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대통령의 '고집', 과연 달라질 수 있을까 [유창선의 시시비비]

유창선 시사평론가 2022. 10. 2. 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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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언 자체보다 논란에 대처하는 안이한 태도가 더 문제
부지불식간 튀어나오는 과거 말 습관, 변화 의지 안 보여

(시사저널=유창선 시사평론가)

"사실과 다른 보도로 동맹을 훼손하는 것은 국민을 위험에 빠뜨리는 일이다." 뉴욕에서의 '비속어' 논란에 대해 침묵하던 윤석열 대통령의 귀국 후 일성이었다. 그러면서 "나머지 얘기들은 이 부분에 대한 진상이 더 확실하게 밝혀져야 한다고 본다"고 했다. 비속어에 대한 사과는 없었고, '바이든'이라고 자막을 입힌 방송보도에 대한 반격만 있었다. 그렇게 윤 대통령은 논점을 이동시키고자 했다.

물론 MBC의 보도에 문제가 있었음을 모르지 않는다. 외교적 문제까지 될 수 있는 '바이든'이라는 단정적 자막과 기사는, 법원의 유죄 판결이 그러하듯이, 합리적 의심의 여지 없이 확실할 때만 해야 했다. 그런데 듣는 사람마다 다르게 들리는 음성을 자신들 몇 사람이 들리는 대로 단정하고 자막을 씌웠다. 굳이 윤 대통령이 나서지 않더라도 우리 사회가 따로 짚어야 할 문제임에 분명하다.

영국ㆍ미국ㆍ캐나다 순방을 마치고 귀국한 윤석열 대통령이 9월26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로 출근하며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보도 책임 묻기에 앞서 사과부터 했어야

그럼에도 윤 대통령은 보도의 책임을 묻기에 앞서 자신의 비속어에 대한 사과부터 했어야 했다. 그 대상이 바이든이든 야당이든, 공식 행사가 끝났든 아니든, 사람들에게 둘러싸인 대통령의 입에서 야당을 가리켜 '이 XX들'이라는 욕이 나오는 장면은 국민들로서는 거북하고 낯이 뜨거워지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바이든'이 억울하고 화가 난다 해도, 일단은 자신의 불찰에 대해 인정하고 고개 숙이는 모습을 보여야 그다음 얘기들이 귀에 들어올 수 있는 것이었다.

상식적으로 납득이 되지 않는 것은 윤 대통령이 '이 XX들'이라는 말을 했는지 여부에 대해 자신과 대통령실의 누구도 이제까지 시인도 부인도 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해하기 어려운 말들만 이어진다.

"이 XX에 대한 입장은 밝히지 않겠다."(대통령실 관계자), "심각성을 가진 것은 비속어 논란이 아니다."(대통령실 이재명 부대변인) 혹여 대통령 본인이 뭐라고 말했는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러면 그런 대로 국민들의 염려에 대해 성실하게 소명할 책임이 있었다.

이번 비속어 논란을 우발적인 일회성 사건으로만 넘기기에는 윤 대통령과 대통령실의 문제가 민낯으로 드러났다. 그것은 '무능'과 '고집'이라는 두 개의 키워드로 요약된다. 먼저 이번 발언 논란에 대통령실이 대처하는 모습은 이해가 불가능할 정도로 부실투성이였다. 국내는 물론 해외 언론에서까지 뜨거운 논란거리가 되었는데도, 15시간 만에야 대통령실의 공식 브리핑이 있었다. 그 자리에서도 '바이든'이 아니라 '날리면'이라는 설명만 있었을 뿐, 비속어에 대해서는 가부간 분명한 설명을 하지 않았다.

대통령실의 그런 모호한 태도를 낳은 배경에는 대통령의 고집이 자리하고 있음을 읽을 수 있다. 대통령의 사과를 기다리던 사람들 앞에서 보도의 책임만 추궁하는 윤 대통령의 모습에서는, "뭐, 민주당 정부 때는 안 했습니까?"라고 반문하던 이전의 모습을 떠올리게 된다. 한동안 몸을 낮추는 것 같더니, 다시 고집 센 모습으로 돌아가버린 대통령을 보게 된 느낌이다. 자신이 말하지도 않은 '바이든'으로 보도가 나간 것이 아무리 분한들, 나라를 대표하는 대통령이 그런 비속어를 사용한 것이 잘못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그럼에도 한사코 사과를 피하고 방송사의 책임만 묻는 것은 오기가 낳은 고집에 다름 아니다.

대통령도 사람인데, 그의 입에서 우발적으로 비속어가 나온 일이 일주일이 넘도록 온 나라가 떠들썩할 일은 아니다. 부적절했다며, 앞으로 조심하겠다고 하면 되는 일이었다. 진짜로 심각한 것은 발언 자체보다도, 논란에 대처하는 대통령과 대통령실의 안이한 모습이었다. 보도 직후에 윤 대통령이 자신의 발언을 정확히 설명하고 잘못된 부분에 대해서는 몸을 낮췄다면 논란이 이토록 커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물론 정치적 효과를 노린 야당의 총공세가 여론을 자극한 면도 있지만, 대통령과 대통령실의 무능하고 고집스러운 대처가 논란을 장기화시키는 데 한몫한 것도 사실이다.

대통령 주변에 심기 경호하는 사람들만 가득 차

지난여름 지지율 추락 상황을 맞았던 윤 대통령이 "제가 해야 할 일은 국민들의 뜻을 세심하게 살피고 국민 뜻을 잘 받드는 것"이라며 한껏 몸을 낮춘 지 아직 두 달도 지나지 않았다. 이제는 민심을 제대로 읽고 받드는 모습으로 바뀌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있었건만, 다시 보게 된 것은 자신의 고집을 앞세우는 불통의 리더십이다. 대통령의 고집이 더욱 도드라지게 비춰지는 것은, 그를 설득하고 사태를 연착륙시킬 사람들이 주변에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대통령의 비속어가 국민적 관심사가 되었는데도 계속된 대통령과 대통령실의 침묵은 그런 우려를 방증한다. 대통령의 기에 눌리지 말고 대통령에게 민심을 전하며 고언을 하는 사람이 주변에 많이 있어야 좋은 대통령이 만들어진다. 대통령의 눈치를 살피며 심기 경호를 하는 사람들만 가득 차서는 대통령의 실패가 예고됨을 지난 정권들의 경험은 말해 주고 있다.

물론 야당의 강경파 지도부가 이끄는 과도한 정치공세에 윤 대통령이 갖고 있을 반감을 이해 못 하는 바는 아니다. 지금 같은 강경 일색의 야당과 협치하라는 주문도 비현실적인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대통령은 그런 야당이 아니라 국민을 상대로 국정을 운영해 나가야 한다. 야당이 아무리 증오의 정치에 매달려도, 같이 화내며 '눈에는 눈, 이에는 이'로 대응하는 것은 국민 전체를 껴안고 가야 할 대통령의 길은 아니다.

많은 사람이 대통령의 위기를 말한다. 또 한 사람의 '실패한 대통령'으로 기록되지 않으려면 많은 것을 바꾸며 다시 시작해야 한다. 자신의 고집을 앞세우지 말고 민심을 경청할 것이며, 말 잘 듣는 사람보다 쓴소리하는 사람을 가까이해야 한다. 윤석열 정부가 이루려는 것이 대체 무엇인지, 국민이 이해할 수 있도록 국정 어젠다를 명확히 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과거의 흘러간 인물들이 아니라 미래를 내다보는 진영 밖 인재들을 찾아 손을 내밀어야 한다.

부지불식간에 비속어가 튀어나오는 검찰 시절의 말 습관을 아직도 고치지 못했다면 달라지려는 의지가 그만큼 절박하지 못했다는 얘기가 된다. 이제까지 그랬듯이 그냥 하던 대로 익숙하고 편한 길에 갇힌다면 달라질 것은 없다. 윤 대통령은 과연 달라질 수 있을까. 비속어 자체는 가벼운 것이었을지 모르지만, 그로 인해 펼쳐진 광경들은 결코 가벼울 수 없는 질문을 던지게 한다.

※ 외부필자의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유창선 시사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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