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히 잡을 수 없는 무지개를 화폭에

이한나 2022. 10. 2. 1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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獨작가 마티 브라운 亞 첫 개인전
오묘한 실크추상화 펼치고
마치 축소된 우주 같은
영롱한 구슬 조각도 전시
"작품이 상상의 렌즈 되길"
이달 23일까지 갤러리현대
마티브라운 전시 전경. [사진 제공 = 갤러리현대]
이처럼 따스한 빛과 함께 오는 존재라면 그저 반갑겠다. 무지갯빛 스펙트럼이 아주 섬세하고 부드럽게 빛나는 실크추상화로 펼쳐졌다. 그 앞에는 신비로우면서 영롱한 빛깔을 머금은 유리구슬들이 소담스럽게 놓였다. 우주적인 상상력이 평면과 입체로 구현된 모습이다.

서울 소격동 갤러리현대에서 독일 작가 마티 브라운(52)의 아시아 첫 개인전 'Ku Sol'에서 대표작 50여 점이 뿜어내는 따스하고 환한 빛으로 관람객을 환대한다. 전시 제목은 달을 뜻하는 핀란드어 'kuu'와 태양을 뜻하는 라틴어 'sol'을 조합해 언어유희처럼 만들었다. 문화적 언어적 연결고리를 작품 세계로 드러내는 작가는 한국어 '구슬'도 연상하게끔 의도했다고 한다. 핀란드인 어머니와 독일인 아버지 덕에 어릴 때부터 이중언어(bilingual) 환경에서 자란 것이 평생 작품활동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아름다운 실크 추상 연작에 대해 작가는 이렇게 말했다. "무지개를 표현하고 싶었다. 포착할 수 없는, 보는 순간 팔을 뻗어 잡으려 하면 사라지는, 하늘에서 발생하는 현상으로 인간이 내 마음대로 못하는 것. 시간을 뛰어넘어 존재하는 것 말이다."

그가 2008년부터 시작한 실크추상은 염료를 칠하거나 뿌릴 때 증기로 건조시키는 과정을 거쳐 재료와 실크천이 하나가 되게끔 한다. 그래서 색감이 신비롭다. 여러 색을 혼합하는 과정에서 다소 어두워진 작품도 그 아래에는 밝은 빛이 배어나온다.

작가는 "회화란 일종의 찾아가는 행위(searching)라 생각한다"며 "무지개를 그리려다 실패한 회화도 다양한 방법과 요소를 보여주는 새로운 작품이 됐고, 전통적인 방식으로 현대에 새로운 지각을 주고 싶었다"고 전했다.

실크추상과 이어지는 유리 입체 작품은 로마시대부터 수천 년간 유리공법을 이어온 남부 독일 장인들과 협업해 만들었다. 실크와 유리 등 수천 년간 이어온 인류의 문화유산을 되살려 현대예술로 만들었다. 동글동글한 유리조각들은 축소된 우주 같기도 하고 얼굴 큰 외계인 ET의 눈이나 알 같다.

처음에 색면추상이나 공예작가 같았지만 전시장을 다 둘러보고 나면 우주 덕후임을 깨닫게 된다. 인도의 유명 영화감독 사트야지트 레이의 각본 'The Alien(외계인)'에서 영감 받아 제작한 실험적 공연을 찍은 사진 연작(2007년)이 그 구체적인 단서다.

독일 서베를린 태생 작가는 열네살 때 처음 극장에 가서 본 미국 영화가 바로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ET'(1982년)였다고 한다. 할리우드에서 SF(공상과학)영화는 1950~1960년대 냉전시대에 적대적 외계인이 전형적이었으나 스필버그의 '미지와의 조우'(1977년)와 'ET'로 친구 같은 외계인이 등장했다. 작가는 조사 결과 인도 감독 레이의 미실현 시나리오가 할리우드에서 영화제작을 추진하던 과정에서 스필버그에게 영향을 줬을 것이란 심증을 갖게 됐다.

외계인과 지구인의 만남처럼 서로 다른 문화가 만나 새롭게 변주되는 것이 그의 관심사다. 특히 영국 지배를 받던 주변국 인도와 서구의 교류에 대한 연구·조사도 했다. 이번 전시에 맞춰 인도 우주개발을 주도한 과학자 비크람 사라바이(1919~1971년)가 르코르뷔지에, 존 케이지 등 서구 모더니즘 예술가들과 교류했음을 소개하는 강연을 가진 것도 이런 맥락이다. 작가는 그의 작품이 관객에게 새로운 세상을 보여주고 상상할 수 있게끔 하는 하나의 렌즈가 되길 바랐다. "일반적인 동시대 예술처럼 작품의 외형과 작가가 말하는 개념, 서사들이 한 지점에서 만나거나 일치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천체를 중심으로 도는 위성처럼 수많은 서사와 개념이 작품을 중심으로 맴돌 수도 있다. 관람객들이 이 렌즈로 내 작품을 보고 새로운 우주를 상상하고 감각했으면 한다."

[이한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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