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그림자 극복하고 영국 통합의 구심점 될까 [세계는 지금]
왕세자 시절 정치성 스스럼없이 드러내
정치개입 경계한 엘리자베스와 비교돼
고위층에 보낸 사적편지 공개로 곤혹도
여왕 타계 후 힘 실리는 '군주제 폐지론'
스코틀랜드 독립국가로 EU 가입 태세
뉴질랜드 총리도 '공화국 전환' 언급
최근 찰스 호감도 상승에 그나마 안도
경기침체 속 연합왕국 수호 당면 과제
1000년 역사 왕실 존속도 찰스 어깨에
“목요일에 중요한 투표가 있죠? 사람들이 미래에 대해 정말 신중하게 생각하기를 바랍니다.”
고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2014년 9월 스코틀랜드 애버딘셔 밸모럴성의 교회 앞에서 만난 여성에게 말했다. 이 발언은 여왕의 70년 재위 기간(1952∼2022) 중 가장 정치적인 발언이었다. 여왕은 생전 언론 인터뷰는 단 한 차례, 그것도 자신의 대관식에 관한 내용으로 한정할 정도로 정치적 개입을 회피했다.
이제 군주제의 존속, 연합왕국(United Kingdom)의 통합, 영연방(Commonwealth)의 향방과 관련한 영국 왕의 과업은 찰스 3세 신(新)국왕의 어깨 위에 놓였다.
입헌군주제의 영국 왕은 군림하되 통치하지 않는다. 왕에게 부여된 법률동의권, 의회해산권, 총리해임권 등의 권한도 오직 선출된 정부의 조언과 요청에 따라서만 행사된다. 찰스 국왕이 이런 철칙에 따라 정치적 중립을 확고히 유지한 선왕과 같은 길을 걸을 수 있을지 물음표가 붙는다. 왕세자 때부터 400여개 단체의 회장이나 후원자로 왕성한 활동을 하며 기후변화, 대체의학, 유기농법 등 여러 사안에 대해 목소리를 높였기 때문이다.
잉글랜드, 웨일스, 스코틀랜드, 북아일랜드로 구성된 연합왕국, 영국의 통합을 유지하는 것도 찰스가 직면한 커다란 과제 중 하나다. 2020년 말 마무리된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가 영국 내 원심력을 자극한 상황이어서 더욱 그렇다. 일단 스코틀랜드가 영국을 떠나 독립국가로서 EU에 들어가겠다는 태세다. 니컬라 스터전 스코틀랜드 자치정부 수반은 지난 6월 2023년 10월 제2차 분리독립 찬반 주민투표를 실시하겠다고 발표했다.
북아일랜드 문제는 브렉시트 논의 과정 내내 뜨거운 감자였다. EU 회원국 아일랜드와 영국령 북아일랜드 사이에 물리적 국경이 다시 만들어졌다. 이는 두 지역의 자유로운 이동을 보장한 벨파스트 협정(1998)을 위협한다. 결국 EU와 영국은 북아일랜드를 EU 단일시장에 남겨두는 북아일랜드 협약을 체결했지만, 트러스 총리는 협약 파기를 주장하고 있다. 최근 북아일랜드 인구조사에서 가톨릭교도 비율(45.7%)이 개신교도(43.5%)에 처음으로 앞선 것도 부담이다. 가톨릭 국가인 아일랜드와 정체성이 더 가까워졌음을 뜻하기 때문이다.
찰스 3세는 영연방 56개국의 수장이기도 하다. 캐나다·호주·뉴질랜드 등 14개국은 아직도 영국 국왕을 국가원수로 규정한다. 문제는 여왕의 타계를 계기로 영연방 결속이 느슨해지고 공화제 전환 움직임에 탄력이 붙을 가능성이 커졌다는 점이다. 카리브해의 섬나라 바베이도스가 지난해 이미 선출직 대통령을 국가원수로 삼는 개헌안을 처리해 영국 왕실과 결별한 가운데 인접 국가 앤티가바부다는 여왕 사후 사흘 만에 “3년 내 공화국 전환을 묻는 국민투표를 실시하겠다”고 밝혔다. 저신다 아던 뉴질랜드 총리는 “뉴질랜드가 공화국으로 전환하는 일이 내 생애 중 반드시 일어나리라 믿는다”고 말했다.
영국 왕실에 새겨진 식민주의, 노예무역의 유산과 결별하는 것도 난해한 문제다. 찰스는 지난 6월 르완다에서 열린 영연방 정상회의에서 “나는 노예제의 오래 지속되는 영향에 대한 이해를 깊게 하면서 그토록 많은 사람이 고통을 당한 데 대해 개인적인 슬픔의 깊이를 이루 다 말할 수 없다”며 “우리가 모든 시민에 유익한 공통의 미래를 만들려면 우리의 과거를 시인하는 새로운 길을 발견해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1066년 정복왕 윌리엄 1세의 대관식 이후로 1000년 역사를 가진 군주제가 존속하려면 왕실 개혁, 현대화에도 힘써야 한다. 가디언 왕실담당기자 출신인 스티븐 베이츠는 이와 관련해 상속·법인세 납부, 방만한 왕실 간소화, 버킹엄궁 개방 확대, 대영제국 훈장 개명 및 개혁 등을 제안했다.
영국 왕실 입장에서 다행인 것은 여론조사기관 유고브가 여왕 타계 직후 실시한 조사에서 “찰스는 좋은 왕이 될 것”이라는 응답이 63%까지 상승하는 등 지지가 모이고 있다는 점이다. 직전 5월 조사(32%) 때보다 곱절로 늘어났다. 그러나 허니문이 언제까지고 이어질 수는 없다. 영국인들은 이제 여왕 추모 분위기에서 벗어나 내년 봄 또는 여름 열릴 대관식 때까지 생계비 위기, 경기 침체 우려 등의 엄혹한 현실을 마주할 것이다.
유태영 기자 anarchy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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