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장이요~" 이재용도 찐단골..하루 4000그릇 팔리는 음식 [최지희의 셀프 체크인]
[최지희의 셀프 체크인]은 한국경제신문 여행·레저기자가 여행의 또 다른 즐거움을 소개합니다. 미처 몰랐던 가까운 골목의 매력부터, 먼 곳의 새로운 사실까지 파헤쳐봅니다. 매주 새로운 테마로 '랜선 여행'을 즐겨보세요.
하지만 오늘 소개하는 이들에게 456억은 어찌 보면 '적은 돈'일수도 있겠습니다. 재산이'조(兆) 단위'인 삼성家 이야기입니다.
독자 여러분들은 8조 자산가라면 매일 무엇을 먹을 건가요? 비싼 호텔 뷔페, 빌딩 스카이라운지 … 이런 럭셔리 레스토랑들이 먼저 떠오를 겁니다.
하지만 오랜 소문에 의하면, 삼성 오너 일가는 생각 외로 검소한 생활을 즐기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실제 이재용 부회장의 가석방 날, '뿌링클'로 유명한 한 치킨 프랜차이즈의 배달 오토바이가 집 문 앞에 서 있었던 것만으로 화제가 됐습니다.
이번 [셀프 체크인]에서는 삼성의 가족들이 사랑한 맛집을 소개합니다. 8조가 없어도 … 즐길 수 있는 곳이 많습니다.
천하의 이재용 부회장도 줄 서게 만드는 '한 그릇'
서울 시청역 9번출구 바로 뒤, 터줏대감처럼 서소문동을 지키고 있는 한 식당이 있습니다. 사실 식사시간에는 '이 곳이 어디에 있나' 찾아갈 필요도 없습니다.
가게 문 앞에 길게 늘어선 줄 때문입니다. 회전율이 굉장히 빠름에도 불구하고 여름, 평일 점심시간에는 40분 가량을 기다려야 합니다.
콩국수를 전문으로 파는 '진주회관'이 그 주인공입니다. 1965년부터 영업을 시작했습니다. 5년 전만 해도 1만원에 한 그릇을 먹을 수 있었지만, 지금은 한 그릇에 1만3000원까지 올랐습니다. 콩국수에 관심이 있다면 모를 수가 없을 정도로 서울의 대표적인 노포로 자리매김했습니다.
안으로 들어가면 콩국수 가게보다는 고깃집같은 분위기가 풍깁니다. 사실 '회관'이라는 이름도 예로부터 고깃집에 많이 붙는 명칭이었죠. 콩국수로 많이 알려져 있지만, 이 집은 고기가 메인인 고깃집으로 장사를 시작했습니다.
콩국수는 '곁들이 메뉴'였죠. 하지만 "콩국수가 맛있다"며 몰려드는 손님들 때문에 주객이 전도된 셈입니다. 실제 점심에는 고기 주문을 받지 않는다고 합니다.
자리에 앉아 주문을 합니다. 무조건 선불입니다. 주문하면 기다렸다는 듯 2-3분 만에 콩국수가 나옵니다. 계산시간도 없는데다, 음식 조리시간도 짧아 사람이 많아도 회전율이 좋습니다.
1층에 4개의 큰 홀이 있고, 2층에도 룸 형식의 테이블이 많이 있지만, 11시 30분만 돼도 이미 만석입니다. 여름엔 하루 4000그릇이 팔린다고 하니, 북새통일 수밖에 없습니다.
이곳은 이건희 회장이 병원에 입원하기 전에 가장 많이 찾은 식당으로 익히 알려져 있습니다. 가게 내부 벽면에는 이건희, 이재용 부자의 친필 사인까지 붙어 있습니다. '인증 완료'입니다.
소문에 의하면, 이건희 회장이 아들 이재용 부회장에게 병원으로 '콩국수 심부름'을 시켰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실제로 이 부회장은 진주회관 '포장 단골'이라고 합니다.
달지도, 또 짜지도 않은 이른바 '콩국수의 표준'이라고 할만한 맛입니다. 이곳은 2대째 영업중이며, 후손에 대물림을 준비하고 있다고 합니다. 삼성가 외에도 이명박 전 대통령, 오세훈 서울시장 등 정치인들의 발걸음도 이끌었습니다. 걸쭉한 스타일의 콩국수입니다.
별미는 같이 나오는 김치입니다. 첫 입은 '심심한데?' 싶어도, 계속 먹게 만드는 묘한 매력이 있습니다. 1만3000원으로 삼성가의 단골 식당을 즐겨보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이병철 회장이 사랑했던 메뉴만 모아 … '삼성 세트' 파는 식당
우리나라에서 가장 유동인구가 많은 곳 중 하나. 직장인들, 연인들, 가족들이 모두 모이는 곳. 바로 '을지로 입구'입니다. 여러 은행과 금융사가 늘어서 있는 이곳엔 국내에서 가장 큰 백화점 점포 중 하나인 롯데백화점 본점이 있습니다. 이곳에 또 삼성이 사랑한 소박하지만 고급스러운 식당이 있습니다.
롯데백화점 바로 맞은편, 빼꼼히 초록색 간판 하나가 눈에 보입니다. 짙은 초록 바탕에 흰색 영어로 쓰여진 간판은 어떻게 보면 약간 촌스러워 보이기까지 합니다.
'라 칸티나'. 이탈리아어로 '지하실'을 뜻하는 그 이름처럼, 한 계단 지하로 내려오면 투박한 문이 손님들을 맞이합니다.
이곳은 삼성의 창업주 이병철 회장이 자주 찾았던 곳으로 유명합니다. 이 회장이 즐겨 찾던 메뉴들만 모아놓은 코스는 일명 '삼성 세트'라고 불립니다. 하지만 이곳 '라 칸티나'는 삼성 단골 식당 그 이상의 의미가 있습니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처음으로 문을 연 이탈리안 식당이라는 사실입니다.
대한민국 최초의 '양식당'이라고 불릴 수 있는 곳은 1900년대 초반에 개업한 '명월관' 입니다. 1920년대엔 프랑스 음식을 선보이는 '팜코트'가 서울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지금도 운영하고 있는 웨스틴조선호텔 '나인스 게이트'의 전신입니다.
당시 팜코트에서는 에그 베네딕트가 가장 잘 팔리는 메뉴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1967년, ;라 칸티나가 문을 열었습니다. 개업은 지금으로부터 50여 년 전이지만, 이 식당은 지금도 굳건하게 서울 중심에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삼성 세트'에는 총 네 가지의 메뉴가 있습니다. 처음엔 없으면 괜히 서운한 식전빵이 나옵니다. 포카치아, 사워도우 등을 주는 요즘(?) 이탈리안 식당들과 다르게 이곳은 추억의 마늘빵을 제공합니다.
이어 식전 수프가 식탁에 오릅니다. 양파로 만든 프랑스식 수프는 다음 음식을 위한 입맛을 돋구기에 충분합니다. 특히 옛날 느낌이 물씬 풍기는 양식 그릇에 귀엽게 담긴 것이 포인트입니다.
식전 음식을 다 먹었다면, 본식 요리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첫번째 요리는 이병철 회장이 가장 사랑했던 것으로 알려진 봉골레 파스타입니다. 기름이 많고 맛이 진한 요즘 트렌드와는 다르게, 이곳은 국물이 흥건하고 조갯살이 많이 들어가 있어 마치 조갯국에 빠진 파스타 면을 먹는 듯한 기분이 듭니다.
간도 세지 않아 담백하게 계속 손이 가는 맛입니다. 먹을 때는 잘 모르지만, 먹고 나오면 이병철 회장이 왜 이곳의 단골이 되었는지 고개가 끄덕여지는, 계속 생각나는 맛입니다.
두 번째 요리는 스테이크입니다. 호주산 고기를 사용했습니다. 야채와 함께 놓여진 고기 덩어리는 투박하지만 먹음직스러워 보입니다. 굽기는 선택할 수 있습니다. 트렌디한 고급 레스토랑을 생각하면 이 곳의 스테이크는 상대적으로 평범한 맛이지만, 50년간 쌓아온 내공의 맛은 충분히 느낄 수 있습니다.
배부르게 식사를 끝낸 후 디저트 타임. 70년대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커피잔에 블랙 커피가 담겨 나옵니다. 이어 케이크, 베이커리를 제공하는 현대식 이탈리안 식당과 달리 이곳은 과일이 디저트로 손님 앞에 오릅니다. 마치 할머니 집에서 밥을 먹은 후 무조건 과일이 나오는 것처럼 말이죠. 추억의 맛입니다.
애피타이저, 본식, 디저트 세 코스로 빈틈 없이 구성된 삼성 세트의 가격은 얼마일까요. 이병철 회장이 즐겨 찾던 음식들이라니 왠지 지갑 열기가 두려워집니다.
하지만 영수증에 찍힌 가격은 4만 5000원. 5만원 미만의 가격으로 삼성가 오너가 먹던 이탈리안 코스를 즐길 수 있습니다.
흔히 '재벌'이라고 하면 꽤 사치스러운 이미지가 떠오르기 마련입니다. 비싼 차를 타고, 비싼 옷을 입는 것처럼, 일반인들이 상상하지 못하는 캐비어, 랍스터 같은 비싼 음식만 매일 먹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죠.
하지만 이들이 즐기던 음식은 상상 외로 소박하고 아기자기합니다. 때론 8조는 커녕 한 달에 800만원만 벌어도 '땡큐'인 직장인들이 더 비싼 음식을 즐기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이번 주말엔, 진주회관과 라 칸티나에서 '재벌 식사체험' 어떠신가요?
최지희 기자 mymasaki@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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