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지개빛 거미줄, 아침이슬에 보석같이 반짝이는 길상사 '이삭여뀌'

정충신 기자 입력 2022. 10. 1. 10:30 수정 2022. 10. 1.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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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성북동 길상사 경내 붉은 이삭여뀌에 걸린 거미줄에 아침이슬이 맺혀 햇살을 받아 무지개빛으로 영롱하게 반짝이고 있다. 9월24일 촬영
성북동 길상사 경내 이삭여뀌에 걸린 거미줄이 아침 햇살에 무지개빛으로 영롱하게 반짝이고 있다. 9월24일 촬영
성북동 길상사 경내 초가을은 곳곳에 붉은 이삭여뀌가 무리지어 피어 있어 운치를 더한다. 꽃과 열매가 맺힌 모습. 9월24일 촬영
개여뀌에 배추흰나비가 꿀을 빠는 모습. 여뀌를 자세히 살펴보면 열매처럼 보이는 작은 알갱이들이 모두 꽃이란 것을 알 수 있다. 경남 남해 지족. 2019년 10월1일 촬영
개울가에 자라는 개여뀌. 여뀌는 물터 가장자리처럼 서식처가 아주 불안정한 곳, 하천이나 개울가의 흐르는 물살에 의해 새롭게 만들어진 땅에서 살며 일시적으로 적합한 서식환경이 만들어지면 종자은행에서 일제히 발아해 군락을 만든다. 경남 남해 지족 촬영. 2018년 9월23일

■정충신의 꽃·나무 카페

잡초 취급 받지만 음식 향신료, 약재로도 사용된 풀

개여뀌· 이삭여뀌·기생여뀌·털여뀌 등 여뀌 30여종

꽃말은 개여뀌‘날 생각해 주렴’…이삭여뀌는 ‘신중’

지난 주말 이틀 연속 꽃무릇을 촬영하러 서울 성북동 길상사를 찾았습니다. 법정스님의 법향이 깃들어 있는 길상사의 초가을은 참취꽃, 층층나무꽃, 누린내꽃, 투구꽃, 개미취, 바위취, 한라돌쩌귀, 도라지꽃, 맥문동 등 우리꽃이 지천인 맑고 향기로운 도량입니다. 서울 도심에서 가까운 우리꽃 촬영 명소로 진사들의 발걸음이 잦은 곳입니다.

첫날 오후 꽃무릇 곁에 붉은 쌀알 달린 이삭여뀌를 우연히 발견하게 됐습니다. 다음날 햇살에 환하게 웃는 꽃무릇을 만나러 갔다가 이삭여뀌 군락지를 발견하게 됐습니다. 햇살 받은 누린내꽃을 촬영하다가 가늘디 가늘어 폰카로는 초점이 잘 맞지 않는 이삭여뀌를 촬영하다가 이삭여뀌에 매달린 무지개빛 거미줄이 렌즈에 담겼습니다.

길상사 거미는 무지개 거미줄을 뽑아내는 용빼는 재주라도 있는 걸까요? 자세히 보니 거미줄에 알알이 맺힌 아침 이슬에 아침 햇발이 반사돼 영롱한 무지개빛 거미줄이 완성됐습니다. 이슬 맺은 이삭여뀌 역시 영롱한 빛을 발했습니다.

여뀌는 사람의 발길이 잘 닿지 않는 눈두렁이나 개울가, 숲속에서 자라며 물을 따라 씨를 퍼뜨리는 한해살이풀로 마디풀과에 속합니다.물터 가장자리처럼 서식처가 아주 불안정한 곳, 즉 하천이나 개울가의 흐르는 물살에 의해 새롭게 만들어진 땅에서 주로 서식합니다.

여뀌는 아시아 전역에 걸쳐서 광역 분포하며 주로 난온대의 온난한 기후지역을 중심으로 널리 분포합니다. 매년 늦여름부터 가을까지 우리나라를 비롯한 아시아 전역에서 꽃을 피웁니다. 여뀌는 붉은색, 흰색, 분홍색 꽃을 피우는데 우리나라에선 붉은색 꽃이 주종을 이루지요.

우리나라에서 자라는 여뀌 종류는 30여가지입니다. 가장 눈에 많이 띄는 것이 개여뀌와 이삭여뀌이고, 여뀌, 털여뀌, 가시여뀌, 물여뀌, 기생여뀌, 바보여뀌, 붉은 여귀, 버들여뀌 등 구분하기도 쉽지 않습니다.

이삭여뀌는 원줄기 끝과 윗부분에 꽃이 드문드문 달리며 빨간 꽃이 너무 작아 꽃이 피어 있는 줄도 모르고 지나치기 쉽습니다. 잎은 어긋나기로 자라는데 어릴 때 잎은 커다란 흑색 반점이 있다가 성숙하면서 이 무늬가 사라집니다. 이삭여뀌 꽃말은 ‘신중’‘숙원’입니다.

여뀌 종류 중 가장 자주 띄는 개여뀌 역시 물가에 군락을 이루는 경우가 많습니다. 꽃을 피워도 보잘 것이 없어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야생화인 개여뀌 꽃말은 ‘날 생각해주렴’입니다.

<다 필요 없어/제발 버려줘 잊어줘/우리끼리 잘도 자랄 테니깐,//눈 밖에서 더 잘 크는 놈들/모가지에 벌겋게 독 오른 놈들/목젖 가득 차오는 폐단을 주체할 수 없어/아무나 잡고 맞짱 뜨자는 놈들//모래밭에 떼거리로 서서/온몸을 긁고 있었다//무서워서 아들놈을 재촉하며 돌아오는데/야, 그냥 가냐. 그냥 가!/아스팔트 산책로에 들어설 때까지/등 뒤에서 감자를 먹였다//중랑천변 모래밭, 여뀌들>

정병근 시인의 ‘여뀌들’입니다. 거친 벌판에 자라는 여뀌는 농촌에서는 성가신 잡초 취급을 받습니다. 정병근 시인은 어른들의 따뜻한 보살핌에서 벗어나 생명력 강한 끈질긴 잡초같은 아이들을 여뀌에 비유합니다.

여뀌 중에서 가장 기품 있는 게 기생여뀌입니다. 보슬거리는 솜털이 잔뜩 나 있어 ‘털여뀌’로 오해받기도 한다는군요.전체가 은근한 붉은빛을 띠고 휘어질 듯 날씬하고 키가 크며 고운 꽃을 피고 향기가 있는 기생여뀌는 곱고 아리따운 여인 같은 꽃이라 기생여뀌라 불리는 모양입니다.

여뀌라는 이름의 유래는 정확하게 알려진 바는 없습니다. 귀신을 쫓는다는 의미의 한자 역귀(逆鬼)에서 유래됐다는 견해가 많습니다. 여뀌는 엿귀, 엿귀 또는 엿긔, 엿괴에서 유래하고 역귀풀이라고도 합니다. 북부지방과 만주지역 방언으로 역귀, 들여뀌, 버들여뀌, 맵쟁이, 매운여뀌, 버들번지 따위가 있습니다. 이들 방언 가운데 맵쟁이란 정겨운 우리말도 있습니다. 여뀌(엿긔)는 꽃차례에 작은 열매가 엮어져 있는 형상에서 비롯하는 이름으로 추정되기도 합니다. 꽃대 하나에 종자 여럿이 줄줄이 매달려 얽혀 있는 형국을 빗댄 말로 추정됩니다.

여뀌는 귀신을 물리치는 꽃입니다. 여뀌는 길게 뻗는 줄기 위로 작은 꽃들이 촘촘하게 나는 게 특징입니다. 수많은 꽃들이 대롱대롱 매달린 것이 인상적이지요. 집 가까이 이를 심어두면 잡귀가 그 꽃을 세다가 집안에는 들어가지도 못하고 밤을 꼬박 샌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붉은 꽃이 귀신을 쫓는다는 이야기도 있고, 잎이 매워서 귀신이 달아난다는 설도 있습니다.

여뀌는 영어로 ‘물후추(Water Pepper)’라고 불립니다. 식물체 전체에 매운 맛이 납니다. 어린 시절 여뀌풀을 돌로 찧어서 물에 풀면 물고기들이 맵고 독한 맛에 기절해 떠오르면 잡던 추억의 풀입니다.

잡초 취급 받는 여뀌이지만 매운 성질을 이용해서 요리에 사용하는 등 쓰임새가 매우 다채롭습니다. 여뀌는 염색하거나 음식의 향신료, 약재로 쓰여왔습니다.

이용하는 등 식물체 전체가 아주 유용한 자원으로 전해내려옵니다. 역사적인 요리서인 15세기 중엽의 ‘산가요록’은 가장 자주 이용되는 들풀 가운데 하나로 여뀌를 소개합니다.

여뀌의 어린잎은 데치거나 삶아서 나물로 먹었다고 합니다. 술을 빚을 때 쓰이는 누룩을 제조할 때 여뀌의 즙을 넣으면 술이 쉽게 쉬지 않는다고 합니다. 일본에선 여뀌를 생선요리의 비린내를 없애는 향신료로 사용한다는군요. 동의보감은 여뀌가 혈액 순환을 원활하게 하는 효능을 가지고 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여뀌 추출물이 항염 및 면역억제, 항산화 효과를 인정받아 특허를 취득하기도 했습니다.

글·사진=정충신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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