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기술 안 쓰고 국산 FA-50 만드는 '무모한 도전' 가능할까 [박수찬의 軍]
한동안 수출 실적이 주춤했던 국산 FA-50 경공격기가 새롭게 비상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지난달 폴란드와 3조원 규모의 FA-50 48대 공급 계약을 체결하면서 소형 전투기 도입을 원하는 국가를 중심으로 FA-50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제작사인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은 폴란드에 공급할 FA-50 블록20형 성능 확보에 고심하는 모양새다. 폴란드의 요구사항이 반영되는 블록20형은 향후 수출 시장에서 기존 FA-50을 대체하는 KAI의 핵심 제품이 될 가능성이 높다.
일각에서는 FA-50의 효과적인 수출을 위해서는 ‘기술 독립’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능동위상배열(AESA)레이더를 비롯한 주요 전자장비를 국산화한 KF-21의 사례를 적용, 수출 제약 사항을 극복하고 시너지를 높여야 한다는 것이다.
폴란드가 도입할 FA-50 블록20형의 핵심은 AESA 레이더다. 기존에 장착된 이스라엘 엘타 EL/M-2032는 탐지거리가 100㎞에 달한다.
하지만 신뢰성이 높고 가벼우며 전자전에 강하고 탐지성능도 우수한 AESA 레이더의 장점이 두드러지면서 전투기를 신규 구매하는 국가는 AESA 레이더 탑재를 요구하고 있다.
FA-50도 마찬가지다. 폴란드는 물론 구매 가능성이 꾸준히 제기됐던 말레이시아 등도 AESA 레이더를 희망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말레이시아를 비롯한 이슬람국가에는 이스라엘산 장비를 판매할 수 없다는 점도 EL/M-2032 레이더 교체의 필요성을 더한다.
레이더를 교체하면 공대공미사일과 관련 전자장비도 바뀐다. 기존과는 다른 기종이 탄생하는 셈이다.
현재 FA-50에 탑재할 AESA 레이더 기종은 확정되지 않았다. 다만 방위산업계와 항공우주 전문가들은 두 가지 방안을 거론하고 있다.
우선 미국산 레이더를 탑재하는 것이 있다. 레이시온과 노스롭그루먼은 FA-50과 유사한 경전투기에 쓸 수 있는 AESA 레이더를 제안하고 있다.
이 AESA 레이더에 AIM-9X 공대공미사일을 통합하면 폴란드나 말레이시아 등의 요구사항을 충족할 수 있다는 평가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미국산 레이더에 미국산 미사일을 장착해 수출하는 방안은 KAI의 지분을 늘리지 못하고 여전히 미국에 귀속되는 구조”라고 우려한다.
미국의 수출승인 과정이 추가되면 협상 기간이 늘어난다. 미국이 AESA 레이더나 AIM-9X 미사일 수출 승인을 늦추면, 국제 공개경쟁입찰에서 FA-50의 경쟁력은 약해질 수밖에 없다.
스웨덴 사브 그리펜이 대표적 사례다. 위키리크스가 폭로한 2008년 7월 작성된 미 외교전문에 따르면, 당시 노르웨이 차세대 전투기 사업에 참가한 사브는 그리펜에 탑재할 레이시온 AESA 레이더의 수출승인을 미국에 요청했다.
록히드마틴 F-35A의 노르웨이 판매를 시도하던 주노르웨이 미국대사관은 노르웨이 정부가 기종을 결정할 2008년 12월까지 사브에 대한 AESA 레이더 수출승인을 늦춰줄 것을 본국에 요청했다. 그 결과 노르웨이는 F-35A 도입을 결정했다.
이같은 문제점에 따른 대안이 국내 개발이다. 국방과학연구소(ADD)와 한화시스템은 KF-21 탑재 AESA 레이더를 개발중이다. 이를 소형화하면 FA-50에 탑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상시적인 소프트웨어 업데이트와 성능개량을 제때 저렴하게 진행하는 것도 가능하다. 도입비와 운영유지비가 저렴해지는 셈이다.
미국이 AIM-9X 수출을 승인하지 않는다면, 유럽산 무장을 국산 AESA 레이더에 통합할 수 있다. KF-21은 유럽 MBDA 미티어 중거리 공대공미사일과 독일 딜 IRIS-T 단거리 공대공미사일을 장착한다.
국산 AESA 레이더에 탑재와 더불어 항공무장 국산화도 거론된다.
세계 주요 항공우주산업체는 전투기에 탑재하는 무장도 함께 만든다. 록히드마틴은 재즘(JASSM) 공대지미사일, 보잉은 합동정밀직격탄(JDAM) 등을 생산하면서 전투기 구매국에 항공무장을 패키지로 판매하고 있다.
전투기와 항공무장을 한꺼번에 구매하려는 국가 입장에서는 긍정적 요소다.
FA-50는 무장을 강화하면 해외 시장에서 더 큰 경쟁력을 얻을 수 있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기존 항공무장의 사거리가 짧고 기술적으로 뒤떨어졌기 때문이다.
실전에서 많이 쓰이는 정밀유도폭탄을 시작으로 KAI가 KF-21에 탑재하는 미티어 등의 무장을 창정비하거나 면허 생산하며 경험을 쌓은 후 공대지미사일 등 항공무장을 자체 생산한다면 FA-50은 명실상부한 ‘기술 독립’에 가까워진다.
FA-50의 부가가치를 높일 수 있고, KAI의 사업 영역을 확대하는 효과도 있다.
일각에서는 수출입은행이 대주주인 KAI를 민영화하면 시너지가 더욱 커질 것이라고 평가한다.
최근 불거졌던 한화그룹의 KAI 인수설도 이와 무관치 않다.
수출입은행과 KAI는 “사실이 아니다”라는 입장이다. 하지만 과거 대한항공이 KAI를 인수한다는 이야기가 나왔을 때 “접촉한 적 없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실제로는 민영화 작업이 일부 진행됐다는 점에서 정부의 향후 움직임을 지켜봐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한화그룹의 KAI 인수설이 제기되는 것은 양측의 사업적 특성에 기인한다.
KAI는 국내 방위산업체 중에서 플랫폼 사업의 비중이 매우 높다. T-50 훈련기와 수리온 헬기, 소형무장헬기(LAH), 상륙기동 및 공격헬기, KF-21 전투기, 무인기, 위성, 로켓 등에 이르기까지 그 범위도 넓다.
한화그룹으로서는 KAI의 플랫폼에 자사의 장비와 소프트웨어를 공급, 안정적인 물량을 확보할 수 있다.
KAI도 KF-21처럼 고도로 복잡한 플랫폼의 체계통합이 더욱 유기적으로 진행될 기반을 마련하는 것이 가능하다.
전투기와 레이더, 항공무장을 단일 기업 그룹이 제작해 공급하면, 연구개발 역량을 한데 결집할 수 있어 ‘선택과 집중’ 효과를 거둘 수 있다.
지상과 해상, 공중에 걸친 군사장비를 제작하는 ‘한국판 록히드마틴’이 탄생하면서 연구개발 및 수출 역량이 한층 강화될 수 있다는 기대도 나온다.
KAI 민영화를 통해 거대 방위산업체가 등장하면 부작용이 있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입찰에서 손해를 봐도 사업을 수주하면 해당 무기가 퇴역할 때까지 수십 년 동안 성능개량과 후속군수지원을 통해 안정적인 수익을 얻었다. 수출 실적이 추가되면 더 많은 이익을 얻었다.
록히드마틴처럼 막대한 규모의 자금을 조달할 수 있는 거대 방위산업체가 탄생한 배경이다.
하지만 지금은 사정이 다르다. 기술 발전과 전장 환경 변화 속도가 매우 빨라졌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변화 속도가 주춤해졌지만, 장기적으로 ‘소품종 대량생산 후 장기간 사용’에서 ‘다품종 소량생산 후 단기간 사용’으로 무기 운용 패러다임이 바뀔 조짐도 보인다.
이같은 상황에서 거대하고 복잡한 구조의 방위산업체는 빠르고 다양한 기술적, 전략적 환경 변화에 신속하게 대응하기가 어렵다. 작고 유연한 조직구조를 지닌 방위산업체를 다수 확보해 무기생산능력을 분산하는 것이 낫다는 주장이 제기되는 이유다.
글로벌 방산업계 관계자는 KAI 민영화와 관련, “민영화의 가장 큰 장점은 회사의 이익이 늘어난다는 것”이라며 “미국처럼 대형 시장이 없는 한국은 주 고객이 정부라서 공적 기업이라는 프리미엄이 크게 작용해왔다”고 설명했다.
그는 “민영화가 되면 기업의 이윤이 우선이므로 규모가 작고 개발과 생산기간이 긴 사업은 우선순위에서 밀릴 수 있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며 “유럽의 초대형 방산업체도 거의 다 정부 몫 지분이 많다”며 민영화의 장·단점을 잘 따져 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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