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트체크K] 쌀 매입 의무화하면 생산 오히려 늘어난다? 아니다?

임주현 2022. 10. 2. 10:00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민주당이 단독 상정한 양곡관리법 개정안이 시행되면 (오히려) 벼 재배면적이 증가하고 공급과잉 구조가 심화할 것이다."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의원 일동 성명(2022.09.26.)

"양곡관리법을 개정하면 쌀 농가와 재배면적이 증가해 쌀 공급이 늘어난다는 정부·여당의 주장은 명백한 허구다."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의원 일동 성명(2022.09.27.)

여야가 하루 차이를 두고 설전을 벌였습니다. '쌀 시장격리(매입)'를 의무화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양곡관리법 개정안을 둘러싸고 상반된 성명을 내놓은 겁니다. 국민의힘이 법안이 통과되면 쌀 공급이 늘어나 쌀값 폭락을 더 부추길 것이라고 주장하자 더불어민주당이 명백한 허구라며 맞받아쳤습니다.

민주당은 쌀 시장격리를 시장에 쌀이 넘쳐날 때 정부 판단에 따라 임의로 실시할 게 아니라 의무적으로 실시하도록 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당론으로 추진하는 민주당 주요 민생 입법 과제 중 하나입니다.

쌀은 우리나라의 주곡(主穀)일 뿐 아니라 식량안보·전략작물이기도 합니다. 또 물가에 미치는 영향도 큽니다. 때문에 여야 할 것 없이 벼농사와 쌀 가격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방안이 필요하다는 데에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습니다.

하지만 그 방안으로 제시된 '정부의 쌀 시장격리 의무화'에 대해서는 시각 차가 커서 정부·여당은 난색을 표하고 있습니다. 결국, 개정안은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안건조정위원회로 넘겨져 최대 90일 동안 추가 논의를 거치게 됐습니다.

핵심 쟁점은 성명에서처럼 시장격리 의무화가 오히려 공급을 더 늘리고 시장을 망칠 것이냐, 아니냐입니다. 시장격리가 공급을 더 늘릴 것이라는 정부 ·여당의 주장과 그 주장이 '허구'라는 민주당의 주장 중 어느 쪽이 사실에 부합한지 따져봤습니다.

■ '양곡관리법 개정안' 무엇을 담았나?

쌀 시장격리란 공급 과잉으로 쌀값이 폭락하거나 폭락할 조짐이 보일 때 정부가 초과 생산된 쌀을 사들여 쌀값 안정을 도모하는 수단입니다. 생산량이 예상 생산량의 3% 이상 초과했거나 수확기(10~12월) 가격이 평년 가격보다 5% 이상 하락한 경우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판단에 따라 초과 생산량 또는 예상 생산량 범위 안에서 매입할 수 있습니다.

다만 현행법에 따르면 정부가 쌀 수급 상황을 봐가며 매입 여부를 결정하기 때문에 해마다 반드시 해야 하는 건 아닙니다. 매입 시기도 유동적입니다.

민주당은 매년 의무적으로 쌀 수확기에 시장가로 매입하는 쪽으로 법을 개정하려 합니다. 매번 정부 판단에 따라 수매 여부가 결정되면 적절한 수매 시기를 놓칠 수 있고 가격 변동성이 커져 정책 효과가 떨어진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농민단체가 줄곧 주장해온 내용이기도 합니다.

현행법 조항과 개정안 조항 비교


■ 양측 주장 근거 살펴보니

국민의힘은 지난달 26일 성명에서 쌀 매입이 의무화되면 오히려 쌀 생산량이 늘어날 것이라고 주장하면서도 명시적 근거는 제시하지 않았습니다.

여당이 우려하는 건 정부가 매년 초과 생산된 쌀을 매입하게 되면 농민이 느끼는 쌀값 폭락에 대한 리스크가 줄어 오히려 벼농사를 더 짓도록 부추길 수 있다는 점입니다. 매년 1조 원에 가까운 비용이 소요될 것으로 보고 있는데 주무 부처인 농식품부도 같은 입장입니다.

반면 민주당은 27일 성명에서 "지난 20년간 농가 수와 쌀 재배면적이 꾸준히 감소했다"는 점을 들어 정부·여당의 주장이 "허구"라고 반박했습니다.

실제로 관련 자료를 찾아보면 민주당 측 주장대로 농가 수와 쌀 재배면적이 꾸준히 줄었습니다. 등락을 거듭하긴 했지만 쌀 생산량도 감소 추세가 맞습니다.



민주당은 저출산·고령화와 농민 감소 추세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기에 정부가 매년 쌀 시장격리를 해도 정부·여당의 우려처럼 되레 공급이 늘어나지는 않을 것이란 입장입니다.

■ 같은 지표 바라보는 다른 시각…"감소 폭 둔화가 문제"

농식품부도 당연히 이런 추세를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해석은 민주당과는 전혀 다릅니다. 농식품부가 주목하는 건 쌀 재배 면적 감소 폭이 줄어들고 있다는 점입니다.

"최근 몇 년간 쌀 재배면적 감소 폭이 많이 줄었어요. 저희가 우려하는 건 이렇게 감소 폭이 줄어든 상황에서 쌀 시장격리 의무화까지 하면 농업인들 입장에선 판로 걱정이 많이 줄어드니까 결국 쌀 농사를 더 많이 짓지 않을까, 그런 예상을 하는 겁니다."
-변상문 농림축산식품부 식량정책과장

관련 데이터를 살펴보면 지난 20년(2002~2021) 동안 두 차례를 제외하곤 매년 10,000~30,000ha씩 줄던 쌀 재배면적이 최근 3년(2019~2021)동안에는 잇달아 3,000~7,000ha 수준으로 줄었습니다.

재배면적과 생산량 추이를 전년 대비 증감률로 따져보면 감소 폭 둔화가 확연히 드러납니다. 재배면적은 2017년 이후 감소 폭이 크게 줄었고 지난해에는 오히려 증가(전년 대비 0.8%)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쌀 생산량도 지난해엔 증가세로 돌아서서 전년보다 10.7% 늘었습니다.


재배면적 감소 폭이 둔화하는 이유는 기후, 쌀 수급 상황, 경제 상황, 정부 정책 등 여러 가지 요인이 얽혀있어 명확하게 분석하긴 힘든 측면이 있습니다.

농식품부는 일단 농촌 인구가 고령화하고 있음에도 기계화율(2020년 기준 98.6%)이 높아진 덕에 고령의 농민이 벼농사를 선호하는 데다 벼 대신 다른 작물을 키우다가 다시 벼농사로 돌아오는 농민이 많은 데 따른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특히 지난해 재배면적과 생산량 모두 늘어난 건 민주당이 2018년부터 2020년까지 3년간 한시적으로 시행한 타 작물 재배지원 사업이 종료된 데 따른 것으로 분석됩니다.

당시 여당이었던 민주당은 연이은 흉년으로 쌀값이 대폭 떨어진 데다 정부 재고량이 크게 늘어 쌀값 안정을 위해 타 작물로 옮겨가는 농가에 보조금을 지급했습니다. 하지만 사업 종료 후 상당수 농가가 벼농사로 회귀해 실효성이 없는 정책이었다는 비판을 받은 바 있습니다. 민주당은 이번 개정안에 타 작물 재배지원 안을 다시 담았습니다.

그래서 통계치 이면의 숨은 맥락을 함께 살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쌀 재배면적 감소 폭 둔화를 간과해선 안 된다는 겁니다.

"줄어드는 속도가 문제입니다. 이를테면 시장격리를 의무화하거나 하는 등의 제도적인 요인으로 감소 폭이 줄어들 수 있다는 거죠. 국내 쌀 소비가 연간 최소한 2% 이상씩 줄고 있는 상황에서 쌀 재배면적 감소 폭이 계속 줄어든다면 문제가 될 수도 있습니다."
-김종인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연구위원

쌀 재배면적이 본격적인 증가세에 들어선 건 아니지만 쌀 소비가 빠르게 줄어드는 상황에서 쌀 재배면적을 충분히 줄이지 못하면 결국 생산량이 소비량을 더욱 앞지르게 될 것으로 우려됩니다. 최근 몇 년간 관찰된 쌀 재배면적 감소 폭 둔화를 결코 가볍게 여겨선 안 된다는 설명입니다.

■ 판정: 양측 주장 모두 명시적 근거 없어 '판단 보류'

그렇다고 해서 정부·여당의 주장이 맞다고 할 수도 없습니다.

공식적인 통계에 따르면 어찌 됐든 지속적으로 농가 수와 재배면적, 생산량이 모두 줄어드는 추세이고 지난해 재배면적과 생산량 모두 반등하긴 했지만 이 같은 경향이 앞으로도 계속해 이어질지까지는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여야는 쌀 매입 의무화가 생산량에 미치는 영향을 가늠해볼 수 있는 근거를 지금으로서는 명확히 제시하지 못하고 있기에 어느 주장이 맞다고 단언할 수가 없습니다. 쌀 시장격리가 생산량에 미치는 영향을 조사한 연구도 찾아보기 힘들지만 지금 논쟁이 되고 있는 '쌀 매입 의무화'는 시행도 하기 전이어서 더더욱 그러합니다.

쌀 매입 의무화가 생산량에 미칠 영향을 두고 온도 차가 다를 수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기본적으로 농업 인력이 계속 감소하고 있고 고령화되고 있기 때문에 쌀 매입 의무화가 지금 정부·여당이 우려하는 만큼 과잉생산을 유발할 거라고 보진 않습니다. 기후 요인이 훨씬 크다고 봅니다."
-김호 단국대 환경자원경제학과 교수 (농업 정책 전문가)

"사실 양당 모두 타 작물 재배 유도 같은 정책에는 뜻이 다 같다고 보거든요. 그건 이번 민주당 개정안에도 담긴 내용이에요. 그런데 국민의힘이 그걸 인정하지 않고 시장격리 의무화가 되면 농사를 많이 짓는다는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하는 것은 파렴치한 행위라고 생각합니다."
-엄청나 전국쌀생산자협회 정책위원장

"재배면적이 쌀 소비가 감소하는 정도에 부응해서 줄어들고 있느냐가 핵심인데, 시장격리가 의무화돼도 재배면적이 늘지 않는다라고 단언하기는 어려울 겁니다. "
-김종인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연구위원

팩트체크K는 이런 점들을 고려해 '쌀 매입이 의무화되면 되레 생산이 늘어난다'라거나 '그렇지 않다'는 양측 주장에 대한 판정을 보류합니다. 향후 관련 데이터가 축적되고 더욱 면밀한 연구·분석이 이뤄진다면 더 명확해질 것으로 봅니다.

■ 매입보다 중요한 건 생산량·소비량 조절

쌀 수급 조절이 어려운 건 워낙 변수가 많아서이기도 하지만 근본적으로 소비가 급격히 줄고 있는 상황에서 공급과잉이 구조적으로 고착화 돼 있기 때문입니다.

가령 2011년 국민 1인당 쌀 소비량은 71.2kg이었는데 2021년엔 56.9kg으로 20% 감소했습니다. 그런데 같은 기간 쌀 재배면적은 14%, 생산량은 8% 감소에 그쳤습니다. 소비량이 20% 줄었다고 해서 반드시 재배면적과 생산량도 20% 줄어야 한다는 논리는 아니지만, 전문가들은 식습관 서구화로 빠르게 줄어드는 쌀 소비에 비해 생산·공급량이 충분히 줄어들지 않고 있다고 말합니다. 우리나라 쌀 소비 감소 속도가 다른 나라와 견줘 유독 빠르다는 한국농촌경제연구원 분석도 있습니다.

여기에 더해 해외로부터의 쌀 수입도 부담이 되고 있습니다. 세계무역기구(WTO)와의 협상에 따라 매년 우리나라가 의무적으로 수입해야 하는 외국 쌀만 41만 톤에 육박하기 때문입니다.정부가 최근 시장격리하기로 한 물량이 수확기 역대 최대인 45만 톤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매년 41만 톤에 달하는 의무 수입량은 큰 부담입니다. 이런 이유로 매년 20만 톤 넘는 쌀이 '구조적인 과잉상태'가 될 것이란 분석도 나옵니다.

그래서 전문가들은 이참에 장기적이고도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농민들이 바라는 것도 정부 방침에 따라 매년 바뀌는 '땜질식 처방'이 아닌 '근본적인 해결책'입니다.

"우리가 식량안보, 식량 자급 얘기하잖아요? 쌀은 필수적이거든요. 쌀이 무너지면 다른 걸 대체할 수 있는 게 없어요. 그래서 생산 주체가 안정적으로 농사를 짓도록 하는 정책이 있어야 하고 정부가 수급을 정확하게 예측해서 시장 가격의 변동을 줄여야죠. 그게 생산자, 소비자 모두가 원하는 겁니다."
-김호 단국대 환경자원경제학과 교수 (농업 정책 전문가)

"쌀 수요에 따른 공급 총량이 조절되는 구조가 되어야 합니다. 공급 측면을 중시하는 지금의 쌀 수급 정책 기조는 조금 바뀌어야 하고요. 쌀 생산자가 중심이 된 소비 진작 활동이 지금보다 활발해질 필요도 있습니다."
-김종인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연구위원

"우리 쌀 재배 농가들이 자발적으로 타 작물로 갈 수 있는 생산 대책이나 소득 안정책을 마련한다든가 하는 긍정적 유인책이 필요해요. 쌀 가격의 변동 폭이 심하면 농민들이 벼농사를 포기할 수밖에 없고 그러면 식량 주권이 위태로워질 수도 있거든요. 이건 정말 정쟁의 소재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엄청나 전국쌀생산자협회 정책위원장

※ 취재지원:강혜림 SNU팩트체크센터 인턴기자 kangnews.hi@gmail.com
인포그래픽:권세라

임주현 기자 (leg@kbs.co.kr)

Copyright © KBS.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