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검찰, 강제수사 한번 없이 김웅에 ‘면죄부’ 줬다

전광준 기자 2022. 10. 2. 1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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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발사주 의혹’ 검찰 불기소 결정서 입수
국민의힘 김웅 의원이 30일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 참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검찰이 고발사주 공모 혐의를 받던 김웅 국민의힘 의원을 불기소 처분하면서 관련자들에 대한 강제수사는 단 한차례도 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혐의를 부인하는 김 의원 등의 진술이 사실인지 확인하려는 노력은 하지 않은 채 “범죄사실이 합리적 의심이 없을 정도로 입증되지 않았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서울중앙지검 공공수사1부(부장 이희동)는 지난달 29일 공직선거법 위반 등 혐의를 받던 김 의원을 불기소 처분하며 37쪽짜리 결정서를 냈다. 김 의원은 2020년 4월 범여권 인사들이 입후보한 21대 총선에 영향을 미칠 목적으로 최강욱 당시 열린민주당 후보(현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의 고발장을 손준성 서울고검 송무부장(당시 대검찰청 수사정보정책관)으로부터 전달받아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에 전달한 혐의를 받아왔다.

2일 <한겨레>가 입수한 불기소 결정서를 보면, 손 검사와 김 의원 사이 공모관계를 확인하기 위해 검찰이 추가로 수집한 증거는 찾기 힘들다. 대신 손 검사의 고발장 최초 전송 시점과 김 의원이 ‘제보자’ 조성은씨에게 고발장을 전달한 시점까지 1~3시간 차이가 있다는 점을 들어 중간에 제3자를 거쳤을 ‘정황 증거’를 부각시켰다. 지난 5월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는 단시간에 ‘손준성→김웅→조성은’ 순으로 고발장 등이 전달됐다며 손 검사와 김 의원을 공모관계로 판단했는데, 검찰은 오히려 그 정도 시간이면 ‘손준성→제3자→김웅→조성은’ 순으로 전달됐을 가능성이 크다고 본 것이다. 이 과정에서 검찰은 손 검사와 김 의원 모두 공모관계를 부정하고 있다는 점을 주요하게 감안했다.

핵심 피의자가 혐의를 부인하는데도 검찰은 공수처가 재판에 넘긴 손 검사에 대한 추가 조사는 따로 진행하지 않았다. 손 검사는 공수처 수사 당시 구속영장이 청구되자 판사 앞에서 “휴대전화 잠금 해제에 협조하겠다”고 약속하고 구속을 면했다. 그러나 구속영장이 기각된 뒤에는 태도를 바꿔 수사에 협조하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검찰은 손 검사 휴대전화 포렌식을 따로 시도하지도 않았다고 한다. 공모관계를 밝히기 위한 추가적인 수사 노력이 없었던 셈이다. 한 검찰 출신 변호사는 “공모관계에 있다고 꼭 둘 다 불러 조사하라는 법은 없다. 다만 수사를 하려는 의지가 있었는지는 의문”이라고 했다.

검찰은 김 의원에게 전달됐던 실명 판결문을 손 검사가 대검찰청 수사정보정책관실 검사들을 통해 제공받았다는 공수처 수사 결과도 뒤집었다. 당시 수사정보정책관이었던 손 검사의 부하검사가 2020년 4월3일 오전 10시12~16분 실명 판결문을 검색하고 조회한 사실, 손 검사가 약 10분 뒤 텔레그램으로 누군가에게 해당 판결문을 전송한 사실은 검찰도 인정했다. 그러나 검찰은 손 검사가 부하검사로부터 판결문을 건네 받았다는 사실은 인정하지 않았다. ‘전달하거나 받은 사실이 없다’는 손 검사와 부하검사의 진술, 판결문을 조회한 것은 맞지만 출력을 했는지는 확인되지 않는다는 점을 근거로 들었다. 같은 부서에서 근무하는 두 검사가 불과 10여분 사이에 동일한 판결문을 검색하고 전송했는데도 피의자 말만 듣고 연관성을 통째로 부정한 것이다. 검찰은 해당 부하검사에 대한 추가 조사도 하지 않았다. 공수처가 넘긴 사건 기록 가운데 ‘빈 구멍’을 채울 생각은 안 하고 오히려 구멍을 확대해석해 불기소 근거로 삼은 셈이다.

‘고발 사주’ 의혹의 핵심 인물인 손준성 전 대구고검 인권보호관이 지난해 12월2일 저녁 영장이 기각돼 서울구치소에서 나오고 있다. 연합뉴스

마찬가지로 국민의힘(당시 미래통합당)에 대한 조사도 없이 손 검사와 김 의원에게 유리한 방향의 불기소 결론이 도출됐다. 미래통합당은 김 의원에게 전달된 최강욱 의원에 대한 고발장과 판박이 고발장을 이 사건 4개월여 뒤인 2020년 8월 검찰에 제출한 바 있다. 당시 정점식 미래통합당 법률지원단장을 거친 고발장에는 당대표 직인까지 찍혀 있었지만, 검찰은 해당 고발장이 어떻게 작성됐는지 아무런 조사도 하지 않았다. 대신 “유사한 별개의 고발장”이라는 표현을 쓰며 오히려 ‘김 의원에게 고발장을 직접 전송하지 않았다’는 손 검사 진술을 뒷받침하는 근거로 미래통합당 고발장을 활용했다. 마치 비슷한 고발장이 시중에 떠돌고 있었을 가능성을 거론하며 손준성-김웅 공모관계를 검찰이 알아서 부인해준 셈이다.

검찰은 또 제보자 조성은씨 진술을 들어 김 의원 혐의를 물타기하는 방법을 택하기도 했다. 검찰은 김웅-조성은 통화 녹취파일에 “고발장을 남부지검에 내랍니다” 등 김 의원 발언이 있다는 사실은 배척하지 못했다. 다만 조씨가 검찰 조사에서 ‘핫이슈가 아니면 선거 마치고 모아서 (고소·고발을) 해도 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김 의원에게 추후 고발장 접수 여부 확인 전화를 받은 기억이 없다’고 진술한 것을 근거로 김 의원이 선거에 영향을 미치려는 의사는 없었다고 판단했다. 공수처 수사 결과에는 2020년 4월5일 김 의원이 조씨를 만나 “선거 전 고발장을 빨리 접수해야 한다”고 말했다는 내용이 담겼는데, 검찰은 조씨가 검찰 조사를 받을 때는 그런 대화가 없었다고 진술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조씨는 검찰이 김 의원을 불기소한 이튿날인 지난달 30일 “검찰이 내 진술을 왜곡했다”며 검찰에 정보공개를 청구한 상태다.

이 사건 고발인인 김한메 사법정의바로세우기시민행동 대표는 “총선 직전까지 검사였던 김웅 의원에 대한 불기소 처분은 전형적인 제 식구 감싸기이자 손준성 검사에 대한 재판 결과를 유리하게 만들려는 검찰의 꼼수다. 조속한 시일 내에 항고 등 이의제기 절차를 진행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서울중앙지검 관계자는 “공수처에서 필요한 강제 수사는 이미 진행한 상황이다. 검찰은 공수처 사건을 이첩 받아서 수사하는 것이라 손 검사 등에 대한 조사나 별도의 추가적인 압수수색 등의 필요성은 없다고 판단한 것”이라고 말했다.

전광준 기자 ligh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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