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의 빛나는 불'..끝나지 않은 '핵전쟁' 위협 경고

진달래 2022. 10. 2.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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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부천만화대상 해외작품상 '원자폭탄' 
작가 3인 중 시나리오 작가 2명 방한 인터뷰
"불어권 외 국가서 수상 처음이라 뜻깊어"
"핵의 시작, 역사적으로 기록하려고 노력"
30~3일 부천만화축제 3년 만 대면 개최
그래픽노블 '원자폭탄'으로 2022 부천만화대상 해외작품상을 수상한 디디에 알칸트(왼쪽)와 로랑프레데릭 볼레가 지난달 30일 부천 상동 한국만화박물관에서 열린 수상작 특별 전시회를 둘러보며 한국어판본의 실물을 처음 봤다며 기뻐했다. 부천=김영원 인턴기자

"나는 지옥의 빛나는 불이다. 나는 충격이다. 나는 공허를 만들어내는 창조주다."

원자폭탄 투하에 잿더미가 된 1945년 8월 일본 히로시마 전경을 그린 만화 한 컷. 그림 위 '우라늄'의 대사가 더해지면서 잔인함을 더한다. 올해 부천만화대상 해외작품상을 수상한 그래픽노블 '원자폭탄'의 한 장면이다. 최근 전 세계의 '핵 전쟁' 공포를 키우고 있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을 생각하면, 이 대목을 단순히 과거의 장면으로 치부할 수 없어서 더 서늘하다.

부천국제만화축제 개막과 함께 시상식이 열린 지난달 30일 경기 부천 한국만화박물관에서 '원자폭탄'의 작가 3인방 중 디디에 알칸트(52·벨기에), 로랑프레데릭 볼레(55·프랑스)를 만났다. 알칸트는 "(작가들의 출신국인) 프랑스, 벨기에, 캐나다가 아닌 국가에서 상을 받은 경우는 이번이 처음이라 더 의미가 크다"고 소감을 밝혔다. (그림을 담당한 캐나다 퀘벡 출신의 만화가 드니 로디에는 개인 일정으로 시상식에 참석하지 못했다.) 불어권 작가들이 의기투합해 2020년 출간한 '원자폭탄'은 제2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원자폭탄의 탄생 과정과 그 참상을 다뤘다. 브뤼셀 국제만화 축제 역사만화상, 프랑스 만화비평가협회상 등을 받았고 지난해 12월 국내에도 번역 출간됐다.

디디에 알칸트(왼쪽)와 로랑프레데릭 볼레가 지난달 30일 자신들의 '원자폭탄' 책을 기자에게 펼쳐 보이며 작품 구성 방식을 설명하고 있다. 부천=김영원 인턴기자

작품은 10대 시절 일본 히로시마 방문 경험이 있는 알칸트에서 시작됐다. 그는 히로시마의 그라운드제로 인근 한 은행 계단에 자국으로만 선명하게 남은 피폭자 사연을 알게 된 후 핵 전쟁에 관심을 갖고 자료를 꾸준히 수집했다. 동료 볼레가 시나리오 작업에 합류하고 그림을 로디에가 맡아주기로 하면서 약 5년간 이메일 5,000여 건을 주고받아 완성한 것이 '원자폭탄'이다. 이들은 "한 작가가 쓴 작품인 것처럼" 만들고 싶어서 용어 하나 삽화 하나도 보고 또 봤다고 전했다. 무엇보다 "역사학자의 입장에서 역사를 써보자는 취지로, 최대한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시각으로 사실을 담는 데 초점을 맞췄"(볼레)고, 그 결과 부제 '2차대전을 종결한, 잔혹하고 압도적인 무기의 역사'에 걸맞은 작품이 나왔다.

그래픽노블이란 장르는 이 이야기의 단점을 메웠다. 핵 물리학, 국제정치 역학관계 등을 설명하다보면 건조해질 수 있는데 그림 한 컷이 몰입감을 높이고 독자들의 마음도 열었다. 볼레는 "영화처럼 연출하려고 노력했다"면서 "전개도 드라마틱하게, 대사도 영화처럼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작품 전체를 끌고 가는 중심 해설자를 원자폭탄의 원재료인 '우라늄'으로 설정한 것도 재미를 더했다. 알칸트는 "20년 넘는 시간 동안 여러 국가가 얽힌 주제이다 보니 이를 관통하는 해설자가 필요했다"고 전했다. 원자폭탄이 아닌 우라늄을 선택해, 인간의 의도에 따라 자연 상태의 자원이 선 또는 악으로 변모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지난달 30일 부천 상동 한국만화박물관에서 열린 '부천국제만화축제'를 찾은 관람객들이 전시를 둘러보고 있다. 3년 만에 대면행사로 열리는 이번 축제는 오는 3일까지 나흘간 열린다. 부천=김영원 인턴기자

아쉬움이 있다면 500쪽 가까운 두꺼운 분량에도 담지 못한 이야기가 여전히 많다는 점이다. 재일 조선인의 피해 사례도 알고 있다고 밝힌 알칸트는 "덴마크, 노르웨이 등에서도 자국 관련 일화들이 있는데 왜 다루지 않았냐는 얘기를 들었다"며 "언젠가 이를 보충할 작품을 만들면 어떨까도 생각한다"고 밝혔다.

작가들의 메시지는 우라늄의 마지막 대사("내 이야기가 끝났다고 생각하는가? 만약 이게 겨우 시작이었다면?")에 응축돼 있다. 세계인에게 경각심을 주는 책이 되길 바라는 마음이 크다. 볼레는 "러시아어로도 곧 책이 출간된다"면서 "사람들의 (핵 전쟁에 대한) 생각이 달라지는 데 이 작품이 도움이 되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한편 지난달 30일 개막해 3일까지 열리는 제25회 부천국제만화축제는 3년 만의 대면 행사로 관람 열기가 어느 때보다 뜨거웠다. 개막식에는 내외빈 500여 명이 참석했고, 각종 만화 전시 외에도 코스프레 의상 판매 행사장과 만화 관련 입시·취업 상담을 진행하는 부스, 만화 전문가들의 대담 등이 마련됐다.

부천= 진달래 기자 az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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