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 반부패 운동으로 적폐는 더 쌓이고 일인지배 기반 강화
송재윤의 슬픈 중국: 대륙의 자유인들 <49회>
새 정권은 지난 정권의 비리와 실정을 파헤치고 단죄해야
새 정권이 들어서니 지난 정권의 부정부패와 비리·비위(非違)가 활화산 용암처럼 분출한다. 탈원전 경제성 조작, 탈북자 강제 북송, 서해 공무원 피살 은폐, 태양광 비리, 기무사 쿠데타 모의 조작 등등 정권 교체가 없었다면 그대로 묻혔을 지난 정권의 중대 범죄가 속속 드러나고 있다. 법을 무기 삼아 대숙청을 감행했던 지난 정권의 그 권력자들이 이제 법의 칼을 맞을 차례다.
왜 선거를 민주주의의 꽃이라 부르는가? 바로 그 열매가 정권 교체이기 때문이다. 총칼 들고 싸울 필요 없이 평화적 선거를 통해 무능하고 부패한 권력을 내칠 수 있다면, 가장 효과적인 정부 감시, 경제적인 정권 심판이다. 새 정권은 결단코 지난 정권의 비리와 실정을 파헤치고 단죄해야 한다. 그 의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않는다면, 정권 교체의 이유가 과연 무엇인가?
정적 제거를 목표로 한 부패 척결 시도는 더 큰 부패 낳아
사법부의 독립이 보장된 국가라면 산 권력의 부정도 밝혀지겠지만, 역사를 돌아보면 정권 교체 후에야 지난 정권의 부정이 드러난 사례가 부지기수다. 민주화를 이룩한 한국이 정치의 제도화(institutionalization of politics)는 아직도 이루지 못했음을 보여준다. 정치의 제도화란 권력 교체, 정권 이양, 법규 입안, 정책 추진 등 정치의 전 과정이 투명하게 게임의 규칙에 따라 진행될 수 있는 법적, 제도적 조건을 의미한다. 한국에서 상용되는 “시스템 통치”라는 용어와 정치의 제도화는 그 의미나 쓰임새가 비슷해 보인다.
정치의 제도화가 이뤄지지 않은 국가에선 법제와 규칙을 벗어나는 권력 투쟁이 끊이지 않는다. 대립하는 정치집단의 권력 투쟁은 마피아 ‘구역 전쟁(turf war),’ 야쿠자 ‘나와바리(繩張)’ 다툼을 방불케 한다. 정권의 획득을 위해 정치집단은 법망을 뚫고 제도의 허점을 파고든다. 민주화 이후 정치의 제도화가 실현되지 못하면, ‘지저분한 정치(nasty politics)’가 끊이지 않는다. 지저분한 정치를 종식하기 위해선 엄정한 법의 메스가 공정하고, 투명하고, 신속·정확하게 정부 내부에 퍼져 있는 부정부패의 암세포로 향해야만 한다. 권력자가 오로지 정적 제거를 위해 법을 악용한다면, 부패 척결 시도가 더 큰 부패를 낳고 만다. 부정과 비리의 악순환이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중국 시진핑 총서기는 집권 초기부터 “반부패 운동”의 깃발을 들었다. 물론 이는 중국만의 현상이 아니다. 세계 어디서든 신정권이 들어서면 흔히 부패 척결을 권력 강화의 제1 수단으로 삼게 마련이다. 인도의 모디 (Modi) 정권, 터키의 에르도간(Erdogan) 정권, 헝가리의 오르반(Orban) 정권도 그러했다. 워싱턴을 장악하면 “늪의 물을 빼겠다(drain the swarp)” 공언했던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은 취임 후 실제로 얼마간 광폭하게 해고의 칼날을 휘둘렀다.
시진핑 반부패 운동 본질은 권력 투쟁...정적 보시라이·저우융캉 제거
2012년 집권 초기부터 개시된 시진핑 정권의 반부패 운동은 2018년까지 260여 명의 차관급 이상의 고관대작, 군부 실세, 국영기업체 총수를 조사하고, 35만 명의 관료들을 부패 혐의로 조사했다. 종신형을 선고받은 고위 관료와 군 장성 중에는 충칭의 맹주 보시라이(薄熙來, 1949- ), 중공 중앙위 상무위원 저우융캉(周永康, 1942- ), 중앙군사위 부주석 궈보슝(郭伯雄, 1942- )이 포함돼 있었다. 중앙군사위 부주석 쉬차이허우(徐才厚, 1943-2015)는 파면당한 후 재판을 앞두고 사망했다.
보시라이는 이른바 “충칭(重慶) 모델”로 중국 안팎의 주목을 받으며 강력한 권력자로 떠오르던 태자당 기린아였다. 저우융캉은 당내 최고 권력 7인 중 한 명이었다. 곧 “형불상상위(刑不上常委, 형벌은 상무위원에 적용되지 않는다)”는 중공의 불문율이 깨졌다는 의미다. 그 과정에서 시진핑은 정적을 제거하고 상하이방 원로 그룹을 고립시켰다. 일인 지배를 강화하는 강력한 수단이었다. 그 점에서 반부패 운동은 본질상 권력 투쟁이었다.
물론 표면상 시진핑은 중국공산당 내부의 부패와 비리를 일소하고 당의 통일성을 확보한다는 명분을 쥐고 있었다. 그 결과 그는 당·군·정 모든 방면에서 권력을 공고화할 수 있었다. 집권 후 시진핑은 “당(黨)·정(政)·군(軍)·민(民)·학(學), 동·서·남·북·중, 당이 일체를 영도한다!”는 구호를 강조했다. 당의 일체를 영도하는데, 그 당 내부에선 현재 시진핑의 권력을 견제할 수 있는 제도도, 인물도 없는 듯하다. 당·정·군이 일인 지배의 체제로 굴러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부패와의 전쟁을 통해서 공산당 총서기로서 시진핑은 일인 지배의 기반을 공고화하고, 종신 지배의 길을 텄다.
부패와의 전쟁 통해 시진핑 일인 지배 공고화하고 종신 지배의 길로
30년 넘게 반부패 고문으로 활약해 온 싱가포르 국립대학 콰(Jon S.T. Quah) 명예교수의 분석에 따르면, 시진핑의 반부패 운동은 최소 네 가지 면에서 1978년 이래 가장 강력한 정치 운동이었다. 1) 내부고발자와 네티즌이 SNS로 부정부패와 비리 행각을 고발하고 비판하는 폭로의 게릴라전이 펼쳐졌고, 2) 지방의 현 및 하급 부서의 부패 관리들은 대규모 참호전이 지속됐으며, 3) 기업 부문의 부패와 상거래 뇌물까지 처벌하는 전면전으로 확대되었고, 4) 본질적으로 정적을 제거하고 권력을 독점하기 위한 시진핑의 권력 투쟁이었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시진핑은 특히 자동차, 연회(banquets), 해외여행 등 정부 관료들이 대대로 누려온 갖가지 이른바 삼공소비(三公消費)라는 뿌리 깊은 공무원의 부가 혜택(fringe benefits)에 대해서도 반부패의 메스를 들이댔다. 중국에선 전통적으로 당·정·군·민·학, 어디 부문에서나 수십 명이 모여서 대규모 향연이 벌이는 오랜 관행이 있다. 개혁개방 이후 경제가 급속하게 성장하면서 향연의 문화는 더욱 화려하고 사치스러워졌다. 중국 언론에 따르면, 2005년 한 병에 200위안 정도였던 구이저우(貴州) 마오타이주가 2012년엔 가격이 2000위안으로 10배 뛸 정도였다. 관계의 향연이 그만큼 빈번해졌다는 얘기다.
마오쩌둥은 혁명이 만찬 향연이 아니라 한 계급이 무력으로 다른 계급을 무너뜨리는 전쟁이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마오쩌둥은 그렇게 혁명적 금욕주의를 노상 강조했지만, 사치스러운 향락 문화는 중국 관계의 고질병이다. 개혁개방 이전에도 관료 부패는 상존(常存)했는데, 그 이후엔 비할 바 없이 만연해졌다. 1993년 조사에 따르면, 1992년 한 해에만 관계 만찬 향연에 사용된 공적 자금의 규모가 미화 180억 달러에 달했다. 시진핑 정부는 출범 직후부터 관계의 기강을 잡는 강력한 단속 조치를 감행했다.
2012년 12월 4일 관료의 해외순방 빈도, 관용차 수준, 관저 규모, 향응 회수 등을 대폭 축소하고 규제하는 “8항 규정”이 발표되어 이듬해 1월부터 중국 전역에 시행되었다. 중앙 기율·검사 위원회는 부패 관료들이 애용해 온 VIP 법인카드를 모두 압수했다. 고관대작들이 고가의 만찬 연회, 무도회 출입은 물론, 볼링장, 사우나 욕실, 안마시술소, 고급 휴양지를 제집처럼 사용해 온 오랜 관행에 철퇴가 가해졌다.
2013년 5월 1일엔 BMW나 벤트리 따위 외국산 고가 자동차의 소유주들이 군대 혹은 무장경찰 번호판을 달 수 없게 했다. 중국에서 군대나 무장경찰 번호판을 달면 교통 신호도 무시하고 고속도로 사용료도 내지 않는 무법의 특권을 누릴 수 있기 때문이었다. 2013년 11월 국무원은 관용 자동차의 사적 사용을 금지했고, 2014년 1월 14일, 국무원은 군대 장교의 외국산 자동차 구매를 금지했다. 공무원 회식 때엔 상어지느러미 요리 등 비싼 메뉴의 주문을 금지하고, 담배와 술의 무료 제공도 불법화했다. 2013년 12월엔 지방 특산물 상납, 사치 행각, 호화 활동, 공금의 사적 사용, 도박 행위 등을 엄금하는 “6항 금령”을 반포했다.
시진핑 정권은 중앙에서 “순시조(巡視組)”를 직접 파견하여 현장을 조사하는 방법을 취했다. 부패가 심하다고 판단되는 성급(省級) 정부, 각계 부서, 국영기업체 등에 나간 순시조는 현장의 간부, 관원, 정치 고문 등의 행적을 철저하게 조사했다. 집권 초기부터 시진핑은 “호랑이와 파리떼를 다 때려잡자(老虎蒼蠅一起打)”는 구호를 외쳤다. 이때 “호랑이”는 부패한 기업인, 중앙당 고위 간부 혹은 고급 관료를, 파리떼는 부정행위를 일삼는 민간의 자산가들이나 하급 관료를 이른다. 전방위적으로 정권 내내 지속된 중국의 “반부패 운동”은 과연 성공했는가? 중국은 더욱 청렴한 나라로 거듭났는가?
반부패 운동으로 중국은 청렴한 나라로 거듭났을까?
콰(Jon S.T. Qua) 교수는 이미 7년 전 시진핑의 반부패 운동이 근본 원인은 방치한 채 증상만을 건드리는 피상적 개혁이라 지적한다. 개혁개방 이후 중국 전역에 부패가 만연하게 배경에 관해 콰 교수는 다섯 가지 근본 원인을 제시한다.
첫째, 중국 공무원들이 박봉에 시달리고 있는 현실이다. 2003년에서 2010년 사이 첨단기술, 금융, 부동산, 에너지, 문화, 의료, 교통 등 중국 9개 부문 평균 연봉 인상률을 비교해 보면, 공공부문의 연봉은 최저치에 머물렀다. 박봉의 공무원은 공권력의 허점을 노려 축재의 기회로 삼게 마련이다. 오죽하면 1058년 북송의 개혁가 왕안석(王安石, 1021-1086)이 황제를 향해 부패 근절을 위해선 관리의 봉급을 올려서 청렴성을 키워야 한다는 이른바 “고신양렴(高薪養廉)”의 방법을 제안했겠는가.
둘째 중국의 부패는 구조적으로 불필요한 규제와 복잡한 행정절차에 기인한다. 이른바 “레드 테입(red tape)”이라 불리는 불필요한 관공서의 요식 행위가 만연해 있다. 세계은행이 발표하는 “사업하기 쉬운 순위”를 보면, 중국은 2015년까지 180개국 중 90위 권에 머물러 있었다. 놀랍게도 2019년 중국의 순위가 46위, 2020년 30위로 뛰어오르는 기현상이 나타났는데, 이후 세계은행은 자체 검증을 통해 중국의 자료를 조작하는 부정행위가 있었음을 자인하고 18년간 지속해 온 이 조사의 발표를 중단하기로 결정했다.
셋째, 현실적으로 중국에선 부패 행위에 따르는 “위험은 매우 작고 보상은 매우 크다.” 관료행정을 맡은 공무원의 입장에선, 아무리 부정을 저질러도 잡힐 확률이 지극히 낮다는 계산이 나온다. 법 규정은 비현실적으로 엄격하고, 공무원은 관행적으로 불법을 일상화한다. 그러한 부패의 포화 상태는 권력자에 유리한 조건이 된다. 누구든 표적이 되면 언제든 부패 혐의를 걸어서 잡아넣을 수 있기 때문이다. 공무원은 관행적으로 부정부패를 저지르고, 중앙의 권력자는 일단 부패를 그대로 덮어둔다. 원한다면 언제든 모든 공직자의 목에 날카로운 법의 칼날을 들이댈 수 있는 까닭이다.
넷째, 개혁개방 이후 중국의 부패는 분권화에 직결된다. 중앙정부의 권력이 대폭 지방정부로 이양되면서 특히 현(縣) 단위 공산당 위원회 서기들의 정책 결정권이 강화되었다. 당위 서기들은 중앙의 지시를 슬금슬금 어기면서 지방에 “독립적 왕국”을 건설했다. 무엇보다 재정 분권화로 독자적인 재정권을 확보한 지방정부는 이른바 “소금고(小金庫)”를 갖게 되었다. 소금고에 쌓인 재원은 지방의 권력자들이 감시나 조사도 없이 마구 횡령하고 퍼 쓸 수 있는 검은돈이다. 비자금이 잔뜩 쌓인 소금고는 지방정부뿐만 아니라 국영기업체에 만연한 조직적 비리의 온상이다.
다섯째, 선물을 주고받는 중국 특유의 “관시(關係)” 전통 또한 부패의 근절을 어렵게 하는 문화적 요인이라 할 수 있다. 오늘날 중국의 “관시” 문화를 그저 전통적 미풍양속이라 볼 수는 없다. 오히려 1950-60년대 공산주의 명령경제 속에서 비현실적으로 엄격한 규정과 금지사항을 슬쩍 에둘러가는 방법이다. 간부에게 작은 뇌물을 먹이면 조금이라도 더 많은 곡물을 받아 가족을 먹일 수 있었기에 “관시” 문화가 생겨났다는 해석이다.
중앙정부와 중국공산당에 대한 신뢰도 오히려 낮아져
2010년과 2014년 두 차례에 걸쳐서 4천 명의 표본 집단과 인터뷰를 수행한 하버드 대학 정치학과 왕위화(Yuhua Wang)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시진핑 정권의 반부패 운동은 중앙정부와 중국공산당에 대한 대중적 신뢰도는 오히려 낮아졌다. 왕 교수는 부패 사례가 연일 언론에 보도되자 원래는 정부를 신뢰했던 사람들이 지지를 철회했다고 설명한다.
부패인식지수(CPI)를 보면, 시진핑 집권 이후 중국의 부패 인식도는 현격한 개선을 이루지는 못했다. 2012년 39점으로 세계 180개국 중 80위였던 중국의 부패 인식도는 이후 7, 8년간 횡보 상태를 면치 못했다. 부패와의 전쟁이 최고조에 달하던 시절의 점수를 보면, 2015년 37점(83위), 2016년 40점(79위), 2017년 41점(77위)으로 계속 옆으로만 기다가 2018년 39점(87등)으로 뒷걸음질했다. 다만 팬데믹이 터진 2020년과 2021년에는 각각 42점(78위)과 45점(66위)으로 눈에 띄게 성적이 올랐는데, 이는 과도한 방역 정책에 따른 일시적인 반등 효과로 보인다.
빈 수레가 요란하다 했던가? 10년간 전개된 중국의 “반부패 운동”은 부패 척결의 성적은 저조했다. 다만 그 과정을 통해서 시진핑의 권력 기반은 공고화되었을 뿐이다. 그 점에서 최근 10년 중국을 휩쓸고 간 반부패 운동의 폭풍은 정적 제거를 위한 권력 투쟁으로 보인다. 반부패 운동의 실제 목적은 정치의 제도화가 아니라 권력의 공고화(consolidation of power)에 불과했다.
진정 부패를 척결하고 적폐를 청산하려면 요란스럽게 구호를 남발할 필요가 없다. 거칠고 시끄럽게 시작된 운동은 용두사미로 끝나는 사례가 많다. 법으로 정의를 세우는 과정은 외과수술처럼 차분하고 신중하게 진행돼야 한다. 참된 개혁은 정적 제거가 아니라 정부 개조, 권력의 공고화가 아니라 정치의 제도화를 지향한다. 바로 지금 날카로운 법의 칼을 들고 암 덩이 같은 지난 정권의 비리를 파헤치는 새 정권의 대통령, 법무부 장관, 검찰, 경찰이 꼭 명심해야 할 시진핑 정권 반부패 운동의 반면교사가 아닐까.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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