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은전 칼럼] 잘못된 만남

한겨레 2022. 10. 2. 1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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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은전 칼럼]삭발하고 점거하고 증언하는 몸이 있기 위해선, 그들이 밥 먹고 화장실 가는 걸 지원하는 몸도 있어야 했다. 때론 먹먹하고 때론 절박했지만 그 농성은 뭐랄까 즐거운 캠프 같았다고, 민제가 말했다.
‘장애인권리예산’ 보장 요구 삭발식 100일차를 맞은 지난 8월30일 오전 9시께 서울지하철 4호선 삼각지역에서 박경석 전장연 상임공동대표가 발언하는 도중 뒤쪽으로 그동안 삭발식 참여자들의 사진을 모은 펼침막이 보인다. 고병찬 기자

홍은전 | 작가·인권 동물권 기록활동가

요즘 장애인운동을 하는 비장애인 활동가들을 인터뷰한다. 장애인운동은 비장애 중심 사회가 가리고 지우는 장애인을 선명하게 드러내는 운동이므로, 이 과정에서 비장애인은 역설적이고 필연적으로 가려지고 지워진다. 그들은 무대 위에 있을 때조차 쪼그리고 앉은 채 장애인에게 마이크를 대주거나 뒤에서 우산을 드는 사람들이다. 장애인도 아니면서 장애인을 차별하는 세상을 매일 새삼스럽게 통탄하느라 이번 생을 다 쓰는 사람들이다. 그들에게 이 운동을 왜 하는지, 왜 떠나지 못했는지 같은 질문을 하며 올여름을 보냈다. 동경하는 활동가 대구 질라라비장애인야학 교장 조민제에게 묻자 그는 심플하게 대답했다. “선배를 잘못 만나서요.”

조민제는 2003년 대구대학교 특수교육과에 입학했다. 가정형편이 넉넉지 않았던 그는 장애인 룸메이트를 하면 기숙사에 계속 지낼 수 있다는 말을 듣고 곧바로 신청했다. 민제는 기숙사에서 운명의 선배를 만났다. 근육장애인이었던 선배는 허름한 자기 방 침대 위에 밥상을 편 채 앉아 있었다. 밥상엔 길 잃은 어린 양을 인도하는 예수님이 그려져 있었고 그 위엔 소주가 담긴 2리터 페트병이 있었다. 선배는 소주를 병째로 들이켜며 걸걸한 목소리로 말했다. “신입생이야? 인사해봐!”

서른아홉의 민제가 말했다. “충격이었죠. 장애인은 다 착한 줄 알았는데…. 가치관이 다 흔들렸달까.” 전혀 착할 것 같지 않은 그 선배는 학내 장애인권운동 리더 노금호였다.

2006년 학교를 졸업하고 본격적으로 장애인운동을 하겠다며 기숙사를 떠날 때 금호 얼굴엔 패기가 넘쳤다. 하지만 얼마 뒤 사정이 급격히 나빠졌다. 함께 살기로 했던 비장애인 룸메이트에게 사정이 생기는 바람에 운동은커녕 밥 먹고 화장실 가는 일마저 어려워진 것이다. 커다랗던 선배가 학교를 떠나자 ‘처절한 중증장애인’으로 쪼그라든 걸 보는 민제의 마음이 좋지 않았다. 금호는 민제에게 서울의 장애인들이 활동지원서비스를 요구하는 농성을 했고 서울시가 제도화를 약속했다는 소식을 전하며, 대구에서도 농성할 테니 와서 도와달라고 했다. 민제는 교사 임용고시를 준비하려던 참이었다. 하지만 금호는 가장 낮은 목소리를 대변하던 헌신적 리더였고 민제가 어려울 때 장학금을 알아봐주던 고마운 선배였다. 금호를 외면한다면 자신도 죄책감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할 것 같았다.

2006년 5월18일 대구시청 앞에서 농성이 시작됐다. 그것이 자신의 운명을 바꿔놓을 43일의 첫날임을 그땐 몰랐다. 민제는 평생 집 안에서만 지냈다는 중증장애인들을 만났다. 자립해 혼자 사는 류재욱 형님의 이동 이야기는 정말 굉장했다. 아파트 경비실에 계속 전화를 해 지하철역까지만 밀어달라고 조르고, 그다음엔 공익요원을 불러 지하철 플랫폼으로 내려간 뒤 전동차 안으로 밀어달라고 하고, 내릴 때가 되면 승객들한테 전동차 밖으로 밀어달라고 부탁했다. 거기서 또 공익요원을 불러 지상으로 올라간 뒤 마지막으로 행인들을 붙잡아 좀 밀어달라고 한다는 얘기였다. 그렇게 해서 그가 매일같이 향하는 곳은 검정고시 공부를 하는 질라라비장애인야학이었다. 민제는 아스팔트 위에 침낭을 덮고 자유를 향한 장애인들의 어마어마한 투쟁담을 들으며 잠들었다.

거리로 나간 제자들에게 교수들은 불법시위에 동원되지 말고 당장 학교로 돌아오라고 엄포를 놓았다. 어떤 이들은 떠났고 어떤 이들은 남았다. 남은 이들이 있어 농성은 계속됐다. 삭발하고 점거하고 증언하는 몸이 있기 위해선, 그들이 밥 먹고 화장실 가는 걸 지원하는 몸도 있어야 했다. 때론 먹먹하고 때론 절박했지만 그 농성은 뭐랄까 즐거운 캠프 같았다고, 민제가 말했다. 모두가 함께 밥을 먹었고 원할 때 화장실을 갔고 평등하게 밤이슬을 맞으며 잤다.

43일간 대동세상이 끝났을 땐 장애인의 삶도 비장애인의 삶도 바뀌기 시작했다. 이듬해 정부예산 1천억원을 시작으로 활동지원서비스가 제도화됐고 민제는 제도권 바깥으로 삶의 방향을 틀었다. 그는 말했다. “사회적 권력을 갖지 못한 사람들이 권력을 획득해가는 과정이 좋았습니다. 저는 관계가 역전되고 권력이 전복되는 과정에 희열을 느끼고, 그것이 제가 장애인운동을 좋아하는 이유 같아요.”

평범한 비장애인들이 운명적 만남들을 통해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잘못된 관계를 깨닫는 이야기, 그 차별적 관계를 역전시키고 아름답고 비효율적인 세계를 제도화하기 위해 함께 손을 잡고 선을 넘는 이야기들이 10월부터 진보적 장애인 언론 비마이너를 통해 연재된다. 많은 관심 부탁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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