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천억 혈세 투입했는데 'IT 참사' 왜 벌어졌나[최훈길의뒷담화]

최훈길 입력 2022. 10. 1. 14:51 수정 2022. 10. 1. 1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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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부 차세대 사회보장정보시스템 먹통 논란
개통 10여일 만에 6만건 넘는 오류 잇단 발생
송파 세 모녀 이후 추진된 의미 큰 시스템인데
장관 공석 등 복지 컨트롤타워 부재로 IT 참사
6일 국감.."IT 통한 위기가구 지원 재정비해야"

[이데일리 최훈길 기자] 6만1401건.

보건복지부의 차세대 사회보장정보시스템이 2차 개통된 지난 6일부터 22일까지 신고된 오류 건수입니다. 시스템이 먹통이 됐고, 하루에 많게는 6000건 넘는 오류가 신고됐습니다. 차세대 사회보장정보시스템 사업은 사회보장정보시스템을 12년 만에 전면 개편하는 것입니다. 8년간 총 3496억원에 달하는 예산이 투입됩니다. 이같은 대규모 정부 프로젝트인데 불과 10여일 만에 6만건 넘는 오류가 왜 발생했을까요.

차세대 사회보장정보시스템 구축 필요성은 8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2014년 2월 당시 송파 세 모녀가 생활고에 시달리다 극단적 선택을 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이 사건은 우리 사회의 복지 사각지대 민낯을 보여줬습니다. 이후 국민기초생활보장법 개정안 등 후속조치가 잇따랐고, 2018년 5월 차세대 사회보장정보시스템이 예비타당성 조사를 통과했습니다. 차세대 사회보장정보시스템은 송파 세 모녀가 우리 사회에 남기고 간 ‘유산’이었던 것입니다.

이 시스템은 주목을 받았습니다. ‘찾아가는 맞춤형 서비스’였기 때문입니다. 그동안 2700만명에 이르는 복지 대상자들은 일일이 서류를 챙겨 복지서비스를 신청했습니다. 내게 필요한 정보를 몰라서 신청 못하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이 이스템에 일단 한 번만 신청해 놓으면 나머지는 알아서 조치 됩니다. 안내, 처리, 서류 준비 등이 자동으로 진행됩니다. 송파 세 모녀처럼 위기가구를 국가가 먼저 찾아 복지를 제공할 수 있는 것입니다.

박모씨(61)와 큰딸 김모씨(35), 작은딸(32)이 2014년 2월 26일 오후 9시 20분쯤 서울 송파구 석촌동의 한 단독주택 지하 1층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현장에서는 세 모녀가 집주인에게 “정말 죄송합니다”라며 남긴 메모와 현금 70만 원이 든 흰색 봉투가 발견됐다. 이들은 월세 38만원에 전기요금 12만원, 건강보험료 4만9000원가량을 지불했는데 생활고로 극단적 선택을 했다. ‘송파 세 모녀 사건’은 우리 사회의 복지 사각지대 민낯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며 충격을 안겼다. (사진=서울경찰청)

준비 미흡했는데 왜 개통 강행했나

이렇게 사회적 의미가 크고 수년간 준비했는데, 6만건 넘는 오류가 발생한 것은 쉽게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통화에서 “구축하는 시스템 규모가 커지다 보니 오류도 과거보다 많아진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시스템 구축에 참여한 사회보장정보원의 노대명 원장도 지난달 19일 기자간담회에서 시스템 오류 원인을 ‘데이터 규모’ 탓으로 돌렸습니다. 이 시스템은 126개 기관과 2700여개의 데이터를 연계합니다.

시스템에 참여한 기업 책임론도 제기됩니다. 이번 시스템은 지자체 공무원용 ‘행복이음’, 사회복지시설 종사자용 ‘희망이음’, 대국민 서비스인 ‘복지로’로 구성됐습니다. ‘공공 소프트웨어(SW)사업 대기업 참여제한’ 제도에 따라, 대·중소기업이 컨소시엄을 맺었습니다. 한국정보기술이 행복이음, VTW는 희망이음, LG CNS는 복지로 구축을 맡았습니다. 이번 오류는 한국정보기술, VTW가 맡은 부분에서 집중적으로 발생했습니다.

이들 중소업체에서 개발자들이 잇따라 퇴사하면서 제때 프로젝트를 완료할 수 없었던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일각에선 대·중소기업 동반성장 취지로 도입된 ‘공공SW 대기업 참여 제한’ 제도로 시스템 성능이 떨어졌다는 지적도 제기됩니다. 반면 중소기업 측에서는 LG CNS가 담당한 데이터 이관이 완벽하게 되지 않은 여파라고 밝혔습니다. 어찌 됐든 대·중소기업 간 팀워크 과정이 원활하지 못한 것도 원인 중 하나입니다.

차세대 사회보장정보시스템이 개통된 지난 6일부터 22일까지 신고된 오류가 6만1401건에 달했다. 보건복지부가 조치를 완료했다고 밝힌 지난 16일 이후에도 오류 신고가 2만3106건(파란색 표시 부분) 접수됐다. (사진=신현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실)

그럼에도 아쉬운 점은 복지부가 무리하게 개통을 강행한 점입니다. 이렇게 준비가 미흡했다면 개통 시기를 늦추는 게 맞습니다. 개통 시기를 늦춰서 철저하게 준비하고 개통했다면 6만건 넘는 오류는 발생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물론 실무를 맡은 공무원이나 시스템 구축에 참여한 기업들이 이같은 의견을 내는 게 쉽지 않습니다. 관리·감독을 맡고 있는 윗선에서 이같은 결정을 선제적으로 했다면 지금과 같은 사태는 벌어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복지 컨트롤타워 부재가 빚은 IT 참사

하지만 컨트롤타워 역할을 해야 할 보건복지부 장관 자리는 현재도 공석입니다. 정호영·김승희 전 후보자가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로 잇따라 지목됐지만, 모두 낙마했습니다. 정호영·김승희 전 후보자 중 누군가가 임명됐더라도 이들 모두 복지 전문가는 아닙니다. IT 시스템을 정비해 위기가구 발굴·구제를 하려면 꼼꼼한 복지 전문성이 필요한데, 그동안 인사가 이를 제대로 고려했는지 의문입니다.

보건복지위 신현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통화에서 “방대한 시스템 개편인데 서로 원활한 조율 없이 각자 자기 업무만 했다”며 “복지부 장관 공석으로 제대로 된 결정을 하지 못하고, 인사이트를 가지고 미리 내다보지 못하고 무리하게 개통하는데 급급했다”고 꼬집었습니다. 개별 공무원·기업의 잘잘못을 넘어 전체를 총괄·조정하는 컨트롤타워 부재에 따른 결과라는 지적입니다.

(사진=보건복지부)

오는 6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국정감사에서는 이번 사태 원인, 대책을 놓고 전방위 논의가 될 전망입니다. 조규홍 복지부 장관 후보자는 지난달 27일 인사청문회에서 “기재부 출신이기 때문에 더 거시적이고 장기적인 시계에서 정책을 설계할 수 있다”며 기재부 출신 논란에 선을 그었습니다.

송파 세 모녀 사건 이후에도 올해 세종·수원 등 곳곳에서 극단적 선택을 하는 위기가구가 잇따르고 있습니다. IT 기술을 통해 위기가구를 선제적으로 찾고 지원하는 체계를 강화해야 합니다. 복지 컨트롤타워가 지금처럼 공석이거나 정치적 논란에 휩싸일 경우 제2·제3의 송파 세 모녀 사건이 재발할 수밖에 없습니다. 살림살이가 점점 팍팍해 지는 오늘, 복지 컨트롤타워의 부재가 정책 오류와 혼선으로 더이상 이어지지 않길 바랍니다.

※이슈나 정책 논의 과정의 뒷이야기를 추적해 전합니다.

최훈길 (choigiga@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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