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레카] 장관 해임안 거부는 "변종독재의 길"이라더니

박용현 2022. 10. 2. 1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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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 제63조에 규정된 국회의 해임건의권은 형식상으로는 국무총리·장관을 겨냥하고 있지만 내용적으로는 대통령에 대한 책임 추궁을 본질로 하는 제도다.

국회의 결의가 있으면 해당 국무위원은 즉시 물러나야 했다(55년 임철호 농림부 장관 해임). 62년 제3공화국 헌법에서는 해임건의권으로 바뀌면서 '대통령은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이에 응해야 한다'는 규정을 뒀다(69년 권오병 문교부 장관, 71년 오치성 내무부 장관 해임). 이후 72년 유신헌법과 80년 제5공화국 헌법에서는 해임건의권이 다시 법적 구속력을 갖는 해임의결권으로 격상됐다가 87년 개정된 현행 헌법에서 해임건의권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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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레카]

윤석열 대통령과 박진 외교장관. 김재욱 화백

헌법 제63조에 규정된 국회의 해임건의권은 형식상으로는 국무총리·장관을 겨냥하고 있지만 내용적으로는 대통령에 대한 책임 추궁을 본질로 하는 제도다. 대통령제에서 막강한 권한을 행사하는 대통령이 독단과 전횡에 빠질 때 이를 직접 제재할 수단은 탄핵뿐이다. 이런 극단적 상황 이외에 대통령의 독단을 견제할 또다른 방법으로 헌법에 마련된 게 해임건의권이다. “대통령을 보좌하는 국무총리·국무위원에 대하여 정치적 책임을 추궁함으로써 대통령을 간접적으로나마 견제할 수 있도록 할 필요는 있다. 이것이 국회의 해임건의권을 인정한 제도적 의의라고 생각된다.”(권영성 <헌법학 원론>)

따라서 해임건의의 사유는 매우 폭넓다. 탄핵처럼 헌법·법률 위반행위에 국한되지 않고, 정책 수립·집행에서 중대한 과오를 범했거나 국무위원으로서 대통령을 잘못 보좌했다는 것도 사유가 될 수 있다.

박진 외교부 장관 해임건의안이 통과되자 윤석열 대통령은 “박 장관은 탁월한 능력을 가진 분”이라고 했다. 해임건의권 제도의 본질에 비춰보면 동문서답인 셈이다. 해임건의가 가리키는 곳은 박 장관의 능력·자질이 아니라 윤 대통령의 외교 실패와 부적절한 언행, 자기 성찰 없이 잘못을 언론 탓으로 돌리는 독선이기 때문이다.

국회를 통과한 해임건의안의 구속력은 여러차례 개헌을 거치며 변천했다. 제헌 헌법에는 관련 규정이 없었으나 1952년 1차 개헌에서 내각불신임권, 54년 2차 개헌에서 국무위원 개인에 대한 불신임권이 도입됐다. 국회의 결의가 있으면 해당 국무위원은 즉시 물러나야 했다(55년 임철호 농림부 장관 해임). 62년 제3공화국 헌법에서는 해임건의권으로 바뀌면서 ‘대통령은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이에 응해야 한다’는 규정을 뒀다(69년 권오병 문교부 장관, 71년 오치성 내무부 장관 해임). 이후 72년 유신헌법과 80년 제5공화국 헌법에서는 해임건의권이 다시 법적 구속력을 갖는 해임의결권으로 격상됐다가 87년 개정된 현행 헌법에서 해임건의권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현행 헌법체제에서도 해임건의안이 통과된 임동원 통일부 장관(2001년)과 김두관 행정자치부 장관(2003년)은 직에서 물러났다. 임 장관 해임안은 평양에서 열린 민족통일대축전에 참가한 일부 남측인사의 돌출행동이 빌미가 됐는데, 당시 김대중 대통령은 해임안이 대북 햇볕정책에 대한 부당한 공격이라는 뜻을 밝히면서도 곧바로 국회의 결정을 수용하는 태도를 취했다.

대학생들의 미군 장갑차 점거시위를 막지 못했다는 이유로 추진된 김 장관 해임안 역시 당시 노무현 대통령은 부당한 정치공세라고 비판하면서도 “또 다른 대결 국면과 국정혼란이 조성되어 국민이 불안해지는 일이 있어서도 안되는 만큼 신중히 고심해 결정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야당은 해임안을 즉각 수용하라고 압박했다. 당시 야당 대변인이던 박진 외교부 장관은 “노 대통령이 ‘변종독재’의 길로 가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이라며 “대통령의 월권이자 헌법정신의 유린”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이후 노 대통령은 김 장관의 사의를 받아들였다.

2016년 박근혜 당시 대통령이 김재수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해임건의안을 받아들이지 않음으로써 헌정사상 첫 해임안 거부 사례가 만들어졌다. 비록 해임 사유에는 동의하지 않더라도 헌법상 제도의 취지와 국회의 결정을 존중하는 최소한의 모습을 보였던 전임 대통령들과 대조되는 선택이었다. 윤 대통령은 박진 장관 해임안에 대해 ‘박근혜의 길’을 택했다.

박용현 논설위원 pia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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