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봄가을인데 치안·물가까지..만국의 은퇴자들 '여기'로 모인다

한겨레 입력 2022. 10. 1. 16:00 수정 2022. 10. 2. 2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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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C : 노동효의 지구 둘레길][ESC] 노동효의 지구 둘레길 _ 에콰도르 쿠엥카
에콰도르 중남부 도시 쿠엥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
날씨·치안·물가 삼박자 적절
은퇴자들의 천국으로도 꼽혀
유럽의 고풍스러운 소도시 같은 쿠엥카 거리.

<호모 노마드>를 쓴 자크 아탈리는 인류사를 유목민의 시각으로 서술하면서 인류를 크게 세 부류로 나누었다. 비자발적 노마드(이주노동자·난민·정치망명객 등), 정착민(교사·직장인·공무원 등), 자발적 노마드(창작자·운동선수·여행가 등). 그러면서 21세기엔 정착에서 유목으로 패러다임이 전환되리라고 예견했다. 어느덧 21세기의 5분의 1이 지났다. 그사이 정착민에서 자발적 노마드로 대거 옮겨간 집단이 등장했다. 지난 세기까진 정착민으로 머물던 ‘연금생활자’다.

미국의 이주 전문 누리집 인터내셔널리빙은 부동산, 생활비, 기후, 의료, 인프라, 외국인 친화도 등을 합산한 지수로 ‘은퇴 뒤 살기 좋은 국가’를 매년 발표해 왔다. 그동안 어떤 나라가 상위권을 차지했을까? 중남미 나라가 많았다. 근데 미국, 캐나다와 밀접한 멕시코, 파나마, 코스타리카라면 이해가 된다. 콜롬비아, 에콰도르라면 다소 의아할지도 모르겠다.

에콰도르는 남미에 대한 고정관념(불안한 치안, 정치적 혼란, 부족한 인프라)과 달리 ‘2015년 은퇴 뒤 살기 좋은 국가 1위’에 올랐고 현재까지 상위권을 고수 중이다. 적도의 나라로서 스페인어로 적도라는 뜻인 ‘Ecuador’를 국가명으로 쓴다. 한자어 적도는 ‘붉은 길’, 이글거리는 태양과 무더운 날씨가 떠오른다. 그래서 우리는 ‘적도대’라 하면 뜨거운 기온부터 떠올리지만, 이 또한 고정관념이다. 가령 적도대에 자리한 쿠엥카의 경우 가장 더운 달 평균 기온이 17도, 가장 추운 달 평균 기온이 15도로 연중 봄가을 같다. 안데스산맥 해발 2500미터에 자리한 덕분이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선정된 쿠엥카 역사지구의 중심인 칼데론 공원.

성당 돔이 긋는 스카이라인

에콰도르에서 ‘은퇴 뒤 가장 살기 좋은 도시’로는 쿠엥카를 꼽는다. 한국인에게 알려진 바는 없다. 검색해도 쿠엥카 관련 기사나 여행 칼럼을 찾기 어렵다. 나 역시 방문 전까지 키토, 과야킬 정도만 알았지, 쿠엥카란 도시가 있는지 몰랐다. 페루를 지나 북상 중 빠른 시일에 에콰도르를 경유해서 콜롬비아로 건너갈 마음뿐이었다. 과거 키토의 우범지대에서 겪은 불미한 사건(이에 대해 궁금한 독자는 <남미 히피 로드>를 참고하길 바란다. 나의 개인적 경험이 에콰도르나 키토에 대한 선입견을 심을 수 있다는 염려로 연재 글에선 다루지 않았다) 때문에 에콰도르에서 오래 머물 생각이 없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이번엔 아내까지 함께라 더더욱 안전한 루트만을 생각했다. 하여 키토에선 묵지 않을 계획으로 선택한 경유지가 쿠엥카였다.

쿠엥카 터미널에 도착한 건 햇살이 서쪽으로 기울던 오후였다. 즉각 택시를 잡고 예약해 둔 숙소로 향했다. 방 안에 배낭을 내려놓으며 실감했다. 트라우마라는 게 정말 무서운 거구나! 호스텔 로커에 귀중품을 보관한 뒤 거리로 나섰다. 긴장을 늦추지 않았다. 빛나는 성당 돔이 긋는 스카이라인, 평화로운 공원, 조약돌 깔린 골목, 꽃으로 가득한 시장, 한 시간쯤 지나자 긴장이 풀렸다. 기대하지 않았는데 도시가 너무 아름다웠다. 유럽의 고풍스러운 소도시를 걷는 기분이었다. 격자형 도시라 길 찾기도 쉬웠다. 유럽, 중동, 인도, 중국, 타이, 멕시코 등 다양한 요리를 맛볼 수 있는 레스토랑까지! 저렴한 비용으로 맛있는 식사를 하니 나쁜 기억도 녹아내렸다. 그리고 숙소로 돌아온 뒤 알게 되었다. 내가 거닌 도심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란 걸! 온라인 정보를 검색하던 아내가 물었다. “좀 더 머물면 어떨까?”

다음날 인마쿨라다 콘셉시온으로 갔다. 성베드로 성당에서 영감을 받아 지은 대성당으로 1885년부터 완공까지 거의 90년이 걸렸다. 9천명을 수용할 수 있다고 했다. 나는 정성스레 기도했다. 가톨릭 세례를 받았지만 미사 참석이 뜸하던 나를 에콰도르는 독실한 신자로 만들어주었다.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 아멘!” 칼데론 공원 건너편엔 또 다른 성당이 있었다. 과거 대성당으로 불렸던 사그라리오 성당이었다. 인류사로 보자면 새로 지은 대성당보다 더 중요한 장소였다.

쿠엥카의 대성당 인마쿨라다 콘셉시온.
쿠엥카의 랜드마크 대성당.

해발 3천미터 이상, 하늘만큼 큰 땅

18세기 과학자들은 지구 둘레가 남북으로 더 긴지, 동서로 더 긴지 논쟁했다. 프랑스 과학아카데미는 이를 알아내기 위해 두 원정대를 보내기로 했다. 한쪽은 남북극 길이를, 한쪽은 적도 길이를 재도록. 키토에 도착한 원정대는 쿠엥카를 오가며 적도 부근에서 더 길다는 것을 알아냈다. 그때 기준으로 삼았던 지점에 탑이 섰다. 사그라리오 성당이다. 지구 둘레에 관한 논쟁은 해결되었고 비로소 1미터의 정의가 내려졌다. 북극에서 적도까지 자오선 길이의 1천만분의 1을 ‘1미터’로 정한다.

칼데론 공원 앞에서 식사하는데 아내가 물었다. “이제 어딜 가볼까?” 나는 성당 앞을 지나던 빨간 버스를 떠올렸다. “시티투어버스를 탈까?” 여행 중 시티투어버스를 이용한 경우는 거의 없었다. 걷거나 현지인이 타는 교통수단을 이용했다. 그러나 한번쯤 시티투어버스로 도시 전체를 먼저 관망하는 것도 좋을 듯했다.

시티투어버스 2층으로 올라갔다. 맨 뒷좌석 앞에 앉았다. 스피커에선 명소를 설명하는 기계적 음성이 흘러나왔다. 뒷자리의 노년 커플이 설명이 끝날 때마다 가이드가 언급하지 않은 내용을 귀띔해주었다. “저 타이식당 음식이 아주 맛있어!” “저기선 주말에 중고품 시장이 열려, 싸고 멋진 수공예품도 살 수 있지!” 대체 이 노인들은 몇번째 이 버스를 이용하는 것일까?

버스가 미라도르데투리에 닿았다. 도시를 조망할 수 있는 장소였다. 쿠엥카는 해발 3천~4천미터의 산들로 둘러싸인 도시다. 일찍이 살았던 카냐리족은 터전을 ‘과폰델레그’라고 불렀다. ‘하늘만큼 큰 땅’을 뜻했다. 훗날 잉카제국이 지배하면서부턴 ‘토메밤바’라고 불렀다. ‘능선으로 싸인 땅’, 즉 분지를 가리키는 케추아어였다. 현재 이름으로 불리게 된 건 스페인 침략자가 도착한 뒤의 일이다. 당시 스페인령 페루 총독의 고향이 스페인의 쿠엥카였기 때문이다.

도시가 내려다뵈는 식당에 앉아 맥주를 주문했다. 그때 버스 뒷좌석에 앉았던 노년 커플이 들어왔다. 손 흔들어 인사를 했다. 그렇게 알게 되었다, 미국인 연금생활자 브루노와 제시카를.

“시카고에서 교사였어. 은퇴 후 여기로 온 건 3년 전이야. 한달에 한번 시티투어버스로 도시가 어떻게 변하는지 둘러봐. 햇살 누리기에도, 회귀점이 전망대라서 일몰을 감상하기에도 좋거든.” “에콰도르를 택한 이유가 뭐죠?” “정확히 말하면 쿠엥카를 택했다고 해야겠지. 키토, 과야킬도 가봤는데 남미 대도시는 비슷해. 치안이 불안하지. 소도시나 마을은 전혀 달라. 주민은 순박하고 범죄도 드물어.” “맞아요.” “쿠엥카에 외국인이 늘면서 치안이 더 좋아졌어.”

쿠엥카의 수공예품 가게.
도시 전경이 보이는 투리전망대 옆 레스토랑.

‘같은 비용’으로 ‘더 윤택한 삶’

궁금한 걸 더 묻기로 했다. “가장 큰 장점이 뭐죠?” “미국에선 냉방비, 난방비 지출도 상당했어. 여긴 연중 봄 날씨라 그런 데 돈 쓸 필요가 없어. 미국에서 월 지출액의 반으로도 생활이 가능해. 달러를 사용하고 은행 이자율도 미국보다 높아.” “큰 장점이네요!” “무엇보다 운전을 안 해도 돼! 나이 드니 운전도 힘들어. 시력도 안 좋은데 미국에선 뭐 좀 사려면 마트까지 10킬로미터를 운전해야 해! 여긴 가게, 시장, 공원 다 걸어서 오갈 거리에 있어. 대중교통 수단도 많고.”

이주자 대부분은 65살 이상 전문직 은퇴자로서 85%가 미국인, 나머지는 캐나다인과 유럽인이라고 했다. 단점이 뭐냐는 질문엔 두 사람이 같이 대답했다. “소음!” 그들은 시카고 근교 베드타운에서 살았는데 해 지면 한적한 동네라고 했다. 그에 비해 쿠엥카에선 옆집 음악 소리 때문에 종종 새벽까지 잠 못 잔다고 했다. 그러나 불면의 밤을 얘기하며 웃어대는 걸 보니 크게 싫은 눈치는 아니었다.

“가족, 친구와 소원해지진 않았나요?” “자식들이 분가한 지는 오래야. 미국에서도 일년에 한두번밖에 못 봤는걸. 휴가 땐 여기로 와. 평소엔 영상통화를 하고. 인간관계가 멀어지진 않아. 마음만 먹으면 오늘 친구가 뭐 먹고 누굴 만났는지 다 알 수 있잖아! 스페인어가 능숙해지면 스페인에서도 살아볼까 궁리 중이야!”

연금제도를 시행하는 국가가 늘면서 은퇴 뒤 연금으로 생활하는 인구도 불어났다. 이들은 ‘같은 비용’으로 ‘더 윤택한 삶’을 누릴 수 있는 도시나 국가를 찾아 이동한다. 국외 거주에 대한 두려움과 장애는 급속도로 줄어드는 추세다. 개인주의는 보편화되고, 어느 나라에서든 친구, 가족, 지인과 즉각 연락이 가능한 에스엔에스(SNS)의 발달, 국외 이주의 가장 큰 걸림돌이던 언어소통 문제도 통역 앱과 각국에서 제공하는 현지어 습득 프로그램 등으로 사라진다.

만국의 노동자, 아니 만국의 은퇴자들이 국경을 지우고 있다.

노동효(<남미 히피 로드> 저자·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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