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양시설이 나을까 집이 나을까?

김현철 2022. 10. 2. 0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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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철의 '삶이 묻고 경제학이 답하다'] 노인에게 가장 좋은 방법은 집에서 충분한 돌봄을 받는 것이다. 하지만 국가의 재가 서비스 지원은 현재 하루 4시간으로 제한되어 있다. 정부는 어떻게 해야 할까?
2008년 노인장기요양보험 도입 이후 요양시설은 2008년 1332개에서 2021년 4057개로 늘었다. ⓒ연합뉴스

거의 20년 전 일입니다. 2004년 여름 저는 충남 아산시 보건소에서 공중보건의사로 일하고 있었습니다. 제가 맡은 일 중 하나가 방문 진료였습니다. 거동이 불편한 분들의 집으로 찾아가 진료하는 일이죠. 지금까지도 기억나는 환자 두 분이 있습니다. 중풍으로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60대 여성인데 고혈압 환자였습니다. 대소변 관리가 잘 되지 않아, 대변이 방바닥에 많이 묻어 있었습니다. 집으로 들어갈 때 신발을 정말 벗어야 하나 잠시 망설였던 기억이 납니다. 함께 사는 아들은 어머니를 제대로 돌보지 않았습니다.

또 다른 환자는 임신성 고혈압으로 인한 뇌출혈로 생긴 전신마비 환자였습니다. 기적적으로 엄마와 아이는 살았고, 남편과 시어머니가 아이들을 키우며, 지극정성으로 그녀를 돌보았습니다. 이 가족의 이야기는 2004년 KBS 〈인간극장〉에서 ‘사랑한다, 더 많이 사랑한다’라는 제목으로 방영되었습니다. 하지만 경제활동과 돌봄 사이의 외줄타기가 이어졌습니다. 가족이 적극적으로 생계 활동을 이어가자니 돌봄이 부족해지고, 적극적으로 간병을 하자니 정상적인 경제활동을 할 수 없게 되는 진퇴양난에 빠지는 것이죠.

당시 이분들에게 제공되는 국가의 돌봄은 사실상 없었습니다. 그때 저는 환자 모두 어떻게든 요양시설에 보내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첫 번째 할머니는 사실상 방치되고 있었고, 두 번째 가족은 간병 부담으로 인해 가족들의 ‘삶의 질’이 말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무엇이 맞는 결정인지 확신이 서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이분들과의 만남은 제가 보건·복지·돌봄 제도를 다루는 경제학자가 되기로 결심하는 중요한 이유가 되기도 했습니다.

간병으로 인한 사회문제가 심각해지자 우리나라는 2008년 노인장기요양보험(장기요양보험)을 도입했습니다. 이는 국민연금, 건강보험, 고용보험, 산재보험과 더불어 국가가 국민에게 가입을 강제하는 다섯 번째 사회보험입니다. 장기간 돌봄이 필요한 상황이 누구에게나 올 수 있지만, 개개인이 이를 위해 미리 간병에 필요한 비용을 준비하는 것이 어려우니 국가가 (가입을 강제하는) 사회보험의 형태로 나선 것입니다.

집에서 지내고 싶어도 요양원 선택하는 현실

장기요양보험은 65세 이상 노인(혹은 65세 미만이라도 치매·중풍 등 노인성 질환을 가진 사람)이 6개월 이상 돌봄이 필요한 상황이 되면 인정조사 과정을 통해 장기요양인정점수를 산출하여 요양 등급을 결정합니다. 이를 기반으로 다양한 돌봄 서비스를 제공합니다. 〈그림 1〉과 같이 요양 등급은 총 6개로 나뉩니다. 장기요양인정점수가 95점 이상인 분들은 일상생활을 다른 사람에게 전적으로 의지하는(거의 침대에 누워서 생활하는) 분들로 1등급을 받습니다. 인정점수 75점 이상 95점 미만이면 2등급, 60점 이상 75점 미만이면 3등급 이런 순서입니다. 1~2등급은 요양원을 이용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지며, 3~4등급은 집에 요양보호사가 찾아오는 재가 서비스만 이용 가능합니다.

그런데 장기요양보험은 아무래도 한정된 자원으로 운영하다 보니 노인이 집에서 지내기에 충분한 돌봄을 제공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가령 1~2등급을 받은 분들의 재가 서비스 월 한도액이 각 167만원, 149만원 정도입니다. 이는 하루 최대 4시간 정도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수준입니다(이 중 15%는 본인부담금으로 지불합니다). 하지만 이분들은 사실상 24시간 돌봄이 필요한 상황입니다. 보건복지부의 2019 장기요양 실태조사에 따르면 조사 인원 중 47%가 재가 서비스 시간이 부족하다고 느끼고 있었습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1~2등급을 받으신 분들 중에 집에서 지내고 싶지만 ‘요양원’을 선택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요양원은 하루 6만~6만5000원의 20%만 부담하면(월 약 40만원) 24시간 돌봄을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요양보호사가 노인들 여러 명을 돌보는 형태로, 추가 비용을 지불하지 않는다면 보통 노인 3~4명 이상이 한 방에서 공동생활을 합니다. 개인이 부담하는 비용은 비보험인 식비 및 이미용 비용 등을 포함해 대략 월 65만~80만원 정도입니다.

3~4등급인 경우는 최대 3시간 정도 재가 서비스가 가능합니다. 이분들은 특별한 사유가 아니고는 요양원에 갈 수도 없습니다. 결국 가족이 경제활동을 하려면 보험 혜택이 없는 추가적인 간병비가 들어가니 이러한 틈을 ‘요양병원’이 채우고 있습니다. 등급 외 판정을 받았거나, 3~5등급을 받았으나 돌봄의 필요가 여전한 경우, 차선책으로 요양병원을 찾는 경우가 많습니다. 요양병원은 원칙상으로는 질병 치료나 재활을 목표로 합니다(그래서 건강보험에 의해 비용이 보조됩니다). 그러나 요양원처럼 입원을 위한 특별한 조건이 있는 것이 아니라서 ‘꿩 대신 닭’처럼 요양병원에 입원하곤 합니다.

요양병원의 병실당 평균 병상은 6~7개로 역시 단체생활입니다. 요양병원의 입원비는 4~6인실의 경우 입원료는 약 40만~50만원(1~2인실의 경우 비용이 크게 상승)이나 간병비 부담이 큽니다. 6인실에 간병인 한 명을 두는 경우 월 60만원, 간병인 두 명을 둔다면 월 120만원이 추가로 듭니다. 가령 고관절 수술 등을 했거나 해서 간병 부담이 큰 경우 개인 간병인을 두게 되는데, 이때 간병 비용은 최소 월 300만원입니다.

이제 현실에 대해 어느 정도 이해했으니 오늘의 주제를 본격적으로 논의해보겠습니다. 바로 ‘돌봄이 필요하신 부모님에게 요양원·요양병원이 나을까, 집이 나을까?’입니다. 물론 재정적인 여유가 충분하면 비싼 비용을 지불하고 고급스러운 시설에서 맞춤형 돌봄을 제공하는 시설에서 지내는 선택지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 글에서는 좀 더 일반적인 형태를 상정하여 살펴보겠습니다.

언론에서 일부 요양원의 실태를 보여주는 기사를 보신 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생의 마지막 단계에서 노인들은 군대처럼 아침 6시에 일어나야 하고, 기저귀를 가는 정해진 시간까지는 변을 보아도 기다려야 하기도 합니다. 극단적인 경우이겠지만, 일주일에 하루 정해진 시간에만 목욕할 수 있기에 (치매로) 온몸에 대변을 발라도 정해진 날까지 기다려야 하기도 합니다. 2022년 선진국에 진입한 대한민국 요양원에서 생활하는 적지 않은 노인들이 처한 현실입니다.

이렇듯 요양원이 이상적인 돌봄과는 괴리가 크지만, 그렇다고 꼭 집이 더 나은 것은 아닙니다. 돌보는 이나 거주지의 상황이 열악하다면 부족하나마 시설이 오히려 나을 수도 있겠죠. 제가 20년 전 방문 진료를 통해 만났던, 집에 대변이 낭자했던 할머니의 경우처럼 말입니다. 그렇기에 장기요양보험에서는 이런 경우 3~4등급인 분들도 요양원 입소를 허락합니다. 그래도 일반적으로 노인들에게 편안하고 익숙한 곳은 집입니다. 노인들은 개인 사생활이 제한되는 단체생활을 힘들어합니다. 필요한 돌봄과 의학적 처치가 충분히 가능하다면 집이 더 좋다는 데에는 이견의 여지가 별로 없습니다.

2017년 8월, 여의도에서 정부의 치매국가책임제 관련 본인부담상한제 도입을 촉구하는 시위가 열렸다. ⓒ연합뉴스

판정 등급에 따른 노인의 삶 추적했더니

그렇다면 현행 제도의 재가 및 시설 서비스가 필요한 도움을 충분히 제공하는지, 가족이 정상적인 삶의 질을 누릴 수 있는지, 또한 어르신의 건강에는 어떤 것이 더 나을지 따져보아야 합니다. 그런데 시설과 재가 서비스 각각의 이용자를 단순 비교해서는 이 질문에 답할 수 없습니다. 돌봄의 필요가 더 많을수록, 건강이 더 나쁠수록, 또 돌보아줄 가족이 없을수록 시설에 입소할 확률이 높아집니다. 따라서 시설에 계신 노인들이 재가 서비스를 받는 노인들보다 더 아프다고 해서 이게 시설 혹은 재가 서비스 때문인지 다른 요인 때문인지 알 수 없는 것이지요.

이 질문에 대한 답으로 제 연구를 소개하겠습니다. 저는 박사과정 시절에 장기요양인정점수가 거의 같으나 등급 판정이 아슬아슬하게 갈려(95점, 75점, 51점 전후) 받는 혜택이 달라지는 노인의 삶을 추적하는 연구를 하여 공공경제학 분야의 권위 있는 학술지인 〈저널 오브 퍼블릭 이코노믹스(Journal of Public Economics)〉에 게재했습니다(Kim and Lim, 2015). 이러한 연구 방법을 ‘회귀-불연속 설계’라 합니다.

결과는 노인의 상태에 따라 달라졌습니다. 먼저 95점 전후의 ‘전적으로’ 도움이 필요한 분들을 비교해봅시다. 95점(1등급) 노인은 94.9점(2등급) 노인에 비해 집에 있을 확률이 큽니다. 시설 입소로 인한 본인부담금 차이 때문입니다. 95점(1등급)이면 하루 6만5190원의 20%인 약 1만3000원을, 94.9점(2등급)이라면 약 1만2000원을 냅니다. 하루 1000원 차이지만, 이런 작은 차이에도 시설 입소의 확률이 2%포인트 줄었습니다. 이분들을 추적해보니 시설 혹은 재가 서비스로 인한 사망 여부, 건강 상태에는 차이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집에 계신 분들은 시설에 입소하신 분들에 비해 의료비 지출이 크게 줄었습니다. 의료비를 적게 지출함에도 같은 건강상태를 유지할 수 있었기에 집에서 지내는 게 이득이었습니다.

다음은 75점 전후의 ‘상당 부분’ 도움이 필요한 분들입니다. 75점(2등급)이라면 시설 입소가 가능하나, 74.9점(3등급)이라면 집에서 지내야 합니다. 그래서 이 둘은 거의 비슷한 사람들임에도, 아슬아슬하게 2등급을 받으면 시설을 선택할 확률이 크게 증가합니다. 이분들이 시설에 더 많이 입소한 결과 자녀의 돌봄 부담이 실제로 줄어들었습니다. 하지만 노인의 질병, 사망 및 의료비 지출에는 변화가 없었습니다. 노인 처지에서는 (특별한 건강 및 재정상의 이득도 없이) 아무래도 집보다는 불편한 시설에 가신 것이지만, 자녀 처지에서 보면 자유로운 시간을 얻게 된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51점 전후의 ‘일정 부분’ 도움이 필요한 분들입니다. 51점(4등급)이라면 재가 서비스를 받을 수 있지만, 50.9점이면(치매가 아니라면) 아무런 도움이 없습니다. 4등급을 받아 다만 하루에 2~3시간 도움을 받는다 할지라도 가족들의 돌봄을 크게 줄여주지도, 노인의 건강을 증진하거나 의료비를 감소시키지는 못했습니다. 돌봄에 지친 가족이 숨 좀 돌리는 정도의 시간 여유 같은, 통계에 잡히지 못하는 도움이 될 수는 있었겠지만 눈에 띄는 변화는 만들어내지 못했습니다.

요약하면 노인들에게는 재가 서비스가 (시설 서비스에 비해) 일반적으로 더 나은 선택지였습니다. 돌봄을 제공하는 가족에게는 시설 서비스가 더 많은 자유를 주겠지만 말입니다.

당시 제 연구는 아쉽게도 자료 부족으로 가족의 경제활동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는 살펴보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이러한 자료도 가능해져서 후속 연구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노인에게 가장 좋은 방법은 (의학적 치료가 긴급히 필요하지 않는 한) 집에서 충분한 돌봄을 받는 것입니다. 하지만 국가의 돌봄은 현재 하루 4시간으로 제한되어 있습니다. 우리 사회가 장기요양보험료 두 배 인상에 동의해야, 하루 8시간 재가 서비스, 그리고 더 양질의 시설 서비스가 가능해질 터인데, 단기간에 쉽지 않을 것입니다.

결국 (돌봄을 제공할 건강한 배우자가 없는 한) 월 300만원이 넘는 막대한 추가적인 간병비를 감당할 수 있는 노인들만이 돌봄이 필요할 때 집에서 그나마 안락하게 지낼 수 있습니다. 이러한 현실은 노인 돌봄의 시설화를 낳았습니다. 장기요양보험 도입 이후 요양시설은 2008년 1332개에서 2021년 4057개로 늘었습니다. 장기요양보험과 무관한 요양병원도 덩달아 증가해서 2008년 690개에서 2021년 1464개로 늘어났습니다(〈그림 3〉 참조).

ⓒ시사IN 최예린

정부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노인이 원하는 곳에서 적절한 돌봄을 받을 수 있게 도와야 합니다. 즉 어느 정도 돌봄의 탈시설화가 필요합니다. 돌봄이 필요한 노인이 좀 더 (시설보다는) 재가 서비스를 택할 수 있도록 수가를 조정해야 할 것입니다. 또한 중장기 과제로서 장기요양보험료 인상을 통해 재가와 시설 서비스 모두의 양적·질적 개선이 필요합니다. 그렇지만 급격한 노령화가 진행되는 현실은 지금 수준의 서비스를 유지한다 하더라도 장기요양보험료 부담이 크게 증가할 것이 예견됩니다.

간병 인력이 모자란 것도 문제입니다. 지금은 내국인과 중국 동포만이 가능한 간병인 공급의 확충이 필요합니다. 홍콩의 외국인 간병인 모델을 고려해볼 수 있습니다. 홍콩에서는 노인들이 휠체어를 타고 도우미의 도움을 받아 쇼핑하고 산책하는 모습을 우리나라보다 자주 볼 수 있습니다. 한국도 존엄한 노년을 위해 간병과 돌봄을 위한 좀 더 다각적인 방안이 강구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참고 문헌

Kim, Hyuncheol Bryant, and Wilfredo Lim. "Long-term care insurance, informal care, and medical expenditures." Journal of public economics 125 (2015): 128-142.

김현철 (홍콩과학기술대 경제학 및 정책학과 교수)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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