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 끝 거기에, 그 사람이 있었다

한겨레 입력 2022. 10. 1. 16:00 수정 2022. 10. 1. 16:20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한겨레S] 김비의 달려라, 오십호][한겨레S] 김비의 달려라 오십호(好) _ 스토킹 범죄
어느 가을날, 창밖을 보니 아빠와 딸이 놀이터에서 놀고 있었다. 아빠는 마구 뛰어대는 딸아이 곁에 아이랑 같이 뛰며 꼭 붙어 있었다. 김비 제공

☞한겨레S 뉴스레터 구독신청. 검색창에 ‘에스레터’를 쳐보세요.

오래전에도 골목에서 기다리는 사람이 있었다. 반가운 사람이었다. 수십년 세월이 지났고 골목의 풍경도 달라졌지만, 지금도 밤이 내리면 가족들은 너나 할 것 없이 걱정하고 염려한다. 누구라도 골목에 나가 기다려야 하는 것 아닌가 생각한다.

그러나 이제 가족들은 바빠졌다. 같이 사는 누군가를 위한 걱정은, 내 고통과 내 불안으로 시부저기 옅어진다. 나를 지키는 방법은 곧 타인을 향한 책무를 잃지 않는 것인데, 그래서 무기명의 서로가 서로를 지키는 야경꾼이 되는 일인데, 지금은 다들 너무 바쁘다. 돈을 버느라 바쁘고, 돈을 쓰기 위해 바쁘고, 힐링하기 위해 바쁘고, 국민을 위해 네 편 내 편을 나누느라 바쁘다.

그림 박조건형

카메라, 가로등, 내가 찍은 한 표…

카메라가 지켜주겠지, 밤이든 새벽이든 대낮같이 환한 가로등이 지켜주겠지 사람들은 믿지만, 기둥마다 매달린 시커먼 눈을 가진 새하얗고 둥근 벌레는 지키지 않고 지켜만 본다. 초고해상도 화질로 누군가의 죽음을, 누군가의 비명을, 날짜순으로 기록한다.

능숙하게 망각하고 온 힘을 다해 훼손하는 여기 이 바쁜 사회를 아는 사람은, 지켜보는 눈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대낮같이 환한 불빛은 빛깔만 다른 밤일 뿐이다. 무서워해야 할 청청한 하늘은, 영화 속 대사처럼 ‘죽기 좋은’ 날씨에 다름 아니다. 어차피 가치도 의미도 없는 거기서 거기인 미래를 간단히 포기해버린 누군가에게, 두려울 건 없다. 안정적인 직장으로 정상 가족의 일원으로 스스로를 감춘 채, 좋은 때를 기다릴 뿐이다.

감시카메라와 대낮 같은 가로등이, 내 가족을 구하고 내 딸을 지켜줄 것이란 바람은 종잇장처럼 얄팍하다. 내가 먼저 골목에 나가 서지 않으면, 삶을 소중히 여겨본 적 없는 누군가는 껄렁대며 골목을 차지할 것이다. 굳이 애를 쓰지 않아도 저절로 지켜진 삶을 가졌던 누군가는, 또다시 심심해서 혹은 홧김에 그런 짓을 저지를 것이다. 간단히 용서받고 맷집이나 키우는 죄목으로 죗값을 치른 당당함은, 뒤집힌 용기를 장착하고 사람들 속에 스며들 것이다. 우리의 이 편협한 사회 속에 속이기 쉬운 가장 선하고 안전한 가면을 대충 뒤집어쓰고, ‘죽이기 좋은’ 날을 기다리면서.

골목에는, 기다리는 또 다른 사람이 있다. 사랑을 하는 사람이다. 이토록 온몸과 온 마음을 뒤흔든 사랑은 한번도 느껴본 적 없어, 그는 무엇이든 하고 어떤 것도 감내하겠다고 다짐한다. 나는 무엇이든 무너뜨릴 수 있구나, 무너뜨리고 새로 지을 수 있구나, 사랑이라는 염색체의 슈퍼파워를 장착한다.

사랑을 고백한다. 그러나 사랑은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이토록 생생하고 진실한 마음이 어떻게 받아들여지지 않을 수가 있지? 내 사랑을 설명한다. 진실한 마음이 얼마나 나를 바꿨는지, 내 사랑이 얼마나 생생한지, 한번도 적어본 적 없던 수백장의 편지를 쓰고 수만시간의 춤을 춘다. 이토록 내 사랑은 진실해, 다시 고백한다. 그러나 받아들여지지 않는 사랑은 마찬가지.

참혹한 마음이 사랑의 확신과 같이 자라 주렁주렁 비탄의 열매를 맺는다. “열번 찍어서 안 넘어가는 나무 없어.” “남자가 몇번 차였다고 고꾸라지냐?” 성별이 아니라 한 인간으로 존중하고 존중받는 법을 배운 적 없던 그는, ‘남자다움’의 칼을 손에 든다. “사랑에도 주도권이라는 게 있는 거야, 아냐?” “사내 새끼가 달린 값도 못 하고 찌질하게 그게 뭐냐?” 오래도록 읽히고 적혀왔던 통속적인 믿음들이 그의 갈급한 염색체를 마구 긁어댄다. 세뇌시킨다. 오독한 사랑의 자리 옆에 또렷이 각인한다. “수컷들은 원래 그런 거야. 쫄 거 없어, 일단 들이대!”

또 한번 그는 고백한다. 제 사랑을 모독했다고 믿는 그 사람을 향해, 제 남자다움을 욕보였다고 확신한 그 사람을 향해, 사랑을 협박한다. 그러나 아무리 온몸 다해 간절하고 애틋해도, 혼자 사랑이라면 ‘사랑’이 아니라 ‘사.’

받아들여지지 않는 고백은 당연하다. 존중하고 귀하게 여기는 사랑을 배워본 적 없는 그는, 사랑이 아니라 수컷의 남성성에만 매몰된 그는, 사랑은 곧 전쟁이라고 믿어버린다. 자신이 사랑했던 사람과 전쟁을 하겠다고 혈서를 쓴다. 어떻게든 저것을 점령해서, 내 것으로 만들고 말리라. 폐허를 만들어서라도, 내 몸에 새겨진 수컷의 각인을 똑같이 그 몸에도 새겨주리라. 사랑의 확신처럼 그의 다짐은 칼춤을 추듯 생생하게 살아난다. 내 사랑만큼은 진실이고 그 어떤 것들도 감당하며 모든 이성과 합리를 뛰어넘는, 그래서 더 남자다운 사랑, 그 ‘범죄’를 향해.

서로 어깨 겯고 왜곡된 남자다움을 추동한 자들은 “저 또라이 새끼, 저거.” 하고 끌끌 혀나 차는 게 전부다. 그러나 여성들은 또 한겹 불안을 쌓고, 겁에 질리고, 여기 이 사회와 일상을 더욱 치명적인 위협으로 감각한다. 여성이라서 죽은 게 아니라고? 역사의 골목마다 유린당한 육체가 누구의 것인지 보라. 소유물처럼, 집 안에서, 집 밖에서, 멋대로 낙인찍고, 꼬리표 달고, 돈 냈으니 마음대로 주물러도 괜찮은 몸으로 전락시키고 만 것이 어떤 성별이었는지.

왜 사랑을 하는지도 모르고 어떤 게 사랑인지도 배운 적 없는 그 염색체는, 오늘도 골목에서 기다린다. 꼿꼿이 세운 그깟 몸뚱이 하나가 제 사랑의 증거라고 믿으면서.

불과 며칠 전까지 거기에 있던 것들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폐허의 자리다. 김비 제공

골목에, 기다리고 있는 사람

골목에, 또 한 사람이 있다. 기다리고 있는 사람이다. 반가운 사람이다. “위험한 데 왜 나와 있어?”라고 말하며 다가오는 그 사람을, 기다리는 사람.

오늘은 왜 늦으시나, 어제는 나를 위해 기다려주었으니, 오늘은 내가 기다려야지. 그 골목에 휴대폰 플래시를 깜빡깜빡 켜고, 힘들게 취업한 직장 생활의 하루를 복기하고, 앞으로 어떤 미래를 그릴까, 아빠에게 빚진 마음은 어떻게 되갚을까, 그런 생각들을 별처럼 하늘 위에 하나씩 띄워보내며, 기다리고 또 기다리던 사람이 있다. 기둥마다 올라앉은 둥글고 하얀 검은 눈의 카메라를 확인하고, 제일 환한 가로등 아래가 안전하리라 믿으면서, 골목의 모퉁이를 돌아 집으로 돌아올 누군가를 기다리는 사람.

오랜만에 한번 아빠에게 달려가 와락 안겨볼까, 골목이 쩌렁쩌렁 떠나가도록 “아빠!” 소리치며 달려가볼까, 괜히 혼자서 얼굴이 발그레 겸연쩍고 어색해하는 그 사람이, 대낮같이 환한 최첨단의 가로등 아래, 가만히 지켜보기만 하는 우리의 화질 좋은 두 눈 아래, 거기에 있다. 우리 사회가 수십년 수백년에 걸쳐, 잊고 또 잊고, 삭제하고 또 삭제해버린 그 사람이, 바로 우리 앞 골목 거기에, ‘어제까지’ 있었다.

낡고 부서진 텅 빈 자리는 자꾸 말을 건다. 온전히 가득 찬 자리보다 더 많은 말들이 먼지처럼 드러나 열린다. 김비 제공
김비 _ 50대에 접어들어 성전환자의 눈으로 본 세상, 성소수자와 함께 사는 사람들과 그 풍경을 그려보고자 한다. 격주 연재.

ⓒ 한겨레신문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