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야구 레전드] '원자탄 투수', 경동의 이재환(전 일구회장)

김현희 2022. 10. 1.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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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자 이지훈도 작년에 LG 트윈스 2차 4라운드 지명 받아
일구회 회장 당시의 이재환 회장. 사진제공=사단법인 일구회

(MHN스포츠 김현희 기자) 한국 프로야구가 출범한 이후 40년이 흘렀다. 이에 맞춰 한국 프로야구를 이끈 레전드 40명 선정도 발표가 끝난지 오래다.

40명 모두 지난 40년간 한국 프로야구를 이끈 선수들임엔 분명하다. 40명 안에는 들지 못했지만, 41~50위를 차지한 레전드들도 분명 한국 야구를 빛낸 이들이다. 그러나 늘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프로야구 이전에 대한민국은 '고교야구'에 열광했다는 사실. 패기에 가득 찬 고등학생들의 열정이 동대문야구장과 목동 야구장에 그대로 녹아 들었다.

100년 고교야구 역사를 자랑하는 일본에서는 여전히 '선수권대회(고시엔 대회)'가 인기를 끈다. 일본 야구 유학을 다녀 온 이들은 하나같이 "일본에서는 도쿄대를 나왔다는 사실보다 고시엔에 가서 경기를 치러 본 것을 한 수 위로 여긴다."라며, 현지의 뜨거운 열기를 알려오기도 했다.

그래서 '한국 프로야구 40년'이 되는 현 시점에서 고교 무대를 수놓은 스타들의 존재도 분명 크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얼마 전 타계하여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는 前 일구회 회장, '원자탄 투수' 이재환도 반드시 기억해야 할 인물이다.

고교야구 레전드 5)편,
원자탄 투수, 경동의 이재환

약 70년 전, 국내 고교야구 전국대회가 개최된 초반에는 인천세가 상당히 강했다. 앞서 '고교야구 레전드 4편'에서 소개한 국가대표 막내 에이스 서동준을 비롯하여 앞으로 언급하게 될 동산고의 신인식까지 모인 인천야구는 그야말로 무서울 것이 없었다. 바로 이 '인천 세력'을 견제할 서울 세력은 '원자탄 투수' 경동의 이재환의 등장과 함께 이루어졌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경동고는 1959년 황금사자기에서 우승을 차지한 것을 시작으로 1960년대에 완벽한 전성 시대를 맞았다. 그 해 청룡기 선수권을 비롯하여 황금사자기, 화랑대기에서 잇다라 정상에 올랐기 때문이었다. 여기에 재일 동포 순회 야구단을 맞이하여 1승 1무라는 놀라운 성적을 기록했다. 당시 재일동포 야구단은 15전 13승 1무 1패를 기록했는데, 그 1무승부와 유일한 패배를 경동고에 당한 것이었다. 이 해 경동고는 재일 동포 순회전 1무승부를 포함하여 32승 2무승부라는 압도적인 성적을 기록했다.

이 기록이 국내에서 이루어진 것이라 해서 가볍게 넘길 수 없는 이유가 있다. 경동고가 그 해 10월에 일본 원정을 떠나 3승 2패 3무승부라는 호성적을 거두었기 때문이었다. 포수 백인천과 베터리를 이루었던 '원자탄 투수' 이재환의 활약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당시를 떠올린 이재환은 "학원 잡지 표지에 실릴 때 붙여진 별명"이라며, 소탈한 웃음을 지어보이기도 했다.

그렇다면, 그 많은 수식어 중에서도 왜 하필 '원자탄'이었을까? 이재환은 "그 때만 해도 '원자폭탄'이 세계에서 가장 파괴력이 높은 무기였다. 그만큼 내 속구가 위력적이었다는 것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정확했다. 제구력이 굉장히 좋다 보니, 거의 내가 던지고 싶은 곳에 다 던졌다. 제구력이 좋으면서 속구 자체가 위력적이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라며 당시를 회상한 바 있다.

'원자탄'의 존재는 고교를 졸업했다고 해서 끝난 것이 아니었다. 연세대 진학 이후에는 농협 등에서 투수 뿐만이 아니라 유격수와 포수 등, 포지션을 가리지 않고 뛰었다. 그야말로 만능선수로 이름을 날렸던 셈이다. 이후에는 대학(연세대, 한양대) 감독을 거쳐서 MBC 청룡, 삼미 슈퍼스타즈, 빙그레 이글스, 롯데 자이언츠 등에서 지도자 생활을 했다. 그리고 이후에는 일구회 회장으로 취임하면서 은퇴 이후에도 끊임 없는 야구 사랑을 과시한 바 있다.

이러한 '원자탄 투수'의 비범함은 이재환 회장에서 끝나지 않았다. 야탑고에 재학 중이었던 손자, 이지훈이 지난해 LG 트윈스의 지명을 받았던 것이다. 할아버지와 똑같이 투수로 성장한 이지훈은 당시 최고 구속 144km에 이르는 빠른 볼이 일품인 유망주다. 손자가 지명 받았을 당시, 본인도 모르게 눈물을 쏟았다는 이재환 회장은 본인이 지도자 생활을 했던 LG에서 손자가 선수로 뛴다는 사실에 더욱 기뻐했다는 후문이다.

이재환 회장은 생전 "야구는 나에게 '생명'이었다."라며 천상 야구인임을 강조했다. 야구를 했기 때문에 한 사람의 인간이 됐고, 태극마크도 달아보고, 출세도 했다면서 매우 흡족해했다. 그러는 한편, "만약에 내가 야구를 안 했으면, 지금의 나는 없었겠지. 그러니까 생명이었던 같아. 생명."이라며, 일구회 회장직을 수락한 것에 대한 소회를 밝히기도 했다.

그렇게 오랫동안 야구를 위해 살아갈 것만 같았던 이재환 회장은 지난 9월 15일, 향년 81세로 별세했다는 소식을 전달해 와 상당히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손자의 1군 데뷔전을 봤으면 하는 바람을 뒤로한 채, 너무 갑작스럽게 맞은 별세 소식이었기에 더욱 안타까울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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