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혁신조달, 지역 혁신 위한 강력한 도구

조직과 마찬가지로 정책도 진화를 거듭한다. 한국의 지역혁신정책 역시 부침을 거듭하며 나름의 궤적을 그려왔다. 이 과정에서 지역은 과거 중앙정부의 산업정책을 실현하는 '공간'에 불과했지만, 점차 지역의 대학, 연구기관, 기업들, 나아가 시민들까지 상호 협력하고 공존하는 자생적인 생태계로의 변화를 꾀하고 있다. 정부의 정책적 역할 역시 변모하고 있다. 정책 초기에는 인프라 구축이나 개별적인 기술개발을 지원하는 방식에 치중했다면, 최근에는 정부가 혁신적이지만 우수한, 혹은 아직 시장이 성숙단계에 진입하지 못한 시장을 육성하는 방식을 시도하고 있다.

지난 2020년 본격적으로 시행된 혁신조달 정책이 이에 해당한다. 혁신조달은 혁신성이 있는 초기 제품을 혁신제품으로 지정하고 정부와 지자체, 공공기관이 의무적으로 일정비율(1.2%)을 구매하도록 하는 제도다.

지난해 전체 공공조달 시장은 184조원 규모에 해당하기 때문에 지역혁신생태계 관점에서도 일정한 규모의 시장이 형성될 수 있는 계기가 된다. 지역에서 개발된 기술이 제품으로 상용화되고 정부가 이를 구매하는 선순환 구조가 정착된다면 지역혁신 생태계의 초기 임계치 확보에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물론 이러한 선순환 체계는 공짜로 얻어지는 것은 아니다. 특히 강제성을 띄는 일련의 정책들은 낯설고 어려우며 때로는 반발도 불러올 수 있다. 그러나 진화가 성공적으로 전개되기 위해서는 초기의 시행착오를 거치는 인내 단계가 필요하다. 해외의 많은 사례들에서 공통적으로 알 수 있는 하나의 확실한 교훈은 만능키(One-size-fits-all)와 같은 정책은 없다는 것이다.

혁신조달 정책은 이제야 형태를 잡아가는 3년차의 앳된 정책이지만 여러 성공사례가 나타나며 본격적인 시동을 걸고 있는 단계다.

특히 공공조달 정책은 재화와 서비스를 구매가 반복되는 행위기 때문에 안착에 어려움이 따른다. 효과적인 실행방안을 모색하고 수정해나가는 (fine-tuning) 인내가 필요하다. 제도가 정착되면 민간시장에서 개인의 선호에 따라 특정 브랜드나 플랫폼에 충성도가 높아지는 것과 같이 공공시장에서도 수요자들이 지역의 혁신제품에 관심을 갖고 더 나은 공공서비스를 위해 기존제품을 대체해 나갈 것이다. 필요한 제품이 생기면 혁신제품을 먼저 검색하고 구매하는 이러한 과정이 현재 중앙부처를 중심으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본격적인 지역으로의 확산이 그리 멀지 않았다는 얘기다.

이 때가 정책에 힘을 실을 적기이다. 정책의 초기 과정에서는 중앙부처를 중심으로 힘있게 추진하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 정부는 정부업무 평가라는 수단을 가지고 있다. 완전한 혁신 DNA를 내재화하기 위해서는 평가와 같은 수단이 불편하지만 효과적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혁신은 다익어 저절로 떨어지는 사과가 아니다. 떨어뜨려야 한다. 그 사과를 떨어뜨릴 도구는 다름 아닌 정부업무평가의 연속성을 유지하는 것이다. 새정부가 들어선 지금, 고삐를 늦추지 않고 중앙정부를 중심으로 혁신에 박차를 가해 지역혁신 생태계를 살리기 위한 돌파구가 필요하다.

서일원 전남대 경영대학 경제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