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립금리라는 아슬아슬한 줄타기

김학균 입력 2022. 10. 2. 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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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가 어려운 당신에게] 금리가 오르는 긴축 이후에는 심각한 경기후퇴나 금융위기가 발생하곤 했다. 인플레이션과 과잉 부채에 노출된 상황에서 금리는 어떤 방향으로, 얼마나 움직일까?

금리는 돈을 빌리고 빌려주는 과정, 즉 금전대차 거래에 수반되는 개념입니다. 돈을 빌리는 입장에서는 서로 합의한 금리에 근거해 이자를 내고, 돈을 빌려주는 이는 이자를 받습니다. 자금대차 거래에는 만기가 존재합니다. 돈을 빌려준 사람은 언젠가는 원금을 돌려받아야 하기에 돈을 빌려준 날부터 자금을 회수하는 날까지의 기간을 만기라고 부릅니다.

정부도 시장에서 돈을 빌립니다. 한국 정부의 경우 통상 1년, 2년, 5년, 10년, 20년, 30년, 50년 만기로 돈을 빌립니다. 각각의 만기에 적용되는 금리는 모두 다릅니다. 직관적으로 보면 만기가 긴 금전대차 거래에 적용되는 금리가 만기가 짧은 거래에 적용되는 금리보다 높아야 합니다. 돈을 빌려주는 입장에서는 만기가 긴 거래에 오랫동안 돈이 묶이게 되고, 혹시라도 돈을 빌려가는 경제주체의 신용도 등에 문제가 생길 가능성도 고려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은행과 거래할 때 입출금이 자유로운 수시 입출금 통장보다 자금을 길게 예치해야 할 정기예금 등에서 높은 이자를 받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 장단기금리 역전의 의미는?

18년 동안 재임한 앨런 그린스펀 전 연방준비제도 의장. ⓒREUTERS

장단기금리 역전은 단기금리가 장기금리보다 높아지는 현상을 지칭합니다. 앞서 살펴본 것처럼 자연스러운 일이 아닙니다. 9월12일 기준 미국의 2년 만기 국채금리는 3.57%인데, 10년 만기 국채금리는 3.36%로 장단기금리가 역전돼 있습니다.

장단기금리 역전 현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단기금리와 장기금리의 결정 메커니즘을 이해해야 합니다. 지난 호에서 중앙은행이 결정하는 기준금리에 대해 살펴봤습니다. 기준금리는 모든 금리의 기본이라고 말씀드렸는데요, 그렇다고 해서 중앙은행이 결정하는 기준금리가 전가의 보도는 아닙니다. 기준금리는 중앙은행가들이 결정하는데, 중앙은행가들의 임기는 유한합니다. 한국은행 총재와 미국 연방준비제도 의장의 임기는 4년에 불과합니다. 앨런 그린스펀은 연방준비제도 의장을 18년 동안이나 재임했지만, 재닛 옐런은 4년의 임기만 마치고 교체됐습니다. 한국은행 역시 연임에 성공해 8년 동안 총재로 일했던 인사는 이주열 전임 총재가 유일합니다.

8년간 재임한 이주열 전 한국은행 총재. ⓒ공동취재

임기가 유한한 중앙은행가들이 책임질 수 있는 금리는 만기가 짧은 단기금리입니다. 복잡해서 이 글에서 자세히 설명할 수는 없으나, 한국은행이 결정하는 기준금리는 만기가 7일인 환매조건부채권 금리이고, 미국의 기준금리는 만기가 하루인 연방기금금리입니다. 중앙은행이 만기가 짧은 단기금리를 결정하면 그 외 금리는 기준금리를 반영해서 움직이지만, 만기가 긴 장기금리는 중앙은행이 결정한 기준금리에 채권시장 참여자들의 집단지성이 더해져 결정됩니다. 장기금리가 중앙은행이 정하는 기준금리와 무관하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중앙은행의 통제력이 강한 단기금리보다는 상대적으로 높은 자율성을 가지고 있다고 이해하시면 될 듯합니다.

중앙은행가들은 인플레이션이 발생할 때 기준금리를 올립니다. 요즘 우리가 보고 있는 사실 그대로이지요. 통상적인 경우 인플레이션은 국가경제가 장기적으로 지속 가능한 수준보다 더 많은 경제적 자원을 사용할 때 현실화됩니다. 기준금리를 인상시키는 긴축은 경제의 과열을 억제해 물가안정을 도모하기 위한 목적으로 실시됩니다. 기준금리의 직접적 영향력하에 있는 단기금리의 상승은 경제에 과열이 있다는 신호로 해석하면 됩니다.

반면 장기금리는 그 나라 경제의 장기적인 성장성을 반영해 결정됩니다. 경제의 장기 성장 전망이 밝다면 경제주체들은 돈을 빌려서라도 투자하려 할 것입니다. 돈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면 돈의 가치인 금리가 상승하게 됩니다. 반대로 경제에 회의론이 크면 돈에 대한 수요가 줄어들면서 금리가 하락하게 됩니다.

이 정도에서 장단기금리 역전 현상을 해석해보겠습니다. 경제가 과열돼 나타나는 인플레이션의 산물이 단기금리 상승입니다. 반면 장기 성장에 대한 경제주체들의 자신감이 약할 때 장기금리는 단기금리를 밑돌게 됩니다. 당연히 바람직한 현상이 아닙니다. 그래서 장단기금리 역전은 경기침체의 전조로 해석되곤 합니다.

■ 긴축 이후 뒤따라오곤 했던 경기침체와 중립금리

2000년대 중반의 긴축 직후 미국 주택시장 붕괴와 리먼브라더스 파산이 뒤따랐다. ⓒAFP PHOTO

중앙은행이 기준금리를 올리는 긴축정책은 경기후퇴를 예비하고 있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금리를 올려 경제의 과잉 수요를 억제함으로써 물가안정을 도모하는 정책이 긴축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중앙은행의 긴축, 특히 글로벌 경제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미국 연방준비제도의 금리인상 이후에는 심각한 경기후퇴, 혹은 금융위기가 발생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1980년대 초 연방준비제도의 급격한 기준금리 인상(9.5→20.0%)은 1970년대에 만연됐던 하이퍼인플레이션에 종지부를 찍었지만, 심각한 경기후퇴와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의 외환위기를 불러오기도 했습니다. 당시 경기가 급격히 하강해 워싱턴의 연방준비제도 본부 건물로 미국 농부들이 트랙터를 몰고 와 시위를 벌였고, 미국 금리의 급격한 상승이 가져온 달러화 강세는 달러 부채를 많이 지고 있었던 멕시코·브라질 등의 외환위기로 비화됐습니다.

1980년대 후반의 금리인상(5.88→9.75%)은 미국판 저축은행인 주택대부조합(S&L)의 연쇄파산으로 이어졌고, 1990년대 중반의 긴축(3.0→6.0%)은 멕시코를 시작으로 타이와 한국을 거쳐 러시아까지 이어진 신흥국 연쇄 부도의 단초로 작용했습니다. 1990년대 후반의 긴축(4.75→6.0%)은 IT 버블 붕괴를 불러왔고, 2000년대 중반의 긴축(1.0→5.25%) 직후에는 미국 주택시장의 붕괴와 리먼브라더스 파산으로 상징되는 글로벌 금융위기가 뒤따라온 바 있습니다.

이번에도 미국이 공격적으로 금리를 올리고 있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경기침체는 불가피할 것으로 보입니다. 긴축 이후의 경기침체는 매우 높은 확률로 현실화됐지만, 이를 중앙은행이 의도한 결과로 봐서는 곤란합니다. 중앙은행이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금리를 올리다 보니 취약한 분야에서 사고가 터졌다고 보는 편이 더 진실에 가까울 겁니다.

그래서 중앙은행가들은 ‘중립금리(neutral rate)’를 찾기 위해 노력합니다. 중립금리는 인플레이션을 적절히 제어하면서도, 심각한 경기후퇴를 불러오지 않는 이상적인 금리 수준을 의미합니다. 문제는 어느 수준이 중립금리인지 사전적으로 알 수 없다는 데 있습니다. 이와 관련해 현재 연방준비제도 의장을 맡은 제롬 파월의 올해 초 발언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습니다. “연방준비제도의 통화정책은 장기 중립금리를 지향하지만, 그 수준을 우리가 선험적으로 알 수는 없다. 금리를 조정하는 가운데 나타나는 실물경제의 움직임, 주식시장을 비롯한 금융시장의 반응 등을 보면서 사후적으로 추론할 수 있을 따름이다.”

그렇습니다. 중립금리는 현실에 고정된 진리값으로 존재하는 금리가 아니라 시행착오를 통해 가늠할 수 있는 이상적인 금리 수준입니다. 과거 미국의 긴축 이후 심각한 위기가 뒤따랐다는 점을 감안하면 중앙은행가들도 적절한 중립금리 수준을 설정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는 평가가 가능할 것 같습니다. 물론 중앙은행가들도 할 말은 있을 겁니다. ‘심각한 위기는 경제에 내재돼 있었던 모순에서 비롯된 것이고, 중앙은행의 금리인상은 위기 발생의 방아쇠 역할을 했을 뿐’이라고요. 위기 발생의 정확한 인과관계는 논란거리로 남겨두더라도, 아무튼 큰 위기는 금리인상 이후에 닥쳐왔다는 점은 꼭 기억해야 합니다.

■ 금리는 얼마나 오를까? 높아진 금리를 어떻게 활용할까?

8월25일 서울의 한 은행 앞에 대출상품 금리 안내 현수막이 걸려 있다. ⓒ연합뉴스

앞서 언급한 중립금리라는 개념을 통해 향후 금리에 대한 의견을 말씀드릴까 합니다. 전통적인 중앙은행의 임무인 인플레이션 억제만을 목적으로 한다면 앞으로도 금리가 많이 올라야 할 것입니다. 지난 7월과 8월 미국과 한국의 소비자물가지수 상승률은 둔화되고 있지만, 그래도 중앙은행이 적절한 물가상승률로 생각해왔던 연 2%보다는 훨씬 높습니다. 금리를 더 많이 올려야 인플레이션을 잡을 수 있을 겁니다.

그렇지만 중립금리는 인플레이션 억제뿐만 아니라 경기의 심각한 후퇴도 초래하지 않아야 합니다. 일정 정도의 경기후퇴는 불가피하다고 보지만, 그 형태가 연착륙일지, 경착륙일지는 예단하기 힘듭니다.

오히려 걱정이 되는 점은 글로벌 경제가 과거에 경험해보지 못했던 ‘과잉 부채’라는 상황에 노출돼 있다는 사실입니다. 부채가 크게 누적된 상황에서의 금리 상승은 경제에 독(毒)입니다. 한국은 민간부채가 심각하고, 미국은 공공부채가 급증했고, 일본은 민간과 공공부채가 모두 문제입니다. 부채 문제가 심각한 상황에서 중립금리 수준은 오직 인플레이션만이 문제일 때보다 한 단계 낮아져야 하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또한 최근 인플레이션은 중앙은행의 금리인상으로 억제하기 힘든 측면도 있습니다. 경제의 과잉 수요에서 오는 물가상승은 중앙은행의 긴축으로 제어할 수 있지만, 요즘과 같은 전쟁이나 글로벌 생산기지 재편 과정에서 수반되는 물가상승은 중앙은행이 통제할 수 없습니다. 중앙은행은 금년 말까지는 기준금리를 인상하겠지만, 금리인상 기조가 내년까지 이어질 것 같지는 않습니다. 올해 4분기에 보게 되는 금리 수준에서 금리가 더 많이 올라가지는 않으리라 전망합니다.

다만 금리가 쉽게 떨어지지도 않을 것 같습니다. 원인이야 뭐든 인플레이션이 지속되면 자금 대여자는 낮은 금리로 돈을 빌려주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돈의 가치가 떨어지는 인플레이션 국면에서는 돈으로 이자를 수취하는 자금대차 거래보다 실물자산에 투자하는 게 더 유리하기 때문에 돈을 빌려주는 입장에서는 더 높은 이자를 요구하는 게 합당하기 때문입니다.

결론적으로 금리는 올해 4분기의 고점 수준에서 많이 올라갈 것 같지는 않지만, 최근 10년래 가장 높은 요즘의 고금리 수준에서 쉽게 떨어지지도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올해 4분기 즈음에 확정금리를 주는 정기예금 등 금융상품 가입이 유리해 보이고, 은행들이 자금조달을 위해 사용하는 신종자본증권 등에 대한 투자도 고려해볼 만합니다. 신종자본증권은 확정이자를 받을 수 있는 상품이지만, 투자금을 5년 정도 묶어놔야 하고, 예금과는 달리 예금자보호가 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당연히 은행권 예금보다는 금리가 높기 때문에 요즘과 같은 시기에는 고려해볼 만한 상품입니다.

김학균 (신영증권 리서치센터장)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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