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 갈망한 '황후의 노래'..초월적 무대는 올해까지만

정혁준 입력 2022. 10. 1. 15:05 수정 2022. 10. 1. 16:00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10주년 맞은 뮤지컬 <엘리자벳>
뮤지컬 <엘리자벳> 공연 장면. 이엠케이(EMK)뮤지컬컴퍼니 제공

‘자유와 죽음’. 뮤지컬 <엘리자벳>을 관통하는 키워드다. 제국의 황후는 자유를 갈망하지만, 자유를 쟁취하기 위해선 죽음을 선택해야 한다. 뮤지컬은 평생에 걸친 황후의 이런 갈등과 번민의 아이러니를 동화처럼 보여준다.

지난 8월30일 서울 용산구 블루스퀘어 신한카드홀에서 막을 올린 <엘리자벳>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황후 엘리자베트 폰 비텔스바흐(1837~1898)의 일생을 바탕으로 만든 뮤지컬이다. 1992년 오스트리아 빈에서 초연한 뒤 전세계에서 다양한 버전으로 만들어졌으며, 한국에서는 2012년 처음 공연됐다.

뮤지컬은 제국주의가 저물어가던 19세기 후반 오스트리아를 배경으로 한다. 엘리자벳은 프란츠 요제프 황제와 친언니의 상견례에 따라갔다가, 황제가 엘리자벳을 보고 첫눈에 반하면서 열여섯에 황후가 된다. 하지만 시어머니 소피는 자유분방한 엘리자벳을 못마땅해했다. 엘리자벳은 보수적인 궁정 생활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삶을 꿈꾼다.

엘리자벳은 자유를 갈망하지만, 죽음만이 대안이다. 엘리자벳은 삶과 죽음 사이에서 자유를 향한 갈망을 노래한다. 죽음을 의인화한 토드라는 인물은 평생 엘리자벳 주위를 맴돈다. 토드는 자신만이 진정한 자유를 줄 수 있다고 유혹한다. 계속되는 죽음의 유혹에도 엘리자벳은 ‘내 힘으로 자유로워질 수 있다’며 희망을 놓지 않으려고 한다. 엘리자벳·황제·토드는 삼각관계를 만들어가며 뮤지컬을 절정으로 치닫게 한다.

뮤지컬 <엘리자벳> 공연 장면. 이엠케이(EMK)뮤지컬컴퍼니 제공

작품은 엘리자벳의 자유만을 그리지는 않는다. 생존을 위한 민중의 자유와 투쟁을 대비해 보여준다. 또 엘리자벳의 호사스러운 일상과 민중의 고단한 삶을 함께 드러내며 극의 긴장을 끌어올린다. 이를 테면, 이런 식이다. 엘리자벳은 유달리 아름다움에 집착했다. 신선한 송아지 고기로 팩을 하고 우유로 목욕한다. 민중은 마실 우유조차 없어 ‘밀크’라는 넘버를 부르며 분노한다.

<엘리자벳>은 원작을 바탕으로 연출과 무대를 현지화해 새로 만드는 ‘논레플리카’ 방식이다. 한국 공연에서만 볼 수 있는 특별한 무대 연출이 눈에 띈다. 죽음의 토드가 등장할 때 나오는 11m의 거대한 브리지(다리)는 아찔함을 자아내며 초월적인 분위기를 연출한다. 토드가 죽음의 천사들과 화려한 군무를 펼치는 ‘마지막 춤’ 장면은 객석을 압도한다. 합스부르크 왕가를 재현한 화려한 세트와 370여벌의 아름다운 의상 역시 재미있는 볼거리다.

뮤지컬 <엘리자벳> 공연 장면. 이엠케이(EMK)뮤지컬컴퍼니 제공

뮤지컬을 이끌어가는 건, 당연히 엘리자벳이다. 옥주현은 초연부터 엘리자벳을 맡으며 얻은 ‘엘리자벳 장인’이라는 별명답게 극을 주도적으로 이끌어갔다. 결혼을 앞둔 10대 엘리자벳부터 아들의 죽음에 슬퍼하는 60대 ‘늙은’ 엘리자벳까지 설득력 있게 그려냈다. 죽음과 광기로 현실에서 도피하고 싶어 하는 위태로운 심리 상태는 깊이 있는 연기로 표현했다.

옥주현은 1막 대표 넘버 ‘나는 나만의 것’에서 “내 인생은 나의 것/ 나의 주인은 나야/ 난 자유를 원해”를 부를 때 자유를 갈망하는 엘리자벳의 마음을 표현하듯 폭발적인 고음을 터뜨려냈다. 2막을 대표하는 넘버 ‘아무것도’에선 “내게 구원은 오직 광기 그뿐/ 내게 구원은 오직 죽음뿐”을 부르며 결코 자유로워질 수 없는 안타까운 현실을 감정에 실어 전달했다.

뮤지컬 <엘리자벳> 포스터. 이엠케이(EMK)뮤지컬컴퍼니 제공

<엘리자벳> 개막에 앞서 배역 캐스팅에 옥주현이 개입했다는 의혹이 나오기도 했다. 제작사인 이엠케이(EMK)뮤지컬컴퍼니와 옥주현 쪽이 “캐스팅은 오디션과 원작자의 승인을 거쳤다”고 해명했지만, 뮤지컬 업계의 스타 마케팅에 대한 비판도 나왔다. 옥주현·김준수 등 스타를 내세워 뮤지컬 관객 폭을 확장했지만, 지나친 스타 의존에 따른 부작용 역시 드러났기 때문이다. 이처럼 <엘리자벳>은 빛과 그림자를 함께 드러낸 작품으로 평가됐다.

한국 초연 10주년, 다섯번째 시즌인 <엘리자벳>은 초연 때부터 이어져온 무대 연출을 볼 수 있는 마지막 공연이다. 제작사는 다음 시즌부터 무대·연출·의상 등에 대대적인 변화가 있을 것이라고 예고했다. 이번 공연은 11월13일까지 이어진다.

정혁준 기자 june@hani.co.kr

Copyright © 한겨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