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미엄 리포트] 손흥민 스프린터 횟수 어떻게 알까..데이터 품은 축구

김태희 기자 2022. 10. 1.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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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타르 월드컵, 과학으로 즐기기
전주 월드컵경기장 5층 한편에는 노트북과 캠코더, 송신 장비가 설치돼 있다. 이곳은 전북 현대 소속 노동현, 이석구 전력 분석관의 자리다. 김세영 제공

“축구 데이터 활용성이 떨어진다고요?”

차례로 만나 본 축구 전력 분석 전문가들은 하나같이 되물었다. 선수들이 거침없이 서로의 진영으로 뛰어드는 침략 스포츠인 축구는 변수가 많아 데이터 분석의 활용성이 떨어지지 않냐는 기자의 말에 대한 반박이었다. 실제로 오늘날 축구 경기장에서는 승리를 위해 데이터를 모으고 분석한 뒤 가공한다. GPS, 움직임 감지 센서, 빅데이터, AI가 이들을 뒷받침하고 있다.

9월 7일 전주 월드컵 경기장. 이곳에서 전북 현대 모터스와 FC서울이 맞붙었다. 전반전 15분, 전북 현대 모터스가 수비하기 급급해지자 노동현 전북 현대 모터스 전력 분석관의 목소리가 커졌다. 한숨을 쉬고 답답함에 못 이겨 벌떡 일어난 노 분석관의 왼쪽 귀에는 헤드셋이 걸려있었다. 그는 이 헤드셋을 통해 경기 내내 벤치에 있는 코치와 소통했다.

왼편에 앉은 이석구 전북 현대 모터스 전력 분석관의 오른손은 캠코더에서 떨어질 줄 몰랐다. 공과 선수들의 움직임을 포착하기 위해서였다. 캠코더를 통해 수집한 영상 데이터는 두 분석관 앞에 있는 노트북의 분석 소프트웨어를 통해 실시간으로 기록됐다.

전반전이 끝나기 2분 전, 노 분석관은 노트북을 챙겨 빠르게 일어났다. 휴식 시간을 준비하기 위해서였다. 선수들이 잠깐 휴식을 취하는 동안 그는 전반 45분 동안 수집된 영상 데이터를 코치들과 공유하며 후반전의 전략을 세웠다.

경기는 아쉽게 0 : 0 무승부로 끝났다. 하지만 전력 분석관은 쉴 새가 없다. 이번 경기에서 수집된 데이터를 이틀 내로 분석한 뒤 다음 경기도 준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노동현, 이석구 전력 분석관이 이틀 내로 분석해야 하는 데이터는 다양하다. 선수들이 경기 동안 착용한 전자 활동량 추적 시스템(EPTS)에서 얻은 피지컬 데이터와 캠코더를 비롯해 사설 분석 업체 카메라, 중계 카메라로 수집된 영상 데이터다. 피지컬 데이터와 영상 데이터는 어떤 것일까. K리그 EPTS공식 파트너십 업체인 ‘핏투게더’, AC밀란과 일본·캐나다 축구 대표팀을 고객사로 둔 업체 ‘비프로일레븐’과 함께 살펴봤다.

핏투게더 데이터사이언스팀은 선수의 몸 상태를 고려해 피지컬 데이터와 움직임 데이터를 조정하는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있다. 최항영 제공

EPTS는 축구 데이터를 수집할 때 쓰는 대표적인 웨어러블 장비다. 국내에서는 2010년 남아공 월드컵 당시 대한민국 축구 대표팀이 훈련에서 처음 EPTS를 도입해 주목받았다. 이 장비는 센서로 선수들의 움직임을 감지하고, 선수의 위치를 파악할 수 있는 GPS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수신한다. 

EPTS에서는 훈련이나 경기에 참여한 선수들의 총활동량, 분당 뛴 거리, 최고 속도, 스프린트 거리와 횟수, 스프린트 지속 시간과 경로 등 피지컬 데이터를 수집한다. 뿐만 아니라 누적된 피지컬 데이터로 선수들의 활동량을 시기별로 나누어 분석할 수도 있다.

 

힘들어야 실력 향상? 데이터가 지도법 바꿨다

피지컬 데이터는 경기를 평가하는 용도로만 쓰이지 않는다. “현장에서 EPTS는 훈련과 부상 방지에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김주표 핏투게더 풋볼사이언티스트는 핏투게더에 오기 전 성남FC와 수원 삼성의 18세 팀 피트니스(피지컬) 코치로 있었다. 그는 데이터를 확인하고 그날의 훈련방향과 훈련량을 정했다.

피지컬 데이터는 축구 지도자들의 지도법을 바꿨다. 핏투게더FC 신동화 감독은 “데이터는 근거가 된다”고 얘기했다. “예전에는 힘든 훈련이 좋은 훈련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힘들어야 실력이나 체력이 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에요. 그러다 보니 훈련하다가 허벅지 뒷쪽 근육이나 고관절 부상이 생기는 경우가 많았어요. 그런데 이제는 아닙니다. 선수들의 상태를 파악할 수 있게 되면서 선수별로 최적의 훈련 양과 방법을 고안할 수 있게 됐습니다.”

데이터는 선수들에게도 근거가 된다. EPTS 데이터를 바탕으로 설계된 훈련은 선수들이 납득하고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이다. 신 감독은 데이터가 선수들이 축구를 더 잘 이해하고, 몸 관리를 능동적으로 하게 만든다 설명했다. 핏투게더FC의 김민섭 선수도 “훈련이나 경기를 하고 나서 스스로 평가할 수 있는 게 큰 동기부여가 된다”고 얘기했다.

 

AI, 영상분석의 새 지평을 열다

전주 월드컵경기장은 K리그 프로구단 전북 현대 모터스의 홈 경기장이다. 경기장 서편 가장 상단에는 카메라 3대가 설치돼 있다. 축구 영상 인공지능(AI) 분석 플랫폼 기업 ‘비프로일레븐’의 카메라다. 3대의 카메라는 경기가 이루어지는 동안 그라운드 전체를 촬영해 분석 플랫폼으로 전송한다. 영상 데이터는 AI로 분석한 선수 및 경기 데이터로 가공된다.

“오브젝트 트래킹이 핵심입니다.” 양준선 비프로일레븐 아시아태평양 총괄 이사는 비프로일레븐의 분석 기술을 한마디로 정의했다. ‘오브젝트 트래킹’이란 비프로일레븐이 개발한 AI 기술이다. 

여기에는 두 가지 기술이 접목돼 있다. 선수 하나하나를 탐지하는 ‘디텍션’과 탐지한 후 경기 시작부터 끝까지 추적하는 ‘트래킹’이다. 축구는 90분 동안 6400~8250㎡(FIFA 규격)의 사각형 그라운드에서 22명의 선수가 자유롭게 움직이는 스포츠다. 모든 선수들을 개별적으로 인식해 이들의 움직임을 실시간으로 추적하는 기술이 오브젝트 트래킹이다.

오브젝트 트래킹으로 슈팅, 패스, 크로스, 태클, 인터셉트 등 30여 개의 ‘이벤트 데이터’와 뛴 거리, 최고 속도, 스프린트 횟수와 거리 등의 ‘포지셔널 데이터’를 수집할 수 있다. 다만 수집 과정이 모두 자동화되진 않았다. 선수들이 엉켜 복잡하게 전개되는 상황에서는 AI가 정확하게 이벤트 데이터를 뽑아내지 못하고 있다. 이때는 비프로일레븐의 프리랜서 분석관들이 직접 태깅을 한다.

직관적인 영상 데이터는 소통의 매개체가 됐다. 양 이사는 말했다. “과거에는 축구팀이 영상을 촬영해도 분석관과 지도자들이 눈으로 이 공간을 확인하고 선수들에게 말로 설명하는 게 다였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시각적으로 분석된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공유할 수 있어 선수와 지도자들 간의 소통이 훨씬 원활해졌습니다.”

숫자와 영상으로 분석된 데이터는 축구팀의 업무 흐름과 속도도 바꿨다. “과거엔 영상을 찍고 다시 돌려보면서 패스 회수나 실패 횟수를 세면서 우리 팀의 전략 이행 수준을 파악해야 했고 상대 팀 전략을 이해하는 데 하루 이틀이 소요됐습니다. 분석하는 데 드는 품과 시간이 컸죠.” 비프로일레븐에 합류 하기 전 한국프로축구연맹에서 근무했던 양 이사는 AI가 없던 시절 영상데이터를 수집하고 분석하는 일이 얼마나 번거로웠는지를 직접 경험했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분석관들은 더 이상 데이터를 어떻게 뽑을지 고민하는 게 아니라, 제공되는 데이터를 어떻게 활용할지 고민하고 있다. 양 이사는 “사실 AI가 분석관의 역할을 대체하는 거 아니냐는 시장의 오해가 있었다”고 얘기한다. 하지만 AI는 품이 많이 들던 업무를 덜어주고, 분석관에게 인간이 할 수 있는 고유한 업무에 집중할 수 있게 했다. 이제 분석관은 데이터를 바탕으로 어떤 인사이트를 뽑아내는지가 중요해졌다.

VR로 경기 돌려보는 시대가 온다면

K5 리그(5부 리그) 팀 ‘서울 TNT 핏투게더 FC’ 선수들. 검은색 조끼 등 쪽에는 가로 3.9cm, 세로 6.5cm의 EPTS 장비 ‘오코치’가 들어가 있다.김태희 기자

모든 가공데이터가 채택되는 것은 아니다. 노 분석관은 “팀의 시즌 목표와 전략이 데이터 취사선택의 바로미터”라고 말한다. 전북 현대는 매년 우승을 목표로 하는 명문구단이다. 공격에 초점을 두고 이기는 경기를 하기 위해 계획을 세운다. 따라서 전북 현대는 공격 전략을 짜는 데 도움이 되는 데이터를 중점적으로 살펴본다는 것이 노 분석관의 설명이다. 

양 이사 역시 “팀마다 소비하는 데이터가 다르다”고 말한다. 수비에 치중하는 약팀의 경우 수비와 관련된 데이터를 많이 찾고, 역습을 많이 하는 팀은 스프린트 데이터 분석 결과를 주의 깊게 살핀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기존 전문가의 눈에 보였던 추상적인 개념이 데이터로 수치화·계량화되면서 각 구단 전력 분석관들은 시즌 전 ‘데이터 정의’를 만들기 위해 고심한다.

권민성 비프로일레븐 데이터분석팀 사원이 비프로스페이스로 패스, 슈팅 등의 이벤트 데이터를 분석하고 있다.최항영 제공

롱패스(long pass, 먼 거리에 있는 동료선수에게 보내는 패스)를 몇 미터 이상으로 정의할 것인지, 하프 스페이스(half space, 경기장 측면과 중앙 사이의 지역)를 어느 공간으로 규정할 것인지를 고민하는 것이다.

이는 팀의 전력과 상황에 맞는 최적의 데이터를 수집하고 재가공하기 위함이다. 데이터 정의는 로우 데이터를 수집할 때 기준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축구 데이터 분석 기술이 어떤 방향으로 발전하길 바라는지 물어보았다. 노동현 분석관은 뜻밖의 답을 내놓았다.

“VR 기술이 축구 데이터와 결합할 수 있으면 보다 효과적인 소통과 분석이 가능할거 같습니다. 경기가 끝난 뒤 선수가 VR 고글을 쓰고 다시 자신의 시선으로 경기를 돌려본다면, 경기 중에는 미처 발견하지 못한 패스 길을 파악할 수 있을 거 같거든요. 또 전력 분석관인 제가 VR 고글을 쓰고 선수의 입장에서 경기를 분석하면 좀 더 선수를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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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희 기자 taeh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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