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女풍]⑥ "하이힐을 신고도 안전한 현장을 만들어라" 박정화 HDC현산 상무
[편집자주] 올해 1분기 기준 국내 매출 상위 500대 기업의 여성 임원 비율이 6.3%. 하지만 건설·부동산 업계의 여성 임원은 1.0% 수준에 불과하다. 시공능력 10대 건설사에 여성 임원이 없는 경우도 많고 있어도 아직은 1~2명에 불과한 실정이다. 이는 그만큼 남성 중심적 문화가 지배하는 곳이라는 편견이 가득한 업종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조금씩 변화하고 있다. 아직 손꼽히는 수준이긴 하지만 여성 임원과 대표가 곳곳에서 탄생하고 있고 수년째 업을 이어가고 있다. 여성이 견디기 쉽지 않을 것이라던 건설·부동산 시장에서 자리 잡은 이들을 만나봤다. 그들이 생각하는 일은 무엇이고 어떻게 일을 하고 있을까.
지난달 15일 경기도 광명시 광명사거리역 인근의 광명4R 주택재개발 현장. 총 6만5440㎡, 평수로는 1만9796평에 달하는 현장에서는 터파기 공사가 한창이었다. 이곳에는 2025년 6월이면 1957가구가 거주할 수 있는 대단지 아파트가 들어설 예정이다. 총 38개월간의 공사기간 동안 최고 36층의 11개동 아파트를 짓는 재개발 공사다. 이 광활한 현장을 진두지휘하는 책임자는 박정화 HDC현대산업개발 상무다.
박정화 상무는 건설업계 최초 여성 현장소장 출신이다. 2013년 서울 논현동 렉스타워가 그가 현장소장을 맡았던 첫 현장이다. 28년 전인 1994년 입사해 거친 현장만 총 8곳. 한 현장당 2~3년이 소요된다는 점을 고려하면 본사에서 건설기획팀장을 잠시 맡았던 때를 제외하곤 항상 현장을 지킨 셈이다.
현장에서 그가 가장 강조하는 것은 ‘안전’이다. “하이힐을 신고 다녀도 안전하도록 현장을 관리해야 한다. 여성이 다니기 힘든 환경은 모든 사람에게 위험한 환경”이라는 게 박 상무의 신념이다.
현재 맡고 있는 광명 현장에서도 그는 안전을 무엇보다 중시하고 있다고 했다. 터파기가 진행 중인 만큼 지반이 연약한 특성을 보완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었다. 박 상무는 “연약지반을 양질의 토사로 계속해 치환을 진행하면서 매일 직접 바닥 상태를 점검하고 있다. 보강철판을 까는 일도 직접 진행하고 있다”고 했다.
ㅡ 건설업계에서 처음으로 여성 현장소장이 됐다.
“10년 전이던 당시 회사에서 전략적으로 여성을 등용하자는 분위기는 아니었다. 그냥 자연스럽게 이뤄졌다. 10대 건설사 중에 처음으로 여성이 임원이 된 것도 저였던 것으로 알고 있다.
건설사에서 전기설비를 하셨던 아버지의 영향을 받은 것 같다. 현장에서 꽃은 현장소장이라고 보셨고, 장녀인 제게 거는 기대도 있으셨다. 현장소장이 됐을 때 정말 좋아하셨다.”
ㅡ 현장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무엇인가.
“안전문제다. 공사장의 시설물들이 상향 평준화가 되어 있지만, 그래도 안전만큼은 과도할 정도로 신경을 써야 한다. 본사하고 연계된 폐쇄회로TV(CCTV) 관제 시스템을 각 현장에서 운영하고 있다. 현장에서도 보고, 본사의 관련 부서에서도 똑같이 현장을 보고 있는 것이다. 통제 감시하는 위험요소가 어디서든지 발견되면 즉각 통보가 될 수 있도록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
안전관리를 위해 스마트 안전기술 또한 적극 사용하고 있다. 전 현장을 빌딩정보모델링(BIM)으로 시뮬레이션 해서 사전에 도면의 문제점 등을 발췌해 수정 보완하고 있다. 디지털 목업(mock up·실물 모형 만들기)도 진행 중이다. 디지털로 도면화해 3차원으로 물량치수를 만들고, BIM으로 확인을 해보고 문제점을 미리 찾아내는 것이다.”
ㅡ 안전 외에 또 중요한 것은 무엇이 있나.
“발주자들이 요구하는 수준을 맞추기 위해 소통하는 일이 굉장히 중요하다. 그동안 재개발, 재건축 현장을 비롯해 아산병원 현장과 타운하우스 등을 짓는 현장에도 있었다. 발주자가 요구하는 수준이 높은 분들이었다. 마감이나 품질 수준에서 차별화를 원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때는 그 요구에 맞춰서 소통을 하면서 눈높이를 맞춰가는 게 가장 중요했다.
공법을 정확하게 적용하는 것도 중요하다. 예를 들어 병원공사의 경우 투입되는 자재 등이 정해져 있는 부분이 있고 취급시의 상세조건들이 있다. 이걸 제대로 하지 않으면 하자가 발생한다. 훼손이나 변형의 문제가 생길 수 있다. 항상 모형을 먼저 만들어 모든 부분을 확인한 후 진행을 한다.”
ㅡ 건설사, 특히 시공현장에는 여성인력이 많지 않다.
“20여년 전만 해도 현장에서 여성 직원을 배정받는 것은 소장 입장에서 부담스러운 일이었다. 현장이 거친 곳이다 보니 혹시나 불미스러운 일이 있을까 싶어서였을 것이다. 그럴 때 상처를 받기도 했었다.
하지만 그런 편견은 며칠만 근무해보면 금방 불식되곤 했다. 신입사원으로 처음 배정받은 현장은 신도시 택지지구였는데 여자 화장실이 없었다. 매번 100m 떨어진 상가를 찾아가곤 했다.
이제는 기획이나 설계, 구조, 시공분야 등 다방면의 건설업에 여성들이 진출했다. 남직원들도 여성 동료와 일을 하는 것이 흔해졌고, 편견을 갖지 않는 수준까지는 온 것 같다. 하지만 특히 건설사에서 팀장, 소장급의 여성 리더는 아직 5% 이내로 알고 있다.
물론 사회적인 문제가 있다. 이제는 현장소장을 맡고 있는 후배 팀장들이 여럿인데, 미혼인 나와 달리 모두 자녀가 있다. 그 친구들 뒤에는 가족들의 배려가 반드시 따른다.”
ㅡ 가장 기억에 남는 현장은.
“2007년 제주도 한라산 중턱에 타운하우스를 짓는 현장에서 많이 배웠다. 해안가 특성상 염해, 습기가 심했다. 최고급 자재들이 부식, 변형돼서 당시 소장님께 많이 혼났다. 그때 육지와는 다른 기후조건에서 자재를 가공하는 방법이나 원료 배합비를 정하는 방법 등을 공부한 계기가 됐다.
당시 태풍 ‘나리’가 왔었는데 지금껏 현장을 돌아다니면서 가장 무서웠던 기억이 있다. 남직원들의 숙소 주차장이 침수돼 혼자 현장에 출근해야 했다. 평소 겁이 없는 편이지만 1km에 달하는 펜스가 넘어지고 떨어져 나갈 때 하늘에 기도를 하게 되더라.”
ㅡ 요즘 건설업 인력 상황은 어떤가.
“신입사원들의 수준이 과거와는 다르다. 사회에 나오기 전부터 준비가 많이 되어 있다. 건설사의 경우 현장의 공법들까지 공부를 굉장히 많이 하고 오더라. 사회생활의 매너에 대해서도 많이 알고 있다. 뭘해도 잘 할 인재들이다.
그런데 요즘 30대의 젊은 직원들이 회사를 그만두고 자산운용사, 시행사 등으로 이직을 많이 하고 있다. 현장을 비롯한 건설업 자체가 실제 업무강도가 높고 특히 시공업무 자체에서는 큰 비전을 찾지 못하는 측면도 있다.
인재들이 건축, 토목 분야로 와서 다른 곳을 빠져나가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여전히 건설업 자체는 개선돼야 하고 발전해야 한다. 구조적, 공법적, 설계적인 부분과 함께 현장의 안전까지 그렇다. 업계로 들어온 후배들이 사명감을 갖고 끝까지 일해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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