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록의 캡틴락 항해일지] 인디밴드로 27년 동안 살아가기

한겨레 2022. 10. 2. 1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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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록의 캡틴락 항해일지]

‘크라잉넛’ 기타리스트 이상면이 먼저 읽고 그리다.

한경록 | 밴드 ‘크라잉넛’ 베이시스트

한번쯤 글을 통해서 27년 동안 달려온 크라잉넛 이야기를 회고하고 싶었다.

친구들과 고등학교 2학년 때인 1993년 ‘크라잉넛’ 밴드를 결성했다. 그전까지는 책상 드럼과 빗자루 기타를 연주하며 록스타들을 흉내 내는 게 전부였다. 그러다 수학여행 때 어떤 친구가 기타 연주하는 것을 보고 자신감을 얻어 진짜 기타와 드럼을 사서 연주를 시작했다. “로큰롤은 생각보다 어려운 것이 아니구나! 우리도 할 수 있어!” 그러면서 농담처럼 “우리도 이제 여자애들에게 인기를 얻을 수 있겠구나!”라는 희망 섞인 마음이었다. 용돈을 모으거나 아르바이트해서 산 악기로 놀이기구를 타는 것처럼 재미있게 합주하고, 여름밤이면 별들을 보며 밤새 연주하고 놀았다.

이후 1995년 홍대 라이브클럽 ‘드럭’에서 오디션에 합격하고 공연을 시작하게 됐다. 관객으로 놀러 가서 신나게 까불던 우리를 클럽 사장님이 발견한 것이다. “너네 뭐 하는 놈들이냐?”고 묻는 사장님에게 “저희 록 하는데요”라고 말한 게 계기였다. 그렇다고 생각처럼 여자애들에게 인기를 얻지는 못했다. 대부분 그렇겠지만 시작은 엉망진창이었다. 우연찮게 온 관객들은 평균 2명에서 5명이었다. 뭐 관객 수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우리는 굉음으로 칼싸움하듯 청춘의 에너지를 폭발시켰다. 그 당시에는 음악을 배울 곳이 별로 없어서 열심히 카세트테이프와 시디(CD)를 되돌려 들으며 연주를 흉내 내고, 뮤직비디오를 비디오테이프가 늘어질 때까지 돌려보며 연습했다. 그러다 보니 연주가 야생마들처럼 날뛰었다. 소리는 스피커 찢어질 듯했고, 박자는 브레이크가 풀린 것처럼 빨라지곤 했다. 난 아직도 친구들과 음악을 한다는 게 너무 신기하다. 우리의 연주와 노래가 음악이 된다니…. 사람들이 우리의 노래를 듣고 따라 불러 준다니, 이건 거의 기적에 가까운 일이다.

학창 시절 장난처럼 시작한 밴드였는데, 어느샌가 직업으로 바뀌어 있었다. 그리고 아직 첫 직장에 27년 동안 다니고 있다. 멤버들이 바뀐 적도, 쉬어본 적도, 컴백해본 적도, 퇴사해본 적도 없다. 특히 27년 동안 공연장에 결석한 건 이번 코로나19 확진으로 인한 격리를 빼고는 없다.

27년 동안 정말 많은 일이 있었다. 1996년 첫 야외 공연 ‘스트리트 펑크쇼’에서 흥분한 관객이 실제로, 정말 물리적으로 무대를 찢었다. 라이브클럽 공연이 불법이던 시절, 많은 뮤지션과 클럽들이 연대해 클럽 합법화를 이뤄냈다. 주최 쪽이 제작비를 아끼려 했는지 특수효과 기계 대신 쑥을 태워 연기를 내서 관객과 우리 모두 눈물바다가 되었던 지방 공연, 허술한 무대장치 때문에 무대가 부서지면서 멤버가 연주 도중 무대 아래로 사라졌던 공연도 있었다. 2002년 월드컵 때는 붉은악마 백만명과 함께했던 감동의 순간도 있었고, 동반입대 제도로 크라잉넛 멤버들이 한꺼번에 군악대에 입대했다가 동시에 전역하기도 했다.

힘든 순간도 많았다. 당연히 슬럼프가 있었고, 기타 치는 상면이는 팔이 부러져 1년 넘게 기타를 칠 수 없었다. 상면이는 그때부터 그림을 배우기 시작하더니, 지금 이 글 삽화까지 그리게 됐다. 코로나 시국에는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온라인 스트리밍 공연도 시작했다. 인생살이 새옹지마라고 어려운 일들이 있지만 긍정적인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본다면 좋은 계기가 되기도 한다.

최근 잘하는 것을 해야 하는지, 좋아하는 것을 해야 하는지 묻는 말을 자주 듣는다. 크라잉넛은 좋아하는 일을 하다가 운이 좋아 잘 풀린 케이스 같다. 하지만 모두가 그렇지는 않다는 것을 알고 있다. 크라잉넛도 역시 직업인지라 재미와 직업의 시소 타기를 잘하려고 노력한다. 음악이 너무 일처럼 느껴지지 않기를 바란다.

요즘엔 크건 작건 그저 무대에 오를 수 있다는 것만으로 감사하다. 그저 멤버들과 노래하며 연주하다 가끔 눈이 마주칠 때, 씩 웃으면 그것만으로도 행복하다. 언제까지 크라잉넛으로 라이브를 할 수 있을지 모른다. 우린 분명 모두 죽기 때문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음악을 하는 순간 인생은 축제인 것 같다. 언제까지 크라잉넛 친구들과 로큰롤의 바다에서 항해할 수 있을지 너무 많은 생각은 하지 않는다. 앞일은 모르기 때문이다. 어떤 면에서 그렇게 심각하게 먼 미래를 고민하지 않아서 27년 동안 올 수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내일이나 어제를 노래하지 않는다. 항상 지금을 연주하고 노래한다. 어차피 우리에게 내일은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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