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보윤의 부티크] 패션이, 지구를 구할 수 있을까

최보윤 기자 2022. 10. 2.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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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레터는 이탈리아 밀라노 구찌 패션쇼 뒤 간담회에 참석한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전 세계 일부 허락된 매체만 들어갈 수 있는 공간입니다. 한국에선 유일하게 참석했는데요. 밀라노 패션 위크를 찾을 때 마다, 또 각종 컨퍼런스에 단독으로 참여해왔던 터였는데요. 이번에도 운 좋게 자리에 앉아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알레산드로 미켈레의 생생한 육성을 들을 기회를 얻게 됐습니다. 해외 담당자분을 만날 때 보통 ‘조선 데일리’ ‘조선 미디어’ 등으로 소속을 말하곤 하는데, 구찌 글로벌 최고 마케팅 담당자 분께선 그간 쌓아왔던 정(!) 덕분에, 그러한 설명 필요 없이 ‘조선일보’라고 똑똑한 우리말로 발음해주셔서 무척 반갑기도 하더군요. 다음은 미켈레와의 간담회 내용 일부와 간담회를 들으면서 떠오른 생각을 정리했습니다.

지난 9월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열린 구찌 트윈스버그(Twinsburg) 패션쇼에 참석한 아이유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알레산드로 미켈레(Alessandro Michele)/구찌

“디자이너로서 저는 요즘 일이 점점 더 치열해지고 있습니다. 의미 있는 방법으로 일을 하려고 노력하는 것은 많은 열정을 필요로 합니다. 요즘 들어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가 왜 이일을 하고 있는 거지?’ 정치는 재앙입니다. 지구의 상황은 재앙적입니다. 하지만 우리 인간이 가진 유일한 무기가 있죠. 바로 상상하고 그것을 실현하는 것입니다.”

최근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열린 ‘2023 봄여름 밀라노 패션 위크’ 구찌 패션쇼 뒤 기자간담회장.

구찌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알레산드로 미켈레가 쌍둥이를 모델로 내세운 ‘트윈스버그’라는 쇼 주제에 대해 열띤 설명을 하는 중이었습니다. 일란성 쌍둥이였던 어머니와 이모 사이에서 어린 시절 혼란 아닌 혼란을 겪었다고 고백하면서 시작한 쇼였죠.

마치 거울을 보는 듯한 상대를 보면서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 쌍둥이. 다른 한쪽의 존재를 통해 비로소 완전해 지는 쌍둥이. 하지만 미켈레는 단순히 태생적 존재에 대한 신비를 탐구하는 것에 그치지 않았습니다. 이미 거울로 인한 왜곡이나 거울에 비친 나를 바라보는 또다른 나에 대한 탐구는 이전 쇼에서 보여준 바 있습니다. 쌍둥이라는 표제어로 내건 이번 쇼에서 실은 ‘또 다른 자아’에 대한 심연을 파고든 게 아닌가 싶습니다.

쌍둥이 모델 김다슬, 김다솔이 지난 23일 밀라노에서 열린 2023 S/S 구찌 트윈스버그 패션쇼 런웨이에 올랐다. /케이플러스
구찌 트윈스버그(Twinsburg) 컬렉션/구찌
구찌 트윈스버그(Twinsburg) 컬렉션/구찌

그의 쇼를 보면서 시인 이상(1910∼1937)의 ‘거울’이 생각났는데요. 이상은 이렇게 말하죠.

‘거울때문에나는거울속의나를만져보지못하는구료마는

거울아니었던들내가어찌거울속의나를만나보기만이라도했겠소

나는지금거울을안가졌소마는거울속에는늘거울속의내가있소

잘은모르지만외로된사업에골몰할게요

거울속의나는참나와는반대요마는

또꽤닮았소

나는거울속의나를근심하고진찰할수없으니퍽섭섭하오’

두 분열된 자아. 화해를 시도하지만 하나가 되지 못하고 또 다시 갈라지고 마는 모순된 속성. 지난 번 거울을 들고나와 자신을 반추했던 미켈레는 거울 속 자신과 손을 잡았던 가요? 그는 이번 쇼 말미에 각각 보고 있는 것이 쌍둥이의 어느 한편이라는 것을 밝히며, 커튼을 올려 똑 같은 모습이 두 쌍둥이를 결국 만나게 합니다. 마치 거울처럼 걷고 있던 이들이 서로의 손을 잡고는 눈을 보며 웃습니다. 그 중 일부는 글썽이는 이도 있습니다.

미켈레의 말로 다시 돌아가 봅니다. 뉴스를 틀면 정말 패션 같은 게 왜 필요한지 모를 것 같은 세상입니다. 한가한 자들의 놀음 같은 지경이지요. 코로나 팬데믹에 이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참사, 홍수와 대지진 등 기후 변화로 인한 극도의 자연재해까지 여기저기서 비명입니다. 원·달러 환율은 끝을 모르게 치솟고 있습니다. 주가는 곤두박질입니다. 유럽의 상황이라고 다르지 않습니다. 최악의 인플레이션이션이라는 헤드라인이 매일 도배하다시피합니다. 전세계 뉴스를 보다보면 ‘위기(crisis)’라는 단어가 초단위로 반복되는 듯 합니다.

여기서 다시 미켈레의 말로 돌아가봅시다. 미켈레는 “우리는 단지 신발, 가방, 의상만 작업하는 것이 아니다”라면서 우리 인간이 가진 상상력의 힘을 강조했습니다. 그는 제품을 만들어 내놓고 있지만, 그가 디자인하는 건 단순히 제품이 아니라는 것이죠. 단지 ‘패션쇼’이기 때문에 그저 눈요기 거리 중 하나라고 치부될까 저도 두렵습니다. 그는 인간성(휴머니즘)을 디자인하고 있었습니다. 그가 쇼를 통해 보여주는 건 인간성의 복원이자 휴머니즘의 재확인입니다.

그는 자신의 치료사를 통해 ‘내 안의 다른 자신’을 찾게 됐다고 말하는 데요. 내가 어떨 때 힘들고, 어떨때 좋은가를 따져보다 보면 내가 어느 지점에서 힘을 얻는지 알게된다는 것이죠. 여기서 타인의 힘이 필요하기도 하죠. 혼자보다 둘일 때가 더 강하다고 말하는 것도 그런 이유이지요. 무언가를 두려워 하기 때문에 하는 것을 멈추는데, 두려움에 대한 원인과 이유를 알게 되면 다시 해 내갈 힘을 얻게 되죠. 그것이 주변의 조언일 수도 있고, 내가 마음을 새로 먹어서 일수도 있습니다.

그는 손을 잡는 것을 통해 연대를 표시하기도 했습니다. 그는 패션쇼를 통해 이러한 질문을 던지는 듯 합니다. 상대가 또 다른 나라고 생각한다면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할 수 있었을까요? 상대가 또 다른 나라고 생각한다면 인종적 차별 행위를 한다거나 아동 학대 등 각종 학대를 한다거나, 요즘 더욱 문제되는 스토킹 범죄를 저지른다거나 그런 일은 더욱 없겠죠. 잠시만이라도 내 속의 나와 대화를 나눌 시간을 제대로 가져보는 건 어떨까요. 어제보다는 달라지는 나에 대해 자못 기대하게 되긴 합니다. 정말, 패션이 지구를 구할 수 있을까요?

구찌 트윈스버그(Twinsburg) 패션쇼에 참석한 아이유/구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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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 부티크에선 ‘피겨 여왕’ 김연아를 뉴발란스 팝업 스토어 현장에서 단독으로 만났습니다. 화장기를 덜어내고 소녀같이 청초한 모습이었지만 특유의 아우라는 여전했습니다. 오는 10월 결혼을 앞두고 있는 그녀에게 선수 생활에 대한 이야기, 앞으로의 인생에 대한 기대감 등을 물었습니다. 짧은 시간만 허락됐기에 더 깊은 이야기를 나누지 못해 아쉬웠지만, 김연아의 밝고 건강한 웃음을 본 것 만으로도 에너지가 되살아나는 듯한 시간이었습니다.

https://www.chosun.com/culture-life/fashion-beauty/2022/09/30/C3DNF5DRERDETDOAIHF6NDA4Q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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