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대통령 떳떳하다면 '비속어 논란'에 왜 성낼까

한겨레 2022. 10. 1.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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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S] 이승한의 술탄 오브 더 티브이][한겨레S] 이승한의 술탄 오브 더 티브이 _ 대통령의 말실수
권성동 전 국민의힘 원내대표(가운데), 박대출 ‘엠비시 편파·조작방송 진상규명 티에프’ 위원장(오른쪽) 등 국민의힘 의원들이 지난 28일 오전 서울 여의도 문화방송 앞에서 윤석열 대통령 해외 순방 보도와 관련해 항의하고 있다.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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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출생 신고서를 공개했을 뿐만 아니라, 한 걸음 더 나아가려 합니다. 오늘, 사상 처음으로 제 공식적인 출생 장면을 담은 비디오를 공개합니다. 지난 50년 동안 그 누구도, 저조차도 보지 못한 영상인데요. 일단 보시죠.”

백악관 출입기자 연례 만찬 행사에서 연설에 나선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의혹을 밝혀줄 영상이 있다고 운을 뗐다. 그러고는 연찬장 곳곳에 설치된 대형 스크린마다, 애니메이션 영화 <라이온 킹>(1994)의 주인공 새끼사자 심바의 탄생 장면이 재생되었다. “아… 말짱 도루묵이 됐네요. <폭스 뉴스>를 위해 명확하게 해두자면, 방금 그건 농담이었습니다.”

그 무렵 보수 성향의 케이블 뉴스채널 <폭스 뉴스>는 오바마의 출생 신고서를 찾아야 한다고 열을 올리던 중이었다. 미국 헌법상 미국 영토에서 출생한 미국 시민만이 대통령이 될 수 있는데, 오바마가 미국이 아니라 케냐에서 출생했다는 루머가 있으며 그 진위 여부를 밝혀야 한다는 주장을 반복했던 것이다. <시엔엔>(CNN)을 제치고 케이블 뉴스채널 시청률 1위를 기록하는 <폭스 뉴스>가 이런 루머를 연일 확산시켰으니, 오바마의 입장에서 해당 이슈가 그다지 반갑지는 않았을 테다. 그러나 권력을 자유롭게 비판해도 된다는 걸 강조하기 위해 대통령이 자기 자신을 농담의 소재로 삼곤 하는 백악관 출입기자 연례 만찬의 전통에 따라, 오바마 또한 자신을 괴롭힌 루머를 농담의 소재로 삼았다. 2011년 4월의 일이었다.

언론 증오했던 도널드 트럼프

한국 정치가 꼭 미국 정치의 모습을 레퍼런스 삼아서 닮아가야 할 필요는 없지만, 가끔 ‘우리도 저러면 어떨까’ 하고 감탄하게 되는 순간들이 있다. 백악관 출입기자 연례 만찬이 그중 하나다. 1년에 한차례, 백악관에 출입하는 담당기자들을 비롯해 주요 언론사 관계자들, 유명 언론인, 정치인, 심지어 연예인과 각국의 주미 대사들까지 초청되는 이 거대한 만찬은, 언론의 자유가 미국의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가장 중요한 가치임을 모두에게 과시하는 연례행사다. 각 뉴스채널의 정치 성향과 무관하게 모두가 둘러앉아 크고 작은 농담을 던지며 펀치를 주고받고는 웃어넘기는 광경은 한국 정치에선 찾아보기 드문 생경한 모습이다.

물론 모든 대통령이 백악관 출입기자 연례 만찬을 즐긴 건 아니었다. 자신을 비판하는 언론이라면 <시엔엔>부터 <뉴욕 타임스>, <워싱턴 포스트>를 막론하고 죄다 ‘가짜 뉴스’라고 딱지를 붙였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임기 내내 만찬에 불참하는 것으로 언론을 향한 증오를 드러냈다. 트럼프 없는 트럼프 백악관 출입기자 연례 만찬의 연설자로 참석한 스탠드업 코미디언 하산 미나지는 이렇게 말했다. “이 나라의 지도자는 지금 여기 없습니다. 왜냐하면 모스크바에 살고 있기 때문이죠….(트럼프가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지나치게 가깝게 지내며 러시아의 이익에 맞게 행동한다는 것을 꼬집는 농담) 딴 사람 이야기라면, 아마 농담을 들어 낼 자신이 없어서 펜실베이니아에 가 있을 겁니다.” 가벼운 비아냥으로 시작한 연설 말미에, 미나지는 사뭇 진지한 투로 덧붙였다. “대통령은 여기 안 왔죠. 왜냐하면 도널드 트럼프는 언론의 자유 같은 건 관심이 없거든요. 자기 머릿속에 떠오른 말이라면 아무거나 트위터에 써대는 사람이, 자신이 그럴 수 있게 해주는 헌법 조항을 인정하는 건 거부하는 겁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글로벌펀드 제7차 재정공약회의에 참석했다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48초간 인사를 나눈 직후 “국회에서 이 ××들이 승인을 안 해주면 바이든은 ×팔려서 어떡하나?”라고 말한 것으로 언론에 보도되자, 용산 대통령실은 계속 말을 바꿔가며 언론을 공격 중이다. 처음에는 ‘이 ××들’은 미국 의회가 아니라 한국 국회를 지칭하는 말이었고, ‘바이든은’이 아니라 ‘날리면’이라고 말한 것이 주변 소음 때문에 잘못 들린 거라고 주장했다가, 그 뒤에는 비속어인 ‘이 ××들’이란 말을 한 적이 아예 없으며 ‘이 사람들’이라고 말한 것을 왜곡한 것이라 주장했고, 급기야 풀(공동취재단) 기자단이 촬영한 영상을 두고 <문화방송>(MBC) 소속 기자가 유출시킨 것이라며 엠비시를 압박하기 시작했다. 권성동 국민의힘 의원은 “문화방송은 공영방송을 자처하면서 민주당의 전위부대가 되어 국익을 해치고 있다. 이제 문화방송 민영화에 대한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며 노골적으로 언론사를 뿌리부터 흔들 태세를 취하는 중이다.

중도 보수 성향의 일간지 <중앙일보>부터(‘윤석열의 욕설논란 유감’, 2022년 9월22일, 오병상 기자) 극우 보수 성향의 인터넷 언론 <펜앤드마이크>까지(‘[팩트체크]尹 ‘막말’ 논란 관련 대통령실의 변명이 궁색한 이유’, 2022년 9월23일, 박준규 기자) 모두 억지 그만 부리고 사과하면 간단히 끝날 일이라고 지적한 사안에 대통령실과 국민의힘이 이렇게 사력을 다해 달려드는 광경은 안쓰럽기 짝이 없다. 트럼프는 임기 내내 백악관 출입기자 연례 만찬에 불참했고 자신을 비판하는 언론들을 모조리 ‘가짜 뉴스’라고 비난했지만, 그런 그의 불참과 비난이야말로 역설적으로 그가 떳떳하지 못하다는 사실을 만천하에 폭로했다. 사과를 하든 부인을 하든, 진작에 넘어갔어도 좋을 일을 계속 끌고 가며 국력을 소모하는 광경을 보며, 그 진짜 목적이 ‘언론 장악’일 거라고 추측하는 게 나 하나는 아닐 것이다.

‘당연한 권리’를 왜 보장하지 못할까

윤석열 대통령은 후보 시절 정치 풍자 코미디를 해도 되겠냐고 묻는 <에스엔엘(SNL) 코리아> 주현영 기자의 질문에 “그건 당연한 권리”라고 답한 바 있다. 그가 자신을 둘러싼 루머를 가지고 농담을 하고, 뼈가 담긴 농담으로 언론사를 향해 잽을 날리고, 그렇게 웃고 넘어가는 미국식의 위트 같은 걸 가지고 있을 거라고는 애초에 기대도 안 했다. 다만 그가 약속한 대로 언론이 가지고 있는 ‘당연한 권리’라도 보장하기를 주권자로서 요구한다. 본인이 떳떳하다면, 대체 그렇게 하지 못할 이유가 뭔가?

이승한 _ 티브이 칼럼니스트. 정신 차려 보니 티브이를 보는 게 생업이 된 동네 흔한 글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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