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부에서 나로... 독립 후에 벗어난 '끼니의 프레임' [낼 모레 육십, 독립선언서]

이정희 입력 2022. 10. 2. 11:51 수정 2023. 4. 24.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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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이 아닌 나를 대접하는 한 끼

인생의 새로운 길에 섰습니다. 늘 누군가의 엄마로, 아내로 살아온 삶을 마무리하고, 이제 온전히 '내 자신'을 향한 길을 향해 가보려 합니다. <기자말>

[이정희 기자]

빵집 알바 면접을 보고 돌아오던 날, 눈 앞에 OO면옥이 보였다. '알바' 자리가 과연 생길까 노심초사했던 긴장이 풀리며 급격하게 허기가 몰려왔다.

"갈비탕 하나 주세요."

갈비탕을 하나 시켰다. 이제 내일부터 일을 시작해야 하니 '영양 보충'을 해야겠다는 심사도 있었다. 갈비탕이 나오고 우선 따뜻한 국물을 떠먹으니 얼얼했던 마음마저 풀리는 듯했다. 열심히 갈비도 뜯고, 커다란 깍두기에 밥이랑 국물도 떠넣다 차림표가 눈에 들어왔다. 

가족을 위한 밥상
 
 구색을 맞춰 상을 차려야 한다는 '강박'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찌개를 끓이고, 나물을 무치고, 생선을 굽고, 이렇게 해서 한 상을 제대로 차려 먹어야 한다고 여전히 생각했다.
ⓒ 최은경
 
1만 5000원. 내가 네 시간 알바를 해서 버는 돈이 5만 원이 채 되지 않았다. 거기에 오후에 글을 쓰고, 혹은 수업을 하고, 그래봐야 많은 부분이 빚을 갚는데 들어가고 나면........ 머릿 속에 주판알을 튕기다 보니, 이제 내가 '갈비탕이나' 사먹는 처지가 아니라는 '실감'이 다가왔다.

거창하게 '독립' 운운했는데, '독립'이란 무얼까? 얼마전 자상하던 아들을 '독립'시킨 지인이 아들을 시집 보냈다며 농반진반 말을 했다. 아이들이 자라면 결혼을 하지 않아도 '독립' 하는 시대이다. 그럴 때 '독립'이란 '집'을 떠나, 홀로 '의식주'를 해결하며 살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호기롭게 알바 자리를 구했지만, 그때까지도 독립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지 못했다. 그저 내가 갚아야 할 빚을 갚을 정도의 돈을 버는 데 전전긍긍했다. '주부'로 산다는 건 나와 가족을 한 몸처럼 느끼며 살아내는 시간이다. 그리고 그 시간은 늘 나보다 누군가를 위해 '밥상'을 차리는 시간이기도 하다.

나 역시 그랬다. 아이들이 자랄 때는 '반스턴트'라고 하면서도, 일을 하며 식구들의 끼니를 풍성하게 차려내는 걸 내 '미덕'이라 여겼다. 아이들이 성장해서 집을 떠나고, 더는 집밥에 연연하지 않는 시절이 되자, 그저 내가 차린 밥을 아이들에게 먹일 수 없음만이 서운했다.

그리고 굳이 국이나 찌개가 없어도 된다는 남편에게 늘 형식을 갖춰 끼니를 차려내는 걸 내 남은 의무라며 챙겼다. 생수를 배달해 먹는 시절에 나는 고혈압인 남편에게 좋은 물과 나와 아이들이 먹을 물을 따로 끓이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으며 '우리집 물맛이 좋지', 이러는 아이들의 말 한 마디에 자부심을 느꼈다. 

나만을 위한 밥상 

'독립'은 바로 그런 시절로부터의 '독립'이었다. 나는 이제 오로지 나만을 위한 '밥상'을 차리면 되는 시절을 선택한 것이다. 하지만 그걸 처음엔 깨닫지 못했다. '독립'은 했지만 여전히 나는 가족을 위해 상을 차리던 '주부' 모드였다.

구색을 맞춰 상을 차려야 한다는 '강박'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찌개를 끓이고, 나물을 무치고, 생선을 굽고, 이렇게 해서 한 상을 제대로 차려 먹어야 한다고 여전히 생각했다. 그런데 그렇게 차려 먹으려면 식비가 많이 들었다. 제대로 된 한 상과 돈을 아껴야 한다는 딜레마 사이에서 쩔쩔맸다. 

하지만 무엇보다 나 혼자 점심을 챙기고, 다시 저녁을 차려 먹는 일이 익숙치 않았다. 누군가를 위해 밥상을 차리던 것에 길들여졌던 나는 나를 위한 '밥상'이 어색했다. 정작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내가 무얼 먹고 싶은지조차 모르고 있었다.

아이들을 위해 차릴 때는 아이들이 좋아하는 거, 남편을 위해 차릴 때는 남편이 좋아하는 거 위주로 상을 차려왔던 나였기에 나를 위한 한 끼가 막막했다. 홀로 밥상을 차리다 보니 새삼 홀로 지내는 이들이 떠올려졌다.
 
 재래시장 풍경
ⓒ 남동구청 블로그
 
오래 전 독립한 큰 아이, 가끔 아이가 해먹은 요리의 사진을 올리면 기특하게만 여겼다. 이제 내가 홀로 밥상을 차려보니 아이가 홀로 채워갔던  '독립'의 시간이 뒤늦게 헤아려졌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재래 시장이 있었다. 재래 시장에서 사면 그래도 싼 값에 이것저것을 살 수 있어 장을 한 보따리 사 왔는데, 일을 하고 돌아와서 지친 몸으로 다시 음식을 만드는 게 버거웠다.

막상 제대로 한 상을 차려 먹는 건 좋은데 정작 만들어 놓고 보면 남는 음식들이 많았다. 혼자 먹는데 그리 많은 음식이 필요하지 않다는 것과 예전처럼 냉장고를 가득 채운 식재료들이 처치 곤란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배워갔다. 

나를 찾아가는 시간
 
 식빵 껍질 두 조각
ⓒ 이정희
 
매일 꼬박 두 끼의 식사, 조금씩 내가 좋아하는 걸 찾아가고 있는 중이다.

그러면서 내가 '라면'으로 한 끼 때우는 걸 넘어 꽤나 즐긴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일주일에 한 번쯤은 지금 내 형편이 허락하는 한도에서 햄버거 세트를 선물하기도 한다. 이러면 라면과 햄버거만 먹고 사는 것 같지만 건강하게 오래 '노동'하기 위해 '탄단지'(탄수화물, 단백질, 지방)의 균형을 맞추려고 노력한다.

참, '과일'도 '구색'을 넘어 좋아한다는 걸 알았다. 처음엔 과일을 먹는 것 자체에 부담을 느꼈지만 이젠 기꺼이 내가 좋아하는 거에 '인심'을 쓴다. 다행히 내가 사는 동네 근처에는 여전히 오이 두 개에 천 원, 사과 한 바구니 삼천 원에 파는 재래시장이 있다.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매일 오늘의 노동을 위해 계란 한 개와 두유 반 잔, 그리고 블루베리 한 숟가락으로 하루를 연다. 처음에는 몸을 쓰는 일에 허기가 져서 허덕거렸다. 일한 지 한 시간이 채 되지 않아 뱃거죽이 등거죽에 붙은 듯 배가 고팠다. 하지만 그것도 지내고 보니 이젠 4시간 정도는 견딜만 하다. 가끔은 기사님이 간식으로 빵을 챙겨주시기도 하니 늘 허기와 전쟁을 벌이는 건 아니다. 간식을 챙겨먹지 않는 날에는 간식으로 나온 빵을 가져와 점심으로 먹는다. 

물론 처음에 일할 때는 간식을 챙겨먹을 엄두도, 내 몫으로 나온 간식 빵도 챙기지 못했다. 그러고는 '폐기' 할 빵 껍질을 챙겨와서 점심 끼니로 때우기도 했다. 이제는 당당하게 내 몫의 '간식'을 챙기는 정도까지는 이르렀다. 오늘은 간식으로 나온 소금빵을 가져와 크림 치즈를 바르고, 양배추와 토마토로 샐러드를 만들어 점심 한 끼니를 대접했다. 

홀로 밥을 챙겨먹는 시간은 역설적으로 '밥'으로부터, '밥상'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계기가 됐다. 처음에는 일을 해야 한다며 아침부터 밥을 먹기도 했었다. 빵을 간식처럼 여겼기에 빵으로 한끼를 때우는 일이 어색했었다.

하지만 조금씩 조금씩 여태 주부로 살며 내가 만들어 왔던  '끼니의 프레임'으로부터 벗어나며 먹는 것의 강박으로부터 편해지는 중이다. 그리고 그건 '밥'을 매개로 '나'를 찾아가는 시간이기도 하다. 이제는 하루 중 가장 나를 설레게 하는 시간이기도. 그래서 오늘 뭐 먹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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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글은 브런치(https://brunch.co.kr/@5252-jh)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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