 거의 즉사했으며 나머지는 병원에 이송된 후 숨졌다”고 밝혔다. 이어 “300명 이상이 다쳐 인근 병원으로 이송됐다”면서 “부상당한 이들 중 대략 180명의 상태가 나빠지고 있다. 사망자가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고 전했다.
이번 참사가 벌어진 칸주루한 경기장은 관중 3만8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크기지만, 참사 당시 경기장에는 4만2000명이 있었다고 AFP통신은 전했다. 경찰은 이 중 약 3000명이 경기장에 난입했다고 밝혔다.
현지 매체와 외신들은 경찰의 과잉 진압이 피해를 키웠다고 지적했다. 경찰이 관중들을 해산하기 위해 최루탄을 쏘자 놀란 관객들이 한꺼번에 특정 출구로 몰려들면서 대형 참사가 빚어졌다는 것이다. 국제축구연맹(FIFA)은 ‘경기장 보안 규정’에서 총기나 ‘관중 통제용 가스’를 사용하지 못하도록 규제한다. 병원에 입원한 한 청년(22)은 “경찰의 비인간적 진압으로 많은 친구들이 목숨을 잃었다”고 로이터통신에 말했다.
인도네시아 인권위원회는 최루탄 사용을 포함해 현장 보안을 조사할 계획이라고 로이터에 밝혔다. 니코 청장은 “관중들이 차량을 불태우고 경찰을 공격할 때, 우리는 최루탄을 쓰기 전 이미 예방 조치를 했다”고 해명했다.
자이누딘 아말리 스포츠청년부 장관은 “이번 사태는 인도네시아가 국제적 수준의 축구 경기를 준비하는 동안 발생했다. 우리의 축구 이미지가 손상됐다”며 유감을 표했다. 인도네시아가 내년 5~6월 FIFA U-20 월드컵을 개최하는 것을 염두에 둔 발언이다. 조코 위도도 대통령은 축구 경기의 안전성을 점검하겠다고 밝혔다. 이날 참사 여파로 인도네시아에서는 일주일간 프로축구 리그 경기가 중단된다.
이번 참사는 인도네시아의 과격한 축구 응원 문화와 관계가 깊다. 인도네시아 프로축구 1부 리그팀들은 일명 ‘마니아’라 불리는 광적인 팬클럽을 보유하고 있다. 라이벌 팀 간 경기에선 팬들이 섬광탄을 쏘거나 선수들에게 물병이나 돌을 던져 유혈 사태가 벌어지기도 한다. 이 때문에 인도네시아 축구협회와 경찰은 라이벌팀 간 경기에선 원정팀 응원단의 출입을 금지하고 주요 경기에는 전투경찰을 배치한다. 선수들을 경찰 장갑차에 실어 이동하기도 한다.
인도네시아 비정부기구(NGO) 세이브 아워 사커(SOS)에 따르면, 1994년 프로 리그가 시작된 이후 이번 참사가 발생하기 전까지 과격한 축구 응원 문화 탓에 사망한 사람들은 78명에 이른다.
이번 참사는 역대 최악의 축구장 난동들 중 하나로 기록될 것으로 전망된다. 1964년 페루에서 열린 월드컵 예선전에서 320명이 죽고 1000명이 부상한 바 있다. 2001년 가나 수도 아크라에서는 흥분한 관중을 향해 경찰이 최루탄을 발사하자 이를 피하던 관중들이 뒤엉켜 넘어지면서 126명이 사망했다.
잔니 인판티노 FIFA 회장은 이날 성명을 내고 “축구와 관련된 모든 이에게 이해할 수 없는 비극”이라면서 “희생자의 가족에게 깊은 애도를 표한다”고 밝혔다.
김서영 기자 westzer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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