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바속촉'형 인간이 사진기를 놓지 않은 이유[영감 한 스푼]

김태언 기자 입력 2022. 10. 1.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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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동아일보 김태언 기자입니다.

시작 전 한 가지 질문을 드립니다.

다정한 느낌을 풍기는 글, 그림, 사진, 영상이 있다고 가정해봅시다. 괜스레 그 작가를 만나보고 싶어집니다. 뜻하지 않게 작가를 만나게 됐습니다. 신난 마음에 말을 걸었는데, 생각보다 무심합니다. 이때 여러분은 어떤 생각이 드시나요?

‘뭐지? 내가 마음에 안 드나?’
‘내가 잘못 판단했군. 별로네.’
‘속았다. 작품은 꾸며낸 건가?’

여러 가지 감정이 들 겁니다. 그런데 더 호기심이 생긴 분은 없으셨나요? 전 어떤 이와 그가 표현해낸 무언가 사이에 괴리가 있을 때 ‘더 친해지고 싶다’고 생각했던 적이 종종 있었습니다. 괜한 오기였을 수도 있습니다.

제가 이상하게 느껴지신다면, 오늘 레터를 천천히 읽어봐 주세요. 오랫동안 베일에 싸여있었던 사진가 비비안 마이어(1926~2009)는 냉정하고도 다정한, 쉽게 단정 짓기 어려운 인물입니다.
사람이 사람을 좋아하는 방법
사람이 사람을 좋아하는 방법1. 보모로 일해 온 비비안 마이어는 사후에 그의 수많은 사진이 공개되며 명성을 얻는다. 잘 알려지지 않은 비비안의 생애는 대중의 호기심을 사기 충분했다.2. 그를 스쳤던 고용주들과 아이들은 속내를 잘 비추지 않는 비비안을 ‘엄격하고 냉정한 사람’이라 기억했지만, 비비안의 사진에는 순수한 인간애가 흐른다. 3. 이는 비비안의 유년기로 설명된다. 그는 가족의 분열과 불안정한 부모를 경험했다. 그는 과거와 절연하고 사람들과 거리를 두며 스스로를 보호했다. 하지만 사람과 세상에 관심이 많았고, 이는 사진으로 드러났다.
스스로 무명을 택한다

2007년, 미국 시카고 경매장에는 무명 사진작가가 찍은 네거티브 필름이 다수 출품됐습니다. 당시 역사학도였던 존 말 루프는 자신의 책에 실을 만한 사진이 있을까 싶어 이 필름들을 샀습니다. 사진을 찍은 이는 ‘비비안 마이어’. 인터넷을 뒤져도 나오는 정보는 없었습니다. 그러다 2년 뒤, 신문에서 이 작가의 부고를 발견하곤 그에 대한 정보를 수집합니다.

뉴욕, 1953 ©Estate of Vivian Maier, Courtesy of Maloof Collection and Howard Greenberg Gallery, NY


비비안은 한 마디로 설명하기 어려운 작가였습니다. 평생을 평범한 보모로 살았는데, 그의 창고에는 14만 장의 사진이 방치되어있었죠. 이 소식을 들은 대중들은 비비안의 ‘별나지 않은 생활과 눈에 띄는 재능’이라는 갭을 매혹적으로 받아들였습니다.

비비안은 파헤칠수록 비밀스러웠습니다. 비비안과 교류했던 사람 중에는 그와 친밀한 사람이 아주 적었습니다. 그의 과거는 물론이며, 심지어 어떤 고용주는 비비안이 사진을 찍는 줄도 몰랐습니다. 비비안은 자신의 사진을 쉽게 보여주지 않았거든요. 겉으로 보기에 그는 그저 한 집에서 다른 집으로 이동하는 삶을 살았던 겁니다. 스스로 무명을 택했던 거죠.

왜일까요? 책 ‘비비안 마이어: 보모 사진작가의 알려지지 않은 삶을 현상하다’(북하우스)에 따르면 그는 자신의 과거와 단절하기로 작정한 듯합니다. 비비안의 유년기는 불행했습니다. 알코올 중독자 아버지, 그와 이혼 후 심각한 정신질환을 앓던 어머니, 조현병 환자인 오빠까지. “과거를 빼앗긴 사람들이 가장 열정적으로 사진을 찍게 되는 것 같다”는 수전 손택의 말처럼 비비안은 24살이 되던 해부터 40년간 사진기를 놓지 않습니다.

자신의 이야기를 쉽게 말하지 않는 그에게 사람들은 거리감을 느꼈습니다. 비비안이 본인 몸보다 훨씬 큰 남성복을 입거나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았던 것도 자신을 방어하기 위함이었겠죠. 실제 비비안이 돌봤던 다수의 아이들은 자신의 보모가 “차갑고 다가가기 힘든 사람”이라며 정서적 유대가 없었다고 회상했습니다.
비극을 볼 줄 아는 사진가

특이한 건 그의 사진은 무심한 느낌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비비안이 찍은 사진은 그를 전혀 다른 사람처럼 느껴지게 합니다.

그라운드시소 성수 전시장 촬영


그라운드시소 성수 전시장 촬영


비비안은 행인들의 뒷모습과 신체 일부를 찍곤 했습니다. 그의 트레이드마크죠. 잘게 주름진 손등, 터진 양말과 지팡이, 아이들을 꼭 부여잡은 양손. 비비안은 아주 사소한 몸짓으로 전체 이야기를 전달할 줄 아는 작가였습니다.

뉴욕, 1954 ©Estate of Vivian Maier, Courtesy of Maloof Collection and Howard Greenberg Gallery, NY


촬영 대상은 부유한 사람부터 거리의 부랑자까지 다양했습니다. 비비안에게는 거리를 지나는 사람이라면, 인종ㆍ계급ㆍ빈부 그 무엇도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보통 원샷(한 프레임에 한 사람만을 담은 샷)으로 피사체를 담았는데요. 세월을 지내온 한 인간에 대한 호기심과 탐구심이 고스란히 드러납니다.

뉴욕공공도서관, 1954년경 ©Estate of Vivian Maier, Courtesy of Maloof Collection and Howard Greenberg Gallery, NY
뉴욕, 1954 , 그라운드시소 성수 전시장 촬영


실제로 비비안이 보모로 가장 오래 일했던 겐스버그가의 세 아이는 그를 달리 기억합니다. 이들은 말년에 숙소를 구해주고, 비비안이 사망한 후에도 부고를 내며 그를 “두 번째 엄마”라 칭합니다. 자신들을 16년간 돌봐준 그를 두고 “그녀를 아는 모든 사람의 삶을 마법처럼 감동시킨 자유롭고 친절한 영혼”이라고 설명했죠.

이런 유대감이 쉽게 만들어졌을 리 없습니다. 겐스버그 가족은 비비안을 가족의 일원으로 받아들여 명절이나 휴가철에도 함께 했습니다. 비비안이 당시 찍은 홈 무비를 보면 비비안도 아이들을 많이 사랑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그는 아이들을 한껏 안고 여러 번 입을 맞추고, 평온하게 웃습니다. 그는 이곳에서 생전 처음 장기간의 안락함과 사랑을 느꼈던 듯합니다. 아이들이 성장해 떠나야 하는 때가 왔을 때, 비비안의 작품 기류는 급격히 바뀝니다. 이 가족과의 결별이 비비안의 내면을 무너뜨렸던 겁니다.
내 안의 모순을 이해하는 법

겐스버그 가족과 헤어질 즈음인 1966년 말부터 그는 갑자기 신문의 모든 면을 사진에 담습니다. 비비안의 창고가 발견됐을 때, 그 안에는 8톤에 달하는 신문과 인화하지 않은 사진이 쌓여있었는데요. 이는 그가 ‘저장강박증’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려줍니다. 실제로 비비안은 저장강박증 때문에 해고된 적이 여러 번 있었고요.

저장강박증은 사용 여부와는 상관없이 물건을 버리지 못하고 일단 저장해두는 강박장애의 일종입니다. 정신의학적 측면으로 보자면, 어린 시절 충분한 사랑을 받지 못하거나 좌절과 분열을 경험한 사람은 낮은 자존감과 정체성 혼란에 시달리다가 통제감을 얻기 위해 무언가를 강박적으로 수집한다고 합니다. 감정의 깊은 공허함을 채우려고 사람이 아닌 물건에 집착한다는 말이죠.

사진도 신문처럼 비비안에게는 무언가를 저장하는 행위였습니다. 사진은 피사체를 찰나의 순간에 붙잡아놓으니까요. 여기서 비비안이 사진을 많이 현상하지 않은 이유가 일부 설명됩니다. 궁극적으로 자신이 찍은 사진을 ‘보고 싶다’기보다는 ‘찍고 싶다’는 욕망이 훨씬 컸던 거죠.

캐나다, 1955 ©Estate of Vivian Maier, Courtesy of Maloof Collection and Howard Greenberg Gallery, NY


그리고 찍는 행위에 진심이었다는 것은 그의 작품이 말해줍니다. 비비안의 사진은 그가 사진을 찍는 순간 어떤 모습이었고 무엇을 느꼈는지 상상하게 합니다. 쪼그려 찍었음이 분명한 거리의 아이들, 혼자인 자신 뒤에서 친밀하게 기대어 잠든 노부부. 능력을 과시하려는 것이 아닌, 오로지 자기만족을 위해 찍은 사진들이 아니고서는 느낄 수 없는 순수함이 비비안 작품의 강력한 특징입니다.

오래 지속되는 사랑, 플로리다, 1960 ©Estate of Vivian Maier, Courtesy of Maloof Collection and Howard Greenberg Gallery, NY


차가운 외면을 하고서는 그렇지 못한 작품을 남긴 작가. 작품성에 대한 평가는 갈릴지언정, 비비안의 진심이 잔잔한 감동을 주는 것은 사실입니다. 직접 사람을 대면하기 힘들었던 그는 사진기를 방패 삼아 인간이라는 존재에 다가갔던 것은 아닐까요? 그리고 그렇게 비비안은 온기 있는 본래 자신의 모습에 가까워지는 중이었을지 모릅니다.

여러분에겐 비비안의 사진과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이 있나요? 남들의 평가 말고, 진정 ‘나’의 모습을 띠고 있는 건 언제, 무엇을 할 때인가요? 서투른 관계 맺음으로 진짜 내 모습을 드러내기 어려웠던 경험이 있다면, 우리도 비비안 같은 이들에게 한 번쯤은 손 내밀어 봐도 좋을 것 같습니다.

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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